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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송국 최초의 편성원 최승일님의 회고수기

이장춘 2010. 12. 20. 01:57

 

 

 

경성방송국 최초의 편성원 최승일님의 회고수기

 

 

崔承一님은 이땅에서 시험전파가

발사되던때부터  방송을 제작했던 분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최초의 방송 PD였고 당대의 알아주는

문사였습니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길러낸  그의 큰오빠

이기도 합니다.   최승일님이 1927년 3월 1일자 별건곤에 쓴

회고수기를 옮깁니다.    들으시는 노래는

최승희님의 이태리 정원입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취직에 대해서 애태운 사람!

조선청년으로서는 별로 그 경우를 당하지 안는

 사람이 업겟지만 나도 상당히 애를 태운<59> 사람들 중의

하나임니다. 중학시대로부터 동경에 처음 건너갈 때 까지는 물론

나도 豪家子弟로 의식에나 학비에나 아모 그릴 것이 업시

말하자면 호강스럽은 편이여서 아모런 풍상을

모르고 지나온  안방 서방님이엇슴니다.


그러나 변천만흔 세태는 언제까지고

내게 그런 생활을 허락할 이치가 만무하야 내가

동경으로부터 도라오던 그 때에는 지금까지 넉넉하던

가정의 형편이 의외에도 실패하야 전날 살님과는

아조 딴판이 되어 바렷슴니다.

 

그러니 가정에서도 물론 나의 취직을

희망하엿겟지만 나 자신으로도 가정까지는

도읍지 못한다 하더래도 내 자신의 용ㅅ돈이나마

 벌지 아니하면 안될 형편이엿슴니다. 그 때부터 내게는

 직업에 대한 번민이 생기기 시작햇슴니다. 신문 잡지에

 원고가튼 것도 약 간 써 보앗지만 몃푼 밧지 못하는

고료가 가정에나 자신에나 아모런 큰 도음도

되지 못하엿고 물론 각 방면으로 직업을

구해보기도 한두번이 아니엿슴니다.

 

직업소개하는 明治町의 인사상담소까지

차저가서 이력서를 제출하엿스나 거긔는 원래가

 막버리 노동자나 남의 상점이나 개인가정의 심부림꾼가튼

 그런 직업만 소개해 주는 곳이라 나의 이력서를 보고 나의 얼골을

처다보고 하다가는 이력이라드지 모양생김이라든지 아모리 보아도

그런 직업을 구할 것 가티는 뵈이지 안햇던지 사무원 한 분이

「도대체 당신은 무슨 직업을 구하느냐」고 하며 빈정대는

바람에 두 말 여부도 못 드려보고 그대로

도라선 일 까지 잇섯슴니다.


그것도 삼사년간 지나온 쓴 경험이라 할지

지금은 우연한 기회로 너무나 방향상위의 이 곳에서

이것을 한 직업이라 할넌지 그날 그날을 요것할가 저것할가하고

방송순서를 짜기에 고심하고 잇슴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던지

조선현상을 보던지 이 현실하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구한다는 그 생각부터 틀닌 일임니다.

 

구직에도 두 방면 즉 자기이상을 펴기 위하야

 구하는 사람. 생활난으로 구하는 사람, 그럿켓지만 대개는

후자 즉 생활난으로 일 것임니다. 그러나 직업이 잇서야 할 말이

 아님닛가, 엄는 줄을 뻔히 알면서 민민한 마음으로 구한다는 것이

 도리여 어리석은 일인가 함니다. 그네들의 할 일은 다 따로 잇지만

 위선 목구멍 풀칠에 급급하야서 무슨 정신이 잇슴닛가,

아모러나 그들로서 타락의 길로나 들지 안는다면

아즉은 큰 다행이겟지요.<60> <59-60>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최승일님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http://blog.daum.net/jc21th/17780243 를

클릭 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