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부산 문화방송 mbc HLKU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김지태 김상용 정환옥

이장춘 2011. 10. 9. 03:59

 

 

   
우리나라에서 라디오상업방송이 최초로

방송을 시작한 것은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었습니다.

HLKU 부산문화 방송이 부산 중앙동 4가 29-3에서 호출부호 HLKU,

출력 1Kw, 주파수 1035Khz의 최초 방송을 내 보낸 것은 1959년 4월 15일로

이것이 우리나라 라디오 상업방송의 시초이고 오늘날의 문화 방송으로 발전했습니다.

HLKU 부산문화 방송이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상업방송이었다는 점과 마산에서

있었던 김주열군 사망사건으로 4.19가 촉발되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방송사적 큰 의미를 안고 있습니다. 

 
 
HLKU 부산 문화방송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방송은
1956년 설립된 텔레비젼방송국 HLKZ이지만
어려운 운영상황속에서 얼마 안되어 문을닫았고
1954년에  설립된 기독교방송은 민영방송이기는
했어도 일반방송은 아니었기에 부산 문화방송이
 최초의 상업방송으로 불리워진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상업방송
허가가 안나오고 있을 때 부산에서 새로운
 방송국이 문을열었다.   그때 부산은 일본방송의
침투가 극심 해서 정부에서도 고민거리였고 또일본에서도
상업방송이 실시되고 있을 때여서 부산 시민들도 상업방송에
 관심이 있었는지라 상법방송 허가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
실업가 김상용은  수익성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방송국 설립에 착수했다.
 
 경상남도 양산에 살면서 조선방송
협회 때부터 방송일을 해온 정환옥의 방송경험을 살려
 두사람은 힘을 합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최초의 라디오 상업방송
이었다.다채롭고 다양한 방송을 내 보내려는 노력과 함께 하루
7시간으로 출발한 방송시간을 지속적으로 늘려1961년
5월에는 하루에 11시간의 방송을 편성했다.
 
4.19등을 거치면서 국민에게 올바른
소식을 전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처음부터
흑자가 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방송국의 운영은
잘 되어가느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봐서
그랬던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우선 방송 제작부터 문제였다.
마이크로 웨브 등 통신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했을때라 서울에서 제작해서 부산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많다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 
 수지계산을 맞추자니 광고비가 비싸 광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계약된 광고도 해약이 잇달았다.
 
거기다가 첫 해에 그 유명한
사라 호까지 겹쳐 재정상 지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방송국은 설립했지만 재력이
충분한것도 아니어서방송국을 더 이상 끝고 가기가 
 어려워져 결국 경영권을 재력이 튼튼한 부산의
 조선견직 그룹 김지태에게 넘기게 되었다. 
 

 

   
김지태는 정환옥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고희동이 그의 명의로 허가만 받아놓고

방송국설립을 미루워오던 서울  민간방송을  인수해서

서울로 진출, 늘날의 문화방송의기초를 닦았다. 초기에

부산 문화 방송을 이끌어 간 사람은 정환옥을 비롯해서

 KBS 에서 근무하던 전응덕, 오사랑 (吳史良),
이수열이 주축이 되었다. 
 
정환옥은 뒤에 서울 MBC 전무로
창설 주역이 되었고 RSB설립때 참여해서  
TBC개국 주역이 되었으며 뒷날  남산 종합 타워를
 건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올해 90세가 된 환옥은 

방우회 회원이기도 하다.  전응덕은 TBC보도국장, 전무를

거쳐서KBS초대민선이사, 광고단체 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이수열은 KBS에 돌아 와 간부직을 맡다가 

 공사가 된 뒤에 정년퇴직 했다. 아래 영문자

주서를 클릭 하시면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본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부산 mbc 문화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0

 

 

   

 부산문화방송에서 손을 땐
김상용은  서울로 와  남은 힘을 쏟아
서울 문화방송이라는 방송국 설치 허가를 받아서
 방송국을 설립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허가는
기간이 지나 효력이 상실되었다.  그때의
서울 문화방송은 지금의 문화방송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이 때의 설립 허가 사항을  살펴본다.
 
자유당시절 방송국 설립허가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때는  4.19 민주화
바람을 타고 방송국 설치 허가가 네곳이 나 있었다.
허가 취소된   김상용의 서울문화방송이 있었고  
최두선 명의의 동아방송이 있어서 동아방송
설립은 그대로 실현 되었다.
 
  고희동   명의  민간방송주식회사는
부산 문화방송에 인수되어  MBC로  발돋움했고  
 천주교 김규환님 명의의 라디오 서울은 방송실시 주체는
달랐지만  RSB로 출발해서 TBC로  커 갔다. 
 
 60년대 70년대 라디오 전성기를 거쳐
 
TV3국시대를맞게 된다.  
 

 

 

 

 

 

 

 

그리운 강남-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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