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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들 강영숙, 김인숙, 윤영중, 장금자, 문복순, 민병연, 이현숙, 송영필

이장춘 2011. 6. 16. 21:13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들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대명사,

라디오 전성시대의 여성 아나운서들!

그 시절의 사람들은 귓전에 들리는 최상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표현할 때 흔히들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방송에서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그리고 다정 다감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방송을 하던 여성 아나운서의 모습은 청취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며 가슴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여성아나운서 두분의 목소리를 음향으로 

실었습니다. 누구인지 맞추어 보셔요. 

 

 

 

 

그 시절에 촬영한 사진 몇장을 골랐습니다.

정동방송국 현관에서 왼쪽부터 강영숙, KY,  장금자,

윤영중, 김인숙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는 노정팔

방송과장님과 왼쪽 두번째부터 김인숙, 장금자, 강영숙, 윤영중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이때 KBS는 이 사진 속 

네분의 여자 아나운서가 근무했습니다.

 

 

 

 

 

 

위 사지은 왼쪽부터 문복순, 김인숙,

송영필, 윤영중, 전영우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남산연주소 KBS스카이라운지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왼쪽부터 문복순, 송영필, 윤영중, 김인숙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57년 문복순, 송영필,

민병연, 이현숙 아나운서가 입사했습니다. 

 

 

 

 

목소리로만 전하던 아나운서들이

청취자와 접할 기회는 공개방송 때였습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연말이 되면 모든 아나운서들이

무대에 서서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도 하며 청취자들

앞에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1957년 12월 

정동에 임시로 마련된 연주소에서 새로 마련된 남산

연주소로 옮겨 실시한 아나운서 언 퍼레이드를 

끝내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1927년 이 땅에서 방송국이 문을 연 이래

 1953년 6.25전쟁이 휴전으로 이어질 때까지 27년간

여성아나운서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분 안

되었니다. 부산 피난시절부터 방송국에 드나들던 강영숙 아나운서가

서울에 돌아와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청주에서 김인숙

아나운서가 중앙방송국으로 옮겼는가 하면 곧이어 부산의 장금자, 이리의

윤영중아나운사가 중앙방송국으로 옮긴후 1957년 문복순, 이현숙,

민병연, 송영필아나운서가 입사했고 곧이어 김정현, 김경숙,

김현수, 서선, 김순영 아나운서가 입사하면서 1950년대

말에는 여성아나운서들이 대폭 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새롭게 편성된 프로그램에는

누가 누가 잘하나, 무엇일까요. 라디오 유치원, 그리고

주부시간이나 음악프로그램 등 여성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그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고 일반 프로

그램도 남자 아나운서들만 하던 뉴스를 제외하고는 전 프로그램에 

여자 아나운서들이 출연했습니다. 지금은  라디오만 해도 채널수가

 많고 TV에도 출연해서 시청자와 접하지만 라디오 채널이 하나

밖에 없던 (기독교방송이 있었어도    종교방송   또는

서울지역 청취에 국한했음) 그 시절에는 청취자

들의 느끼는 감정이 달랐습니다.

 

인기를 끌던 아나운서들도 결혼할 때가 되면

방송국 문을 나서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을 때라

 정들여 듣던 그 목소리도 몇 년이 지나면 다른 목소리로

바뀌곤 했습니다. 그 중의 예외는 강영숙 아나운서였습니다.

방송의 총책임자이도 했던 오재경장관이 직접 결혼을 주선 해 주실

정도였으니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재치로 오랜세월 아나운서 생활을

했습니다. 세 아들을 낳고도 새로 발족한 MBC로 옮겨 1970년대

후반까지 아나운서 실장, 국장급 위원을 지내시는 등

오랜 세월 아나운서 생활을 했습니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방송국문을 나서면

 청취자들과는 거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국내에 계시는 그때 그 여성 아나운서

들은 만남을 갖습니다. 이분들이 방송문을 나선지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벌써 70대

후반 80대 초반이 되셨습니다.

 

 

 

 

위 두 분은 부산 임시 중앙방송국과 청주에서

방송을 시작한 분이지만 잠시 후 중앙방송국에서

만났습니다. 휴전최초로 방송을 시작한 여성 아나운서

습니다.  강영숙 아나운서는 1970년대 후반까지 방송생활을

하시다가 예지원을 설립 30만이 넘는 회원을 배출하면서 아직도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십니다. 두 분의 사진은 20011년  

9월 1일 방송의 날 행사에서 촬영했습니다.

  

 

50년대 아나운서 더 보기 영문자 클릭

 

 

강영숙 아나운서 30년, 예절교육 40년 인생길 / 예지원장

http://blog.daum.net/jc21th/17781375

 

윤영중, 청자색음성으로 사랑받던 1950년대의 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274

 

문복순, 1950년대 인기 여성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431

 

 

 

 

1950년대가 끝나면서 1959년 초 아나운서

모집했습니다. 이때 들어온 아나운서는 김주환

아나운서만 남자였고 김경숙, 김순영, 김정현, 서선벽

아나운서가 모두 여성이어서1960년대에 부터는

 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활동했습니다.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송영필, 강익수, 장기범, 임택근, 박종세,최세훈, 이규영, 강영숙,

 전영우, 황우겸, 유석춘, 강찬선, 김동만, 최계환, 최두헌, 문복순, 장금자, 유창경,

 김준철, 최만린, 이현숙, 윤영중, 조영준, 이본, 이광재, 한경희 아나운서입니다. 

 

 

묵복순 아나운서의 1960년 명동성당에서 성탄절 미사 실황중계방송

 모습입니다. 송한규(2), 유진동(3), 박한준(4)님이 함께 함께 했습니다.

 

 

 

1962년 1월 16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강영숙 아나운서 사진에 박종세, 윤석춘, 김현수, 윤영중,

강찬선 아나운서등 그때의 아나운서들의 얘기를 엮었군요. 

사진은 1962년 동아일보 신문기사 에서 옮겼습니다.

 

같은날의 신문 마이크 뒤에서 라는 제목의

아래 글은  TV방송실시에 즈음해서 그때의 여성

인기 아나운서 김정현, 송영필과  임택근, 이광재,

최세훈님에 관한 얘기를 엮은 글입니다.

 

 

 

2012년 6월 13일 6.25 첫방송 위진록 아나운서 귀국

 환영모임에서 만난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모습니다.

 

 

왼쪽부터  이연영, 강영숙, 문복순, 윤영중 아나운서입니다.

 

 위진록 아나운서와 문복순 아나운서가 다정한 모습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깅영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입니다.

 

윤영중(우), 문복순 아나운서입니다.

 

 

위진록 선생님이 만난 원로방송인들과 함께 한

1950년대 아나운서 강영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가

함깨 한 사진으로 이날 참석 한 분은 번호따라 1. 이혜옥, 2.황인우,

 3.임택근, 4.강영숙, 5.박민정, 6.윤영중, 7.문복순, 8.황우겸, 9.위진록,

 10.한영섭, 11.전영우12.홍기욱님입니다. 이날 사진은 아나운서 클럽

이형균님이 촬영해 주셨는데 이 사진에서 빠져 밑에 올렸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여성 아나운서.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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