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중 제주방송국에서 가슴 아팠던 일
제주방송국은 동란 중 만약을 대비해서
대구에 있던 피난정부가 1950년 8월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착공한지 한 달도 안 되어 개국된 방송국입니다.
이 제주방송국이 개국 2주년행사를 끝내고 그 결산등을 위해
숙직실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끝내고 잠을 자려던 차에 새벽
한시 경찰로 위장한 공비 7. 8명이 방송국을 습격해서
미처 피신하지 못한 방송과장 김두규님을 포함해서 세 사람을 끌고 가 한라산 중턱에서 학살한 일이 생겼습니다.
4. 3 사건 등으로 도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어려운 터에 이번일은 방송국은
물론 전 도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시체는 일주 일만에 찾아 방송국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 김성배 총국장 시절 1993년 방송국 안에 추모비를 세워그들의 넋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날의 일을 그날 밤 구사일생으로
피신해서 화를 면한 장병량님이 1975년
KBS사보에 써 놓으셔서 여기에 옮깁니다. 장병량님은 제주방송국개국 때 들어오셔서 1978년까지 27년여를 방송국에근무하셨고 KBS사우회 회원으로 계시다가 2011년 세상을 뜨셨습니다.
나는 그날 저녁 다음날 근무를 생각해서
일찍 잠을 청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숙직실에는
아나운서와 급사 등 5.6명이 있었고 방송과장이던 김두규씨는 개국행사 경비결산을 위해 사무실에서 잔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새벽 1시쯤일까. 깊은 잠에 들어있던 나는
대나무 갈쿠리 같은 것으로 단잠을 방해받는다고 느꼈다.
나는 김두규 과장의 장난인줄 알고 왜? 이러느냐 고
고함을 지르는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문 앞에는 경찰복장을 한 괴청년 7 . 8명이
총을 들고 우뚝 우뚝 서 있었고 함께 자던 동료 직원들도
모두 일어나서 공포에 질린 체 모두 서 있었다. 순간 그들이
고무신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공비임을 알아차리자 눈앞이 캄캄했다. 그들은 거친 말투로 이름과 직책을 물으며 옷 입기를 재촉했다. 불현듯 생각나는 것은 사건전날 공비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난 한 여학생과 남제주군 대정읍 산방산에서 생포한 공비 3명이 공비의 잔학상을 폭로하는 방송을 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이들에게 끌려가서 죽음을 당하나
도망가다가 죽음을 당하나 죽기는 매일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미 도망치다가 공비와 격투가 벌어진 채종기(견습기술원) 군의 비명소리를 뒤로 들으며 정문을 박차고 정신없이 뛰었다.뒤에서 고함치며 뒤 딸아 오는 소리를 들으며 단숨에 솔밭사이로 숨어들었다.
이어서 남문파출소에 뛰어 들어가 공비가
출현 했다고 소리쳤다. 새벽 2시 15분쯤 되어
출동되는 경찰과 함께 방송국에 되 돌아와 보니 김두규 방송과장과 채종식 김석규 등이 이미 공비들에게 끌려갔고 방송국의 모든 기물이 파손되어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김두규 방송과장
다행이 숨어있던 김중훈, 현승국,
그리고정모 아나운서가 무사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 끌려간 동료들 생각으로 비분 속에 있었다. 날이 밝아 150여명의 경찰관과 200여명의 청년대원이 합세해서 공비에게 끌려간 동료직원 구출에 나섰다.며칠 후 한라산 500M지점 관음사 부근에서 소나무로 위장된 세 사람의 시체를 찾아서 방송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후에 무장공비의 진술에 의하면 김두규 과장등 동료직원 세 명은 공비에게
총살당하는 순간에도 “대한민국 만세 ! ‘
를 불렀다고 한다.
제가 어렸을적부터 선친 (현승국: 당시 제주방송국 9.15 생존자 중의 한분이심)으로부터 4.3사건의 스토리와 함께 자주 듣곤 했던 가슴아픈 이야기 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제주동국민학교) 3학년 때에는 담임(여)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 중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로 인해 저를 통해 선친과 만나게 되었고, 선친의 증언으로 담임선생님의 부친 (당시 제주방송국 9.15순직 자 중의 한분) 유가족들이 연금을 받게 되기도 했죠. 제주 방송국 기념행사때마다 선친께서 인터뷰 하시며 증언하시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66주년 4.3사건을 추념하는 올해 제주도민의 아픔과 1년 전 82세의 삶을 사시고 천국으로 가신 선친의 빈자리가 소중함을 느낍니다. (생전에 제주 방송국을 많이 많이 사랑했었거든요, 제주 방송국 당시 기념 사진들이 많이 있어요.) 제주 방송국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현승국의 아들(현주영 - 순복음총회신학교 학장)목사...
이동길 netzen 선생님 글
2014.04.27 20:54
저도 사연 잘 읽었습니다. 어제 만나 저의 사촌(문지수)의 돌아가신 고모님께서 제주 KBS 방송국 최초의 아나운서 라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문보혜란 분이 아나운서로 재직한 정보가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저는 현재 현주영 연구원장님과 같은 학교 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이동길입니다.
김정훈 선생님 글
2016.07.07 17:05
김두규 방송과장의 친손자입니다. 1993년 사진 속 그날 그 자리에 있었죠. 답글 중에 현주영 님이 쓰신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저의 친고모님인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하셨죠. 역사모임에 들어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울컥 했네요. 할머니께서는 올해 94세. 건강히 계십니다.
┗
유카리나 님 답글
2016.10.30 06:22
이건 제 생각인데요, 다행히 94세의 연세에도 건강히 계시는 고모님의 현재나 과거의 사진 모습과 성함과 짧은 설명이랄지 내용을 적어서 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국장님께 보내 주시면 제주역사(6.25)의 한분으로 기록에 남을 거 같습니다.
이장춘 답글
반갑습니다.
할머니가 지금도 건강 하시다니 더 더욱 기쁜 일이고요.
현주영 선생님이 순복음총회신학교 학장)목사...님이라고 하셨으니 연락이 되시겠군요. 자료등이 있으시면 제공 해 주셔요. 잘 보존 하면서 올려 드리 겠습니다. 편안하시고 행복 하심을 기원합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2016.10.30 06:16
춘하추동 방송을 통하여 이 아픈 역사의 희생자이신 분들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었군요. 이것 또한 국장님께서 춘하추동 방송을 열심히 운영하고 계시는 보람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작은 기록이나 사진이라도 묻혀져 지나가 버리게 되지만, 춘하추동방송 같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6.25 한국전쟁과 제주방송국 http://blog.daum.net/jc21th/17782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