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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에 올린 방송인물에 관한 글의 이해(理解)

이장춘 2011. 12. 11. 04:09

 

  

 

춘하추동방송의 "방송인물 편" 글이

어느 직종이나 분야에 다소 편중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는것은

 여러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1,500편이 넘는 글을 다 읽기가 어려워 

일부분만 읽으시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또 방송사적인 배경을

이해하시지 못한데서도  빚어진 오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글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써 나가고 있는 것이어서 잘 못된 부문이나

모자라는 부문은 늘 수정 보완 해 나가도록 할 것임을 말씀

드리면서 몇 가지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춘하추동방송에 올린 방송인물에 관한 글의 이해(理解)

 

 

 

 

1927년 방송을 시작한 이래 일제 강점기

공개채용으로 선발한 방송인은 아나운서와 기술인

밖에 없었고 훗날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편성원이 있었다고

해도 그 분들도 원래는 아나운서로 들어온 분이었거나

아니면 특채로 선발된 분이었습니다.

 

아나운서 1호라고 하면 이옥경님을 듭니다.

방송사에서 최초의 방송인이라면 노창성님이고 그 분은

 기술인이기도 했습니다. 방송기술 1호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기술 1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 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방송 1호라고 하면 최승일  (최승희의 큰 오빠)이라고 하지만  그분은

소설가, 씨나리오 작가이기도 하고 연출가이기도 하고 또 아나운서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방송사에서  최초의 프로듀서라고 하면  최승일님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또 해방된 후의 PD 1호라면 노정팔님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노정팔님도 1945년 11월 아나운서 공개채용시험을 통해서

선발된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아나운서를 해 본적이

 없어서 프로듀서로 분류됩니다.

 

 

 

 

6.25 전까지는 프로듀서나 성우라는 용어는

 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성우를 연기자라고

 했고 프로그램 편성이나 제작에 임했던 사람을 편성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용어는 방송초기에 쓰다가 일본이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적성국 용어라고 해서

아나운서라는 말 대신 방송원이라고 했습니다.

 

1954년 성우를 모집하면서 성우라는

 용어를 써서 이때 선발 된 분들을 성우 1기라고

하고 그 이전에 전발된 분은 특기라고 합니다. 프로듀서는

1957년 공개채용시험을 통해서 세 사람을 공개모집 했습니다.

그 전에도 프로듀서라는 말은 있었지만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기자는 해방되면서 방송원(아나운서)이던

문제안님이 현장 취재를 하면서 방송기자 1호가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방송국에 기자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하면 우리방송사는 오랜 기간

아나운서와 기술인이 방송을 해왔고 기자나 프로듀서

성우 라는 말은 해방 후에 생긴 용어입니다.

 

또 1950년대 말까지는 라디오 방송시대이고

그때까지 일반 사람들은 방송국 직원이 아나운서만

있는 줄 알 정도로 그 위상은 중요했습니다. 기술인이

없이는 방송이 나갈 수 없어서 기술은 절대적인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밖에는 잘 나타나지 않은 분들

이어서 일반 청취자들은 잘 몰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방송인물" 카테고리에

올린 글은 1960년 이전부터 활동하신 분들입

니다.   그러다 보니 그 시대에 방송 일을 하셨던

아나운서나 기술인에 관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아나운서에 관한 글 얘기는

 “한국 아나운서 클럽과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 글이 집중적으로 노출되어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이장춘이 아나운서에 관한 글을 집중적으로

 쓴다고 생각 하시는 분이 계신 같습니다. 저는 글쓰기 시작한 이래

 1960년 이전에 활동하셨던 분들 가운데 기억해야 할 만한 분들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썼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그동안 써 올린 아나운서 이외의 방송인물

(단파방송 연락운동 포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송 기술인

 

노창성, 한덕봉, 이남용, 황태영, 이인관,

한기선, 유병은, 성기석, 김성재, 조종국, 권오진,

이근창, 박경환, 김성배, 김성열, 왕종현, 송재극

 

 

편성 및 방송 경영 관련 방송인물

 

최승일, 윤백남, 김정진, 심우섭,

이혜구, 이하윤, 김석훈, 김억, 김진섭,

이정섭, 양제현, 송영호, 모윤숙, 노천명, 홍양명,

오재경, 정환옥, 노정팔, 배준호, 이운용,

문시형, 최창봉, 정순일, 홍두표

 

 

방송 기자

  

문제안, 한영섭, 조동표, 박상진, 이정석

 

 

방송 작가

 

김희창, 김영수, 이서구, 유호,

조남사, 조흔파, 한운사, 박서림,

 

 

음악(가수는 사연 깊은 옛 노래나

기본 테마에 여러 편 올라있음)

 

홍난파, 안익태, 박시춘, 손목인,

남인수, 이난영, 왕수복, 손석우,

 

 

성우 연기자

 

이백수, 복혜숙, 황정순, 장민호, 구민,

이혜경, 오승룡, 고은정, 김세원

 

 

기타

 

방정환, 윤극영, 송해

 

 

부족한 부문은 계속 써 나갈 예정입니다.

잘못된 부문은 바로 잡아주시고 부족한 부문은

 보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보내주신

자료는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글 쓰는데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1,000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원과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막식에 나와 주신분들의 성함을 옮긴다.

박규진, 박경환, 남상국, 김석호, 이춘사, 강정도, 왕종현,

임석규, 이현, 최만린, 유해룡, 송영수, 김창희, 최순용, 김영우, 최수진,

김영효, 강신철, 문제명, 민중기, 이병인, 000, 이용선, 이인관, 시노하라 아들 부부,

고가 도에, 문제안, 김봉렬, 김성배, 조한승, 권오진, 이해상, 곽진상, 김용택, 김영완, 서규석,

최당, 조종국, 이상만, 문시형, 이인영, 성기석, 김익진, 배준호, 장두원, 이수열, 강찬선, 김영진,

서명석, 박근주, 한희동, 전옥배, 정항구, 김집, 김덕수, 강신조, 최종채, 김소원, 조남두,

김인태, 조돈준, 박한준, 유경환, 권혁래, 김정현, 천영조, 김명희, 이덕근, 송영호,

김성재, 최학수, 손석주, 최영신, 남학현, 김창구, 김성열(렬), 박찬숙, 박종민,

황우겸, 임택근, 유병은, 최삼경, 이준순, 김상헌, 조부성님등

86분의 퇴역방송인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조수미 서랑의 기쁨.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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