방송음악 백년

김형원 작사(김석송), 안기영 작곡 그리운 강남, 노래 왕수복, 김용환, 윤건영 (원곡)

이장춘 2012. 3. 14. 16:35

 

 

 

60년이 더 지난 아주 어린 시절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이 노래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을 줄 압니다.

오랜세월이 흘렀어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노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잘 모르는가 봅니다. 이 노래는 김형원님이 1901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테어나 1920년대부터 신문기자를 하면서 문예활동을 하던 중

1929년에 이 노래 가사를 발표했습니다. 님은 언론인으로 일제 강점기에 중외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매일신보 편집국장, 해방되어 대동신문 부사장을 지냈으며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때 공보처 차장을 지냈습니다. 6.25때 납북당한이래 행방을 알 수없는

 석송 김형원님입니다. 작곡은 안기영님이 했는데 1947년 여운형선생님 사망시 추모곡을 작곡

연주한 이래 다른 노래들과 함께 금지곡으로 되었고 월북작곡가의 노래로 분류되면서

오랜기간 금지곡으로 되었다가 80년대 후반부터 불려지게 된 노래입니다. 

 안기영님은 일제 강점기부터 월북하기까지 이름있던 음악가였지만

 월북후 우리나라에서는 잊혀진 음악가였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노래 그리운 강남

 

 

1929년에 발표된 시에 안기영이 곡을 붙혀 윤건영,

왕수복, 김용환에 의해서 불려진것은 1934년이었습니다.

여러차례 말씀드렸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 왕수복과

김용환, 그리고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1933년부터 1934년 초까지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선발 대회에서 충남대표로 입선해

노래를 부른 지금으로 말하면 학사가수 윤건영 (동양 음악학교 성악과 졸럽),

이 세사람이 화음을 맞춘 신민요 "그리운 강남"은 우리 국민 모두의 입에 오르

내리는 노래가 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때를 비롯해서 오랜기간 금지곡으로

묶여 수난을 겪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어린시절 고무줄을 넘으며 부른

노래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간에 고무줄 노래라고도 했습니다.

 

 

 

 

그리운 강남

 

 

작사 김석송

(김형원)

작곡 안기영

노래 윤건영, 왕수복. 김용환 

 

 

1)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2)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3)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감은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발목 상한지 오램이라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4) 그라운 저 강남 건너 가랴면

제비때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타베이스에서
잡지명 삼천리 제7호
호수 제7호
발행년월일 1930-07-01
기사제목 春園 石松노래의 作曲과 나의 苦心
필자 梨花專門學校 敎授 安基永
기사형태 문예기타

내가 조선에 도라와서 처음 작곡하여 발표하여 본 것이 가요협회에서 보낸 李光洙씨의 『우리 애기날』과 金炯元(호는 石松)씨의 「그리운 江南」이란 두 가지엇슴니다. 고심끗헤 작곡하여 노코 내가 책임을 마터서 지도하는 聲友會員을 잇글고 작년 가을에 처음 公會堂에서 음악연주를 하엿든 것이외다. 그때 나는 의외에 이 두 작곡에 찬사를 보내어 주는 여러분이 잇는 것을 발견하고 붓그럽다할만치 감격에 찻든 것이외다. 그 뒤로 늘 게속하여 處處의 연주회에서 혹은 독창으로 혹은 합창으로 불럿은데 그때마다 간데 족족 호의를 표하여 주는데는 한쪽으로 수집으면서 깁분 마음을 금할 길이 업섯슴니다. 그런데 엇든 음악비평가 한 분이 「그리운 강남」과 「우리 아깃날」을 이러케 비평하여 줍데다.
「그리운 江南」은 조선 사람의 심금을 가장 몹시 울니는 아리랑조을 醇化식혀 논 것으로 그 곡조가 野卑하지 안코 淸新하며 또 알기 시워서 어린 애들로부터 나먹은 어른들까지 부르게 된 것이 장점이라고요. 또 한가지 「우리 애기날」에 대하여는 樂句가 부드럽게 홀너서 마치 봄날가튼 후눅후눅한 風情이 잇다고 합데다. 이 비평이 가장 나의 마음을 붓잡는다할 것이외다.
그런데 「그리운 江曲」의 작곡은 몬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하는 후렴부터 생각하여 지엇든 것이외다. 그 동기는 나는 내 집이 서대문밧 애오개 넘어에 잇는데 학교에서 일을 다 마치고 석양을 등지고 하로는 무심히 그 고개를 훨훨 너머가다가 「라라라...하는 詞를 생각하고서 한참 그 고개에 안져 소리를 내어 불너 보앗지요. 그랫드니 자신이 醉하리 만치 맬로듸-가 생겨 집데다. 그 길로 곳 집에 가서 曲譜를 써 두어서 지은 것이 이것엇슴니다. 그러고 春園의 「우리 애기날」은 여러날 고심하엿슴니다. 내 딴으로는 예술적 가치를 집어 너흐려 애써서 거이 여러 날을 허비하엿든 것이외다.
처녀작곡의 上演 그는 작곡가로 안저 퍽으나 아름다운 기억이 될 것이외다. 그런데 나는 以上 2곡을 모다 호평아래에 발표한 것을 한끗 만족하게 생각함니다.〈55〉

파리 유학중이라는 한 학생으로부터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왔습니다. 3절에서 보면 「이 발목 상한지

오램이라네」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제비의 발목이

상했어도 이 상한 발로라도 강남을 갈 수

있다는 뜻인줄 압니다.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그리운 강남의 가사를 보니

제 머리속에 그 멜로디가 남아있음을

 알겠어요. 제가초등학교 시절만해도 이 노래를

 부르며 또래 친구들과 폴짝폴짝 뛰며 고무줄 놀이를

 하며 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가사는 주로 1절만을 부르며

 놀았지만, 지금 생각하니모든 전달 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어떻게 전국의 어린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놀았는지 놀랍기까지 합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그리운 강남, 깅용환, 왕수복, 윤건영.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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