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일생을 방송,언론인으로 산 이정석님

이장춘 2010. 3. 20. 21:18

 

 

 

 일생을 방송,언론인으로 산 이정석님  

 

 

曉巖 이정석 선생님! 길고 긴 세월을

 언론인으로 방송인으로 한길을 걸어오셨던 선생님이

떠나신지 어느덧 3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도 같이 지내시던

일들이 머리속에 생생합니다. 1954년 조선일보사에 발을 들여

놓으신 이래 54년이란 길고 긴 세월! 글을 쓰시고 말씀을 하시면서

 살아 오셨습니다. 바쁘셔도 서둘지 않고, 어떤 역경에도 궆힘없이

스스로 갈 길 외에는 가시지 않았던 선생님이 너무나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때 그냘을 되돌아 보며

이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웃음 지으시면서

유머 섞어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 전날의 KBS 보도기자 출신 모임인

 여맥회 총회에도 참여 하셨고 돌아가시던 날 점심식사도

최창봉님을 비롯한 여러분이 같이 아셨던 님은 저녁 7시가

되어 이상한 느낌 속에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구급차가

오기도 전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참전 유공자이기도 하셨던 님은

임실에 새로 조성된 국립묘지 임실 호국원으로

가셨습니다. 1932년 3월 1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춘천에서 춘천고등학교를 나오시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하면서 조선일보 기자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언론계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1963년 동아 방송이 새로 발족하면서

방송기자로 출발했고 여기서 라디오 뉴스방송부장을

하셨습니다. 언론사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공보부의 간부로

계셨던 KBS사우회 원로회원님께서 저를 만나실 때 마다 그때

이 정석선생님 때문에 어려웠던 일을 토로 하시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바른 보도 태도로

정부를 그만큼 어렵게 했음을

말 해 주는 것입니다.

 

 

 

1960년부터 70년대에 걸쳐 날카로웠던

동아 방송의 보도는 그 중심에 이 정석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동아 방송국의 국장 최창봉님과

 이정석님은 10월 유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KBS로 옮기셨고

 KBS는 바로 공사 창립작업을 해서 1973년 3월 3일을 기해

한국방송공사가 출범했습니다.

 

 

 

 

이때 최창봉님은 부사장을 하셨고

이 정석은 보도국장을 하셨습니다. 공사의

보도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면서 1974년에 런던 특파원으로

 떠나셨고 1976년에 돌아오셔서는 국제국장을 하시다가 다시 미주

총국장으로 떠나셨습니다. 두 차례의 특파원시절에 날이면

날마다 들려오던 선생님의 리포트 음성이

아직도 들려 오는듯합니다.

 

외국어와 해외사정을 잘 아시는 선생님은

 KBS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1985년 올림픽 방송

운영 본부장을 하시면서 올림픽방송을 훌륭하게 치르셨습니다.

올림픽방송이 끝나고 옮기신 부서가 기획조종실장 ( 본부장 ) 이었

습니다. 이때 저는 이 정석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일했습니다. 공사창립에

관한 일을 했던 제가 기획관리실에 있다가 15년간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가 더 이상 다니기가 힘들어 이 정석선생님께 모실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더니 서슴지 않고 그 밑에 있게

해 주셔서 깊은 인연이 맺어 졌습니다.

 

1990년 KBS민주화 길목에서 2개월여를

 KBS사장 직무대리를 하셔야 했던 선생님은 마음의

중심은 확실하되 표현을 하시지 않으시면서 가야 할 방향으로

가시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KBS가 그 어렵던 시절을 잘 넘겼습니다.

그 임무를 끝내시고 KBS계열사 사장을 하시다가 나오셔서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방송위원, 관훈클럽 신영 연구기금 감사, 한국방송개발원

이사장, KBS시청자위원장, 대한 언론인회 회장을 지내셨습니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고문을 하셨고 오라뉴스 대표고문을

 하시면서 많은 글을 쓰셨습니다.

 

저는 그 글을 대부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편 골라 제 불 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는 날 까지 글을 쓰셨습니다. 선생님이

겪으신 에피소드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습니다. 그 유머는

들어도, 들어도 구수 합니다. 일하시면서 화내시는 법이

없으시건만 하시고자 하는 일을 중단하시는

경우도 못 보았습니다.

 

 

그 뒤에 선생님의 추모문집을

발간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 원고를

써서 출판 위원회에 보내드렸습니다. 제한된

책의 뤙고량으로 그 글이 모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그 원고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기에 카테고리

춘하추동단상에 그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추모 출판기념회에서 고 이정석 선생님의

미망인 박소현 여사의육성으로 들으시는

인사 말씀입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정석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더 보시려면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요.

 

언론인 이정석과 방송인 명예의 전당

 

http://blog.daum.net/jc21th/17780028

 

 

언론인 고 효암 이정석 선생님 추모문집 출판기념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73

 

http://blog.daum.net/jc21th/17780743

 

 

 

2001년 KBS교향악단 평양공연에 참여하셨을때 송재극,

전응덕님등과 공연을 관람하시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모잘트의 리퀘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