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MBC 문화방송 50년 역사 사옥 변천으로 본 시대별 방송의 특성

이장춘 2011. 10. 11. 02:56

 

 

서울 MBC가 이 땅에서 첫 전파를 발사한지 

올해(2011년)로 꼭 반세기 50년이 되었다.  상암동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MBC의 지난 반세기를 사옥이 자리한 시대를 따라

흔히 인사동 시대, 정동시대, 여의도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사동

시대가 라디오방송을 개국하고  전국 방송망을 확장하면서 서울의 50Kw

출력증강으로 한 라디오방송을 바탕으로 전국방송의 기반을 다진 시기라면

정동방송시대는 TV방송시대를 열면서 TV 3국 시대라고 불리는 극심한

경쟁의 시대다. 1982년부터 시작된 여의도시대는 1980년 신군부의

 방송 통폐합으로부터 비롯된 MBC공영방송시대를 열면서

 칼라방송으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MBC사옥 변천으로 본 시대별 방송의 특성

 

 

 

 

1961년 MBC가 개국을 준비할 때

새로운 상업방송의 시작이라는 희망과 의욕이

충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6.25상흔이 겨우 아물던 시절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민영 상업방송이 가능 할 것인가? 로부터

 비롯되는 그늘이 지워지기도 했던 때다. 정환옥의 의욕과 자신감에

김지태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추진된 것이었지만 김지태가

경영하던 조선견직의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상황이

 달라진 대다가 5.16후 김지태의 구속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 열리는 상업방송의 사옥은

 규모 있는 건물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서울시내 복덕방을 모두 돌아다녀 찾은

 건물이 인사동의 동일빌딩이었다. 새로 지어 댄스홀로

사용하려던 동일빌딩 5층의 공간이 주위의 건국대학교로

허가가 나지 않아 비어있던 홀을 화폐교환이 있기 전

700만환의 전세금에 200만환을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사용한 건물 건평 109평이

 MBC인사동 사옥이었다.

 

이때 자금사정이 극도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계약금이외의 전세금도 지불하지 못하고 운영비도 없어서

 사채를 내어 방송국을 설립하다보니 준비요원들의 봉급도 제대로

 지급 할 수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흥의 송신소는 100평도 안 되는

 땅에 안테나와 지선, 어스선을 시설하기 위해 주변 농경지를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송신소를 세우던 시절이다.

 

 

 

 

방송이 나가야 돈이 들어 올 수 있어서

방송일정은 최대한 앞당기려고 했지만 자금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라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환옥을 비롯한 준비요원들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준비 1년이 지난

 1961년 12월 2일 개국방송을 내 보냈다. 시민회관에서 갖은 개국 행사에는

많은 정관계인사들과 경제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때의 김지태 사장은

 문화, 경향신문 사사에서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시민회관에서 가졌던 개국의 축전은

서울시민들을 들뜨게 했고 또 화려했다. 식장을

화려하게 꾸며서도 아니고 축전의 철차가 다채로워서도

아니었다. 시민들의 흥분 섞인 관심과 첫 민간방송의

라디오 소리가 한데 어울려서 화려한 개막으로

 장식 해 주었다는 것이다.

 

-중략-

 

개국의 축전에 나왔던 많은 광고주들이

그 자리에서 나를 붙들고 까지 좋은 시간을 얻으려고

서로 다투어 교섭을 해 오질 않겠는가. 이를 보고 경영수지에

대한 그간의 노심초사가 기우였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김지태사장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MBC는 1963년부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등 지역 방송계열사를 설치하고

 1966년 출력을 50Kw로 늘려  모름지기

 전국방송으로 키워나갔다.

 

 

 

 

 정부로부터 tv방송 허가를 받아

 정동에 새로운 사옥을 짓고 1969년 8월 8일부터

 TV방송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로부터 정동방송시대가

 열리고 본격적이 TV방송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1961년 12월에

 문을 연 KBS TV, 1964 12월에 문을 연 TBC동양방송에 이어 MBC가

 TV방송을 실시하면서 극심한 TV방송 경쟁시대에 접어들고 시청률을

 올리는데 방송국의 사활을 걸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지나치게 자극시켜 TV방송의 역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을 자아내기도 했다.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 해 오던 라디오방송이

 뒷전으로 밀리고 TV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고 생활풍속이 급속도로 달라져갔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가 열리면서, 70만대로 시작된 TV수상기는 10년사이애

10배가 늘어 80년대를 맞으면서 700만대가 되었고 1980년에 이르러

방송  통폐합과 컬러 방송을 실시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방송 통 폐합은 1공영 TV방송, 2민영방송이 모두 공영 TV방송으로

 바뀌었다. 민영방송이던 TBC동양방송은 KBS에 통합되었고

 문화방송의 주식 70%와 문화방송 계열사들 주식 51%

이상이 KBS 이양되었다. 형식상으로는 KBS가

 MBC의 대주주가 되었지만 방송은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1982년부터 MBC의

여의도시대가 열린다. MBC시설은 1986년까지

 단계적으로 여의도로 옮겨지고 정동사옥은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사가 분리되면서 경향신문사의 사옥이 된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열풍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1988년 12월 26일

 방송진흥회법이 제정되고 31일 방송문화 진흥회가 발족하면서

방송통폐합으로 KBS에 이관되었던 70%의 주식을 다시

인수받아 MBC의 운영권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SBS가 새로 설립되어

 다시 지상파 TV 3사가 되고 CATV, 위성방송 등

 다채널 방송시대가 열렸다. 2010년대를 맞으면서 종합편성

채널이 허용되고 디지털방송이 실시되면서 또다른

 새로운 방송시대를 예고한다.

 

 

 

 

MBC 관련글 보기

 

 

MBC 문화방송 창사 50년, 반세기

http://blog.daum.net/jc21th/17781020

  

 임택근 황우겸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512

 

MBC TV 텔레비전 개국 45주년 / 1969년 8월 8일

http://blog.daum.net/jc21th/17782224

 

MBC, 문화 방송개국 / 서울의 최초 민영 상업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1

 

MBC사옥 변천으로 본 시대별 방송의 특성

http://blog.daum.net/jc21th/17780993

 

mbc 서울 문화방송 초기 방송인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992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그 이름(명단) 그 얼굴 사진

http://blog.daum.net/jc21th/17782218

 

아나운서 전성시대 MBC 초기 아나운서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994

 

MBC 탤런트 기별명단과 드라마 모습으로 본 그때 그 얼굴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995

 

HLKU 부산 문화방송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116

 

사진으로 본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부산 mbc 문화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0

 

mbc-tv 초기 방송, 그때의 프로그램 사진을 모아

http://blog.daum.net/jc21th/17780458

 

신문 기사로 본 KBS TV 개국 MBC 1961년 12월 

http://blog.daum.net/jc21th/17782243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희망가.mp3

 

희망가.mp3
2.8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