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 프로그램의 담당 PD였던
안국정님은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뜻밖의 주문이었다. 몇몇 소집단의 경우라면
몰라도 몇십만, 몇백만에 달할지 모를 이산가족들을 TV를 통해
만나게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불도저 같은 스타일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 즉각 기획회의를 열었고, 며칠 후인 6월 30일
저녁 이 아이디어는 전파를 탔다.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초 90분 길이 단발성 특집이었다.
이산가족 150명을 초청한 방청석에 1000명이
넘게 몰려왔다. 방송 도중 방송사 업무가 마비될 만큼
전화가 쏟아졌다. 진행을 맡은 유철종, 이지연씨는 이 날
새벽 3시까지 연장방송을 해야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방송은 계속돼 일요일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다. 월요일
출근했더니 이 사장이 "1주일만 더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이었다. 연장, 또 연장.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장장 138일간 계속됐다. KBS 1TV 채널은
뉴스 등 주요 프로 외에는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으로 채워졌다.
진행자로 김동건, 신은경, 황인용, 강부자씨 등이 합세했고,
잠도 잊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과 별도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벽과
그 앞 광장에는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붙인 벽보가
어지러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이 곳서 살다시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남의 눈에 띄게 하려고 높은 곳에 벽보를 붙이려
경쟁했고, 기발한 문구를 써낸 이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해 여름, TV시청자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이산가족 만남의 순간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너무 기뻐 웃었다. 한국전쟁 후 생사를 모른 채
33년을 애태우던 남북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방송이벤트였다.
방송 중 1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참여해 애탄 절규를 했고,
1만 189명의 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이산가족은 아니지만, 이 프로를 만들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드라마도 아닌데, 누가 이 프로를 볼까 했던
당초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은 KBS 편성실장으로 있는
이원군 PD, 작고한 방송작가 박명성씨 등 우리 제작팀은 이산가족 사연에 따라
30초, 1분씩 사연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상봉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가족은 스튜디오에 초대하는 등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청자 눈길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운좋게도 첫 날, 기대하지 않았던
이산가족의 눈물상봉이 이뤄졌다.
다른 신문, 방송, 해외 미디어의 반응도 놀라왔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인 독일 공영 ZDF를 비롯, 일본 NHK,
미국 CBS 등 해외 미디어 취재도 뜨거웠다. 국내에 이어 우리는 중국,
미국, 독일 등 해외교포도 연결해 국제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올림픽 주관방송사로서 KBS의 기술 경험을
당시 축적한 것도 작은 성과였다.
방송 후 벌써 16년이 지났지만,
20세기 한국 최고의 휴먼드라마 현장에서
내 젊음을 모두 바쳐 일했던 기억은 지금도 훈장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아직 분단은 여전하고, 많은
이산가족들의 한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찾기 관련 글 보기
산천도 울어버린 인간드라마 83, KBS 이산가족 찾기 (1)
http://blog.daum.net/jc21th/17780719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30년, 소리로 듣는 남북화해, 통일을 향한 마음
http://blog.daum.net/jc21th/17781799
PD안국정님과 생방송, KBS 이산가족 찾기, 1983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019
남과북 드라마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주제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http://blog.daum.net/jc21th/17780827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1983년의 인간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0132
"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유애리 아나운서의 방송 추억
http://blog.daum.net/jc21th/17781596
아리랑, 평양 노래자랑에서 남과 북이 함께 불렀던 민족의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0980
남북이 함께했던 2002 KBS 교향악단 연주와 1990, 송년음악회의 감동
http://blog.daum.net/jc21th/17780770
평양에서의 최초 생방송 뉴스, 이정석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http://blog.daum.net/jc21th/17781741
산천도 울어버린 인간드라마 83, KBS 이산가족 찾기 (2)
http://blog.daum.net/jc21th/17780721
정관영(흰구름) 선생님글
방송하면서 , 집에서 쉬면서
참 많이도 울어버린 그날... 나는
이산 가족은 없습니다. 다만 고향 동네..
내 집은 없어 쓸쓸합니다. 이산 가족
슬픔은 천배나 만배나 크겠지요....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이 때는 정말 과장해서 전 국민이
식음을 전폐하다싶이 TV 화면에 온 정신을
쏟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과 함께 울고, 안타까워하며,
가슴 벅차하면서, 정말 대단한 프로였어요.요즘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도 그 장면들이 나오더군요."누가 이사람을 모르
시나요" 그시절 영화 '남과 북'의 주제곡이였던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