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통일무대, 1960년대 북한주민을 위한 국제방송국 공개방송 PD 엄복영

이장춘 2012. 1. 26. 01:12

 

  

 

1960년대는 동서장벽이 가로놓이고

 남북이 가로막혀 사람의 왕래가 불가능했던

 냉전시대였지만 그 경계선을 초월한 방송전파는

공산권에도 미쳤습니다. 저유대한의 공개방송을 들려

줌으로서 대한민국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주던 공개방송 통일무대가 있었습니다. 통일무대라는

이름으로 공개방송이 실시 된 것은 1967년 1월 21일

부터 1970년 1월 2일까지이고 이 기간 중 담당

프로듀서는 엄복영님 이었습니다.

 

 

HLSA 통일무대, 국제방송국 공개방송 PD 엄복영

 

 

 

 

대한민국의 이름 있던 가수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북한주민들에게 노래로

자유대한을 알린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셨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중파로 방송 된 것이어서 국내에서도

 들었지만 방송대상은 어디까지나 북한 주민들이어서 국내용 공개방송과는

 곡목선정이나 내용,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스튜디오에서 공개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해군본부, 육군 30사단, 해병대 사령부, 육군 제 2군단, 육군 제 8사단,

공군 비행학교 등 군부대나 또 연말 특집 공개방송, 개국기념, 1967년 8월

15일을 기해서 이루어진 대공방송의 종일방송 기념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고 경회루나 창덕궁, 시민회관등 우리니라 대표적인

관광지에서도 공개방송은 있었습니다.

 

 

 

 

1967년 1월 21일 오후 7시 5분부터 50분까지

 45분간 방송된 첫 프로그램은 강찬선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고

남일해, 권혜경, 김용만, 최숙자 등 그때의 이름 있던 가수들이 출연해서

 메기의 추억, 꿈에 본 내 고향, 고향초, 견우직녀, 눈물 젖은 두만강, 엽전 열 단량,

 눈물 젖은 연평도, 목포의 눈물 등 북한주민들도 알만한 노래를 들려주어 북한 동포들의 

향수심을 달래주면서 자유대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노래가 불렸습니댜. 특별연사로

1960년 8월에 미그 15를 몰고 월남 귀순한 정낙현 공군대위와 김일성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해주기지 사령부 참모부 작전참모를 지내던 중 월남 귀순한

 이필은 해군대위가 참여해서 남북을 비교하는 생생한

 증연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1967년 1월 28일에 방송된 두 번째의 프로그램도

강찬선님의 사회로 신 카나리아의 요핑게 저핑게, 봄맞이가자,

문일화의 한 많은 대동강, 함경도 사나이, 김백화의 묻지 마라 내 고향,

알뜰한 당신, 원방현의 단장의 미아리고개, 애수의 키타 등의 노래가 불렸고

 1966년 일가족이 배를 타고 울릉도로 월남 귀순한 최송식과 오정렬 부부가

 출연해서 남과 북을 비교해서 생생한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3년 동안에 걸쳐 153회가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강찬선 아나운서와 그 시대의 최고 명성을 자랑하던

 이광재 아나운서가 주로 맡아 주셨고 이병열, 최규락, 이팔웅,

변웅전 아나운서와  김정자, 송경원, 김난숙님 등 부드러운

 여성 아나운서 사회나, 스리보이, 곽규호님 등

연예인도 사회를 맡아 주셨습니다.

 

3년간 출연한 가수는 위에 든 가수 외에도

현인, 송민도, 조애희, 금호동, 나도일, 최희준, 박형준,

 이미자, 조백사, 김호성, 김정구, 박경원, 이길남, 양미란, 고복수,

명국환, 박가연, 최선미, 오기택, 유성희, 남강수, 조미미, 송춘희, 한복남,

 김 세레나, 남미랑, 케리부록, 박경원, 손석봉, 정숙자, 김상국, 최숙자, 김정희,

남일해, 한명숙, 고애선, 박재란, 백난아, 김호성, 최은정, 현미, 김일홍, 남일해,

 김부자, 고대원, 오기택, 박연숙, 박상록, 김상희, 박연국, 위키리, 이은희, 동방셩애,

 서유라, 김일홍, 은방울, 배삼룡, 문주란, 김형택, 스리보이, 김일홍, 이은관, 김   철,

송미경, 김호성, 임선아, 유주용, 정훈희, 차중락, 박토미, 최정자, 김일홍, 정은숙,

 진송남, 박지연, 김계자, 쟈니 브러더스, 남진, 이 씨스터즈, 리타 킴, 봉봉

4중창단, 태진아, 남보원, 이정민, 문정선, 아리랑 시스터즈, 이금희,

배호, 최정희, 남상규, 이주랑, 남석훈, 강소희, 서영춘, 김풍연,

박지연, 조미자, 남석훈, 투닥스, 파랑새 자매, 정준호, 

김하정, 윤일로, 리라 박, 김장호, 이주랑, 부르벨즈,

 

한세원, 장세정, 한세훈, 최승호, 박홍재, 호가성,

태정, 이영숙, 구기홍, 송대관, 화니 씨스터, 차도균, 나훈아,

이상열, 한진성, 이영숙, 홍경아, 한진성, 황인자, 박난주, 차중광,

노은희, 태원, 은방울 자매, 김형택, 강정화, 김헌정, 정수현, 김선녀,

이주랑, 이근철, 이채연, 이래도, 공재일, 윤소영, 이혜경, 최흘,

이강식, 최난희, 김연옥, 한갑수, 문제안, 김진복, 구봉서

 님 등 시대의 가수, 방송연사, 코메디언 성우 등

연예인들이 여러차례 출연 해 주셨습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대공방송으로 프로그램이어서

 그 특성상 북한 실정을 잘 아는 월남 귀순자나 자수간첩 등으로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그 분들이 특별연사로 출연해서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출연 했던 분들을 보면 이필은, 정낙현, 최송식,

오정렬, 이찬호, 이시영, 강예묵, 최정희, 장대형, 민경태, 이대원, 주도선, 이동준,

김정기, 김석용, 김연길, 오기완, 양준명, 조성직, 강문, 이제등, 한일성, 정형준, 김명권,

 김행일, 한홍석, 원봉균, 유대연, 이영명, 최광석, 김성하, 박원호, 김옥산, 이원식,

강주현, 한일성, 임종문, 안수길, 김달선, 박명하, 김정기, 김규항, 정신화 부부,

김영길, 정신화, 박선봉, 김신조, 정동춘, 고등운, 장유석, 이항구, 우길명,

강대진, 이용석, 김익호, 박명하, 강주현, 이영섭, 김연길, 김연중,

 정길수, 홍정찬, 윤진영, 조응택, 김규황 님등입니다. 

 

 

 

 

위는 PD 엄복영님이 1965년

판문점을 출입하던 때 촬영환 사진입니다.

프로듀서 엄복영님은 1961년 KBS 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해서 얼마 안 되어 국제방송국 프로듀서로 전직, 국제방송국

대공방송의 주도적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대공방송의 기획, 편성,

그리고 1960년대 중반 3년 반에 걸친 판문점 출입, 통일무대 등 중요한

 프로그램을 담당하다가 제1방송으로 옮겨 아침시간에  날마다 방송되던

즐거운 우리 집 등 연출을 맡았고 1973년 공사가 된 후 본사 부장,

군산방송국장, 강릉 방송국장, 진주방송국장, 전주방송

총국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엄복영님이 공개방송 통일무대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일을 기억하는 필자가 자료를 요구하자 

뜻 밖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한 사회자나 가수, 연사등

세심한 기록이 정리된 두권의 노트를 주셨습니다. 그 노트와

 엄복영님의 얘기를 바탕으로 오늘 글을 썼습니다.  

 

 

 

 

1960년대 중반 그 시절의 판문점 모습을 볼겸해서

 판문점에서 촬영한 엄복영님 사진 몇장을 골랐습니다.

 

 

 

아래 사진의 눈 덮힌 판문점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사진을 찰영하는 시간에도 눈발이 날리고 있군요.

 

 



천재음악가 한동일 귀국 인터뷰





1942년에 태어나

6.25 전쟁 중 KBS 어린이

합창단을 하다가 1950년대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천재 음악가(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한동일이        1965년 귀국했을 때

엄복영 · 김운채 프로듀서가

한동일을 만나 인터뷰

하는 장면이다.


 

1966년 이용상국제방송국장님, 엄복영PD, 이용억, 이동린, 배덕환, 김근호, 이순자, 곽영자님등

국제방송 요원들이 서부전선을 방문할 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용억님 제공),

 

 

 

2014년 4월 26일 첫 방송터 기념행사에서

1950년대 강영숙 아나운서와 엄복영 아나운서

 

 

 

2014년 5월 7일 고양 꽃 박람회에서

 

 

  

 

2014년 5월 7일 고양 꽃 박람회에서

엄복영, 이남무, 최덕용, 이장춘이 함께

 

 




이남무 친우와 류인창 친우가 번갈아 가며 사진을 촬영했기에



1961년 KBS 응시 수험표를

볼 겸해서 아래 사진을 올렸다.

그때 방송국은 공보실이나 공보처가

아니라 잠시 국무원 사무처 소속

으로 되어있던 시절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고대원 판문점의 달밤-1.wma

 


고대원 판문점의 달밤-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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