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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전성시대 KBS 아나운서

이장춘 2011. 6. 9. 17:43

 

 

 

라디오 전성시대 KBS 남산시절 아나운서 

 

 

1950년 6.25전쟁은 방송전체를

어렵게 만들었고 방송국에서도 방송인들이

북한에 납치되는 등 숫자가 줄어든데다가 VUNC나

VOA에서도 방송을 해야되었기데 그곳으로 옮겨가면서

우리 방송국에는 윤길구, 서명석, 장기범, 최승주님등 몇분만

남아 방송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 피난지에서 임택근, 강찬선,

황우겸, 정순형, 이수열님등 다섯분을 선발했습니다. 1953년 방송국이

서울로 돌아오고 본격적인 방송을 하게되면서 전영우, 최계환,

강영숙, 최세훈, 이광재, 박종세, 김인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가 들어오면서 1957년 말부터 전개된 KBS

남산시대의 얼굴이 되었고 라디오 전성시대를

화려하게 수 놓았습니다.

 

 

 

 

1960년대 까지도 방송국에는

아나운서만 있는 줄 알정도로 아나운서는

방송국의 얼굴이었습니다. 이것은 1927년 2월

16일 방송이 시작되던 날부터 오랫동안 그래 왔습니다.

공개채용시험을 거쳐서 방송국에 들어 오신분은 아나운서와

엔지니어가 있었지만 방송 전면에는 아나운서가 나섰습니다.

해방되면서 첫 기자가 탄생했고 또 세월이 지난뒤에

프로듀서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오랜기간

아나운서는 방송 전면에 섰습니다.

 

해방정국에서는 뉴스 끝에 기자의

네임사인이 들어 갔지만 언제부터인가 뉴스에는

아나운서의 네임싸인이 들어갔습니다. 공개방송이나

중계방송도 아나운서의이름이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

방송 청취자의 대부분은 방송국에 아나운서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나운서는 청취자와 친근했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장기범,

임택근, 이광재, 강영숙, 최계환, 최세훈님등

아나운서는 정말 좋아 보였고 모든 소식을

전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신문도 배달되지 않고 다른 소식원도 별로

없던 농어촌이 대부분이던시절 그 농어촌에서는

라디오를 가진 분은 한 마을에 한두집 밖애 없었고 벽에

매달린 스피카를 듣고 살던시절 그 스피카에서 들려오는

KBS라디오 방송만 듣고 살아온 국민들에게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친구였고 정겨웠습니다.

 

방송에서 나오는 말이면 무조건

믿어버리고요. 그러니 KBS라디오 방송과

함께 살아온 우리 국민들의 의식은 그렇게 형성

되었습니다. 방송의 전면에 나타나신 아나운서의 존재는

지금으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장기범, 임택근, 전영우,이광재, 최계환, 강영숙이라면

남녀노소, 도시, 농촌 할것 없이 어린아이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방송국

 운영도,  방송국장도 아나운서가 하는줄

알면서 방송을 듣고 살았습니다.

 

 

 

 

아래 사진 남산으로 옮기고 첫해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보면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그 시대에 연말이면 아나운서 온 퍼레이드 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 했습니다. 아나운서들이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특기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지요. 귀로만 듣는

방송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정겹게 들었습니다. 제가 방송국에

들어온 후에도 그 프로그램이 있어서 공개방송시간에 방청하기도

했습니다.   60년대까지 이 프로그램은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임택근님이 아나운서실장이

될 무렵 1963년에 방송국에 들어 왔습니다. 그때부터

방송국 내면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1963년 1월 신년특집방송 KBS-TV 아나운서 언파레드 최두헌, 전영우, 문복순 아나운서 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1957년 말 남산시절이 열릴때만 해도

한집 살림을 하던 아나운서는 1960년대 들어 MBC,

DBS,  RSB 등  민영방송이 출현 하면서 아나운서들의

소속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61연 MBC의 출현으로

최계환님이 MBC의 아나운서실장으로 옮긴것을

비롯해서 최세훈, 강영숙님등 이름있던

아나운서가 옮겨갔습니다.

 

1963년 4월 동아방송국이 문을 열때

전영우님이 아나운서실장으로 가시면서 김인권님등이

옮겼고,  64년 라디오서울 (TBC전신)이 문을 열 때 최계환님이

MBC에서 아나운서실장으로 옮기고  KBS와 MBC의 아나운서들이

RSB로 옮기면서 이때부터 방송 3국시대가 열렸습니다.   특히

방송의 얼굴 아나운서들의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습니다.

1964년에는 KBS아나운서 실장, 임택근님 MBC로 옮겨

 KBS 아나운서실장은 이광재님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KBS의 이름 있는 아나운서들이

각 방송사의 얼굴이 되고 방송국간의 불꽃 튀기는

경쟁과 함께  KBS출신 아나운서들이 각 방송국에 포진되어

라디오 전성시대, 60년대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60년대말

텔리비젼 방송시대가 열릴때까지 대한민국 각

방송사들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KBS남산시절은 라디오 전성시대와

아나운서 전성시대가 맞 물리고 민영 방송

출현으로 극심한 경쟁상황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곧이어 TV방송시대가 열리며  PD, 기자등이 방송에

직접 출연 하는 등 제반 사정의 변화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나운서 인기는 대단하지만 엣날과는 많이 변화되는

모습을 실감합니다. 어쩌면 임택근, 정영우, 최계환,

이광재님이 아나운서실장을 하시던 시절이

아나운서 인기의 절정을 이루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사 발족 직전 아나운서실 구성원

 

 

실장 (방 송 관) 강찬선

 

계장 ( 방송관보 )

최두현, 이병열, 최규락, 이규항

 

아 나 운 서

 

박동수, 임문택, 이공순, 정기채, 소병규,

최 선, 김승한, 최평웅, 이천규, 조춘재(조춘제),

이세진,이창호, 박찬숙, 김규홍. 이정부, 임건재, 김영소,

송광자,이해완, 정철웅, 홍승택, 김영자, 이후재. 김윤한,

정문선,김순자, 전인선, 정희숙, 성양희, 송애경,

유숙희,유혜선, 천명옥, 최소희, 김인숙,

이상 40분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아나운서실에는 연대별 입사순서로

아나운서 성함이 쓰여있는 족보가 벽에 걸려

있습니다. 1927년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아나운서로

 근무하신 분들의 명단을 1964년 9월에 작성한 것인데

몇 분이 빠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족보가

 있다는 것도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윗줄 왼쪽부터 장기범, 윤길구, 서명석, 두번째 줄 강영숙, 황우겸, 강찬선,

임택근, 마지막줄 이광재, 전영우, 최계환 아나운서입니다.  

 

1950년대 60년대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목소리의 주인공들의 모습입니다. 
첫째줄 왼쪽부터  장기범,  윤길구, 서명석님,  둘째줄
왼쪽부터   강영숙,  황우겸 , 강찬선, 세째줄 왼쪽부터

 

이광재, 전영우, 최계환님입니다.

 

 

 

실내 체육관이 없던시절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주요경기를 했습니다.

그시대의 최고의 인기절정이던 임택근, 이광재, 강찬선, 최세훈 아나운서가

 모두 참여한 중계방송이었습니다.

 

 

 

서울 중앙방송국의 최계환, 이광재, 박종세, 임동순, 장금자, 윤영중,

부산 전응덕, 최재희, 대구 권오상, 광주 황의돈 마산 서용수, 이완희, 청주 조창동, 

이규영, 이리 백기홍, 서정복, 이외에 기독교방송 1명, 육군 정훈국 1명이 참여해서 강습회를

받았고  오재경 공보실장, 이운용 중앙방송국장, 이규일 방송관리국장, 이인관 기감, 윤길구

방송과장, 송영호 방송관리과장, 노정팔,  한기선 공보실 시설과장, 이종훈 중앙방송국

기술과장, 유병은님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1회 강습회를 마치고 강습생들이

덕수궁에서 함께 모여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1. , 2. , 3. 4. 5.박종세, 6.이완희, 7, 8.최재희, 9.

10. 11.백기홍, 12.윤영중, 13. 14. 15. 16. 17.황의돈,

 18. 19. 20.서용수, 21. 22. 아나운서입니다.

 

 

앞줄에 앉으신분들은 제1회 강습회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과 거의 같은 분들이고 강습을

받은 아나운서는 당연히 다른 분이겠으나 판독이 어려워 확인되는데로 기재라겠습니다.

 

 

1959년 신입 아나운서 강습회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7.이종훈(기술과장), 8.이운용(중앙방송국장), 9.이규일(방송관리국장),

10.전성천(공보실장), 11.거스(미국인 방송고문관), 16.배준호, 17.김규, 18.서병돈,

19.김순환, 21.이병열, 22. 24.박진현, 25.허환, 26.김인권, 27.조병해, 29.노정팔, 34.김영길,

36.오남열, 38.최락,39.박노설, 40.김주환, 41.홍종선, 43.송한규, 44.강익수, 45.강찬선, 이때

김정현, 김경숙, 김현수, 서선벽, 김순영 등5 분의 여성 아나운서가 입사했는데

1. 2. 3. 4. 5번이 화인되는데로 기록 하도록 하겠습니다.

 

1964년 아나운서 강습 수료식 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유병은, 박능상, 장기범,

한사람건저 김영궈느 김재연, 이홍수, 홍천, 이인관, 노정팔님이고 뒷편에 임택근, 박상규님 등이

보입니다, 변웅전, 소병규, 이승상, 이은경 아나운서등이 이때 들어왔습니다.

 

1962년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입니다.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이 발족하기 전이었습니다.

1 배덕환, 2 박종세, 3 이광재, 4 장기범, 5 강찬선, 6 임택근, 7 최세훈, 8 한경희, 9 최두헌 10 홍종선

11 김주환 12 이규영, 13 길종휘, 14 유영옥, 15 이정희 16 최승일 17 김인권, 18 박노설 19 최정현

20 인주희, 21 이규항; 22 송영규;, 23 이병열. 24 송한규 아나운서입니다.

 

 

 

1958년 말의 아나운서들 모습입니다.  앞줄 오른쪽부터 최세훈,

박종세,임택근, 장기범, 강익수, 송영필, 이규영, 강영숙, 전영우, 황우겸,

유석춘, 강찬선, 김동만, 최계환, 유창경, 장금자, 문목순, 최두헌, 이본, 조영중,

윤영중, 이현숙, 최만린, 김준철, 한경희 이광재 아나운서입니다.

 

 

 

 

 

 

1970년에 선발 1971년부터 방송을 한 신입아나

운서다.  1 김기웅, 2.이학수, 3 김승진, 4.이명숙, 5.정문희, 

6 이명희, 7 .전옥수, 8.최종숙, 9.서연희, 10.방부선, 11.배덕환,

 12.신상식, 13. 이후재, 14. 송현식, 15. 윤동원,   16, 박교서, 17. 이종태,

18. 임건재, 19. 이신웅,, 20. 정도영, 21.오한신,  22 김원태, 23 김성호,

24.전해진, 25. 김윤한, 배덕환아나운서는 서무를 모았었고 임건재

 아나우서교육을 담당했다. 69년 선발아나운서까지는 문공부

관리과(담당 신선초)에서 교육을 담당했다 

 

 

아나운서동우회에서 한국아나운서클럽으로 바꾸던 1996년 3월 25일총회에 참석한 아나운서들

왼쪽 윗줄부터 김상준, 김재영, 김규홍, 정회준, 김승한, 길종휘, 정경래, 박찬숙, 한경희, 이철원,

이광주, 장승철, 유협 앞줄 왼쪽부터 김영소, 오남열 ,임택근, 강찬선, 황우겸, 최두헌, 우제근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