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잔국의 TV수상기가 30,000대에서 머물고 있을때 그때가지만 해도 사람들은 라디오를 친구삼아 즐기며 지냈습니다.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려는 생각으로 사진들을 골랐지만 반세기가 지난 일이라 사진 상태가 고르질 못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 못하던 시절이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며 라디오와 함께 했던 시절입니다.
HLKA, KBS 제1라디오 1964년 그때의 방송
그시절에도 노래자랑이 인기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요일 낮 12시가 끝나면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노래자랑 이었습니다. 이 노래자랑은 지역에 있던 각 방송국에도 경음악단도 있고 방송국에 따라서는 전속가수도 있어서재법 재미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래자랑을 통해서 우승자로 선발되면 서울에서 연말 아마츄어 톱싱거대회를 했습니다. 톱싱거로 뽑히면 KBS전속가수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래사진은 입선자들에게 시상을 하는 장면이고 1964년의 우승자는 성향(아래사진 왼쪽)군이었습니다.
연말 톱싱건 대회는 기성가수들이 출연 하는 노래향연과 함께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1964년의 노래향연은 남녀 인기가수 노래대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자팀과 남자팀이 노래대전을 갖고 열창하는 모습입니다.
여자팀은 신 카나리아, 최숙자, 박재란, 이금희, 이 씨스터즈가 남자팀은 고운봉, 유주용, 현인, 도미, 봉봉 4중창단이 출연한 가운데 남성팀이 우승을 찾이해서 이홍수 KBS 중앙방송국장으로 부터 우승기를 받았습니다.
라디오께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공개방송 이었습니다.스튜디오에서도 하고 학교에서도 했습니다. 연말에는 1년동안의 우승자에세 시상을 했고 1964년에는 서울의 휘문고등학교가 우승을 잦이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김석호 PD와 박종세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면이고 아래사진은 이홍수 중앙 방송국장이 시장하는 장면입니다.
이홍수국장으로 부터 라디오께임 연말 우승기를 받는 휘문고등학교
이광재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되는 퀴즈열차 녹음장면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소리로만 전하던 아나운서들이 청취자들 앞에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도 하며 청취자 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라는 공개방송이 있었습니다. 위는 공개방송 모습이고 아래는 공개방송을 끝낸 아나운서들이 남산의 중앙방송국 현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현관으로 들어가면 공갱방송을 했던 제 1연주실이 잇습니다.
1,배덕환, 2.이병열, 3.김난(蘭)숙, 4.김규은, 5.조길자, 6.김정자, 7.송경원, 8.이계영, 9.윤미자 10. 임문택, 11. 이승상 12.이규항, 13.김기행, 14.이영열, 15.인주희 그 앞 최두헌, 16.이팔웅, 17.이광재, 18.송한규, 19.변웅전 20.이승상, 21.소병규, 22.김재영, 23.안용민 아나운서입니다.
1960년대는 월남전이 불을 뿜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월남에 많은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출발할 때 마다 서울을 비롯해서 첫 출발지인 춘천이나 마지막 출발지인 부산에서는 대대적인 환송벙송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환송 시가행진을 중게방송하는 모습입니다.
TV가 적을때라 라디오드라마가 중시되었습니다. 1964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두편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대 방송된 남과 북의 주제곡은 1983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주제곡이 되었습니다. 이때 방송될 때는 곽순옥이 불렀지만 1983년에는 관순옥님이 해외로 간 뒤라 패티킴이 불렀습니다. 이 두편의 드라마는 작가도 비중있는 분들이었고 출연자도 이름있던 성우들이 많이 출연했습니다. 김영수 작 큰사위 작은사위는 오승룡, 주상현, 이혜경, 윤미림, 이창환, 이광자, 김인배, 김순자님등이 출연했고 한운사 작 홍두표 연출 남과 북에는 구민 이창환, 신원균, 주상현, 오정한, 윤미림, 임족국, 최을선, 김장환, 김익중님등이 출연했습니다. 이무렵 효과는 옹상수, 최광일님등이 맡았습니다.
위 사진은 KBS합창단이 KBS교향악단의 반주로 공연된 오페라 루치아 아래는 KBS교향악단 연주모습입니다. 교향악단이 없던시적 KBS교향악단은 그 역할이 컸습니다.
이홍수국장으로부터 신춘문예 당선 인증서를 받는 심영식,
우수한 드라마 작품을 찾기위해 1964년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해서 심영식님의 작품이 당산되었습니다.심영식님은 드라마를 쓰고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시던 분입니다.
KBS는 1947년 어린이 합창단을 창립해서 해마다 새로운 단원을 뽑았고 6,25전쟁으로 부산피난시절을 하던 시절에도 어린이 합창단은 운영되어서 이 어린이 합창단에서 훌륭한 음악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위 사진은 1964년 KBS어린이 합창단의 모습이고 아래는 송경원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누가 누가 잘하나 공개방송입니다. 어린이 합창단과 어린이 공개방송 누가 누가 잘하나는 아래 영문자주소를 클릭하셔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KBS어린이 합창단의 어제와 오늘 http://blog.daum.net/jc21th/17780324
방송사상 최장수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공개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7
KBS에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유치원 어린이들로 구성된 전속 아기노래회가있섰습니다.
해바다 실시되는 방송어린이 음악 콩클대회가 있었습니다. 1964년에 열린 대회에서는 은석국민학교 합창단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은석국민하교는 한 . 미 수교 129년만에 처음으로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하는 성김 한국 이름으로 김성용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어린이 드라마 콩쥐 팥쥐를 방송하는 장면입니다. KBS는 늘 이나라를 짊어지고 갈 어린이 방송을 중시 해 왔습니다.
1964년 방송의 날 첫 행사가 있었습니다. 1947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부터 처믕르로 HL을 받아 사용한날을 방송의 날로 정하기로 했지만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라 10월 2일로 했습니다. 그러나 10월 2일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에 따라 뒷날 호출부호가 처음 정해진 9월 3일 방송의 날로 정했습니다. 사진은 진명여고안에 잇던 3.1당에서 거행한 제 1회 방송의 날 행사모습입니다.
1964년 아나운서 강습 수료식 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유병은, 박능상, 장기범, 한사람건저 김영궈느 김재연, 이홍수, 홍천, 이인관, 노정팔님이고 뒷편에 임택근, 박상규님 등이 보입니다, 변웅전, 소병규, 이승상, 이은경 아나운서등이 이때 들어왔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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