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6,25 전쟁중에 태어난 KBS 남원방송국

이장춘 2011. 7. 17. 10:41
 

 

 

 
 6,25 전쟁중에 태어난 KBS 남원방송국
 
 
남원방송국이 일본사럄들이 사용하던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출력 500W, 1030Khz로
문을 연것은 1952년 10월 25일로 6.25전란의 산물
이었습니다.  6.25때 태백산맥의 퇴로가 막힌 공산군은 지리산
일대로 몰려들었습니다.  남한지역의 대부분이 평정 되었어도 이곳
에서는 낮에는 그런대로 사람들이  다닐 수있었지만  밤이 되면
공비들이 여기 저기서 출몰해 그들의 세상이 되고 인근
마을은 물론 멀리까지  가서 곡물을 비롯한
 재산을 약탈 해 갔습니다.
 
국군 1,   2개 사단이 소탕작전을 벌리고
서남지구 전투사령부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치안유지에 힘썼지만 오고 갈곳 없는 공비들이 막무가
냈습니다. 그 인근에 살았던 저는 남원방송국을 처음 새울때를
 생각하면그때 그곳에서 공비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귀순한
이태님이 1988년에 그때 그 얘기들을 적라라하게
기록한 소설 남부군이 떠 오릅니다. 
 
남원방송국을 세울 때 그곳은 남부군에서
그린 실상 그대로였습니다.  방송의 사각지대였던
이곳에 방송국을 세워야 민심을 안정시키고 공비잔당들의
마음을 돌릴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중앙방송국이 마침
대구방송국 출력증강으로 대구에서 쓰던 500W
송신기를 남원에 설치 하도록 했습니다.
 
 6.25로 부산에 피난중이던 중앙방송국에서는 
 춘천방송국을 개설한 경험이 있고 대전방송과장을 지낸
유병은님을 이곳에 개국책임자로  임명해서 방송국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맨주먹으로 부산에 가 있던 방송국이 송신기와 
설치기술 외에는 부담할 능력이 없어 대부분 지역
주민들의 협조로 일이 추진되었습니다. 
 

 

1. 윤헌영(시설과 목주 안테나설립), 2. 윤치호 (국장 후보), 3. 전주호 기술과장

6. 우제탁, 7. 이택현,  8. 김경배, 9. 김봉완 방송과장후보. 10. 이영복 아나운서

 

 

 

 

위 사진은 퇴로가 맊힌 영, 호남의 빨지산들이 몰려든

전북 남원지구의 민심수습과 공비들을 대상으로 심리전 등을 위해

이곳에 방송국을 세울 준비를 할 무렵,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장면

입니다. KBS 한영섭기자는 UN군 심리전 당국의 협조를 받아 구호품을 마련, GMC 추럭에

싫고 중 무장한 UN군 군인 5명과 함께 격전지 남원을 찾아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함과

동시에 방송국 설립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때 지리산을 끼고 있는

남원지구에는 퇴로가 막힌 영, 호남의 빨지산들이 모여들어 군과 전투경찰의 노력

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공산당이 지배 하면서 주민들은

극도의 시달림을 받았고 민심은 흉흉 했습니다.

 

정부도 UN군도 이곳에 관심을 가졌고

KBS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방송국을 새우기로

했습니다. 방송국 설립 책임자로는 춘천방송국을 설립한

경험이 있고 6.25가 일어 날때 대전방송국의 방송과장과 기술과장을

겸한적이 있었던 유병은님이 선임되었습니다. 사진은 한영섭기자, 방송국을

새우기 위해 와 있던 유병은님, 그리고 윤치호, 김봉완님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어린 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방송국이 개국한 후 윤치호님과 김봉완님은

남원방송국장과 방송과장에 각각 임명되어 1970년대 초, 중반까지

이곳에서 근무했습니다. 방송인들은 6.25때 군복을

입고 HLKA가 쓰인 견장을 달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방송국을 건립한 뒤
 떠나시는 유병은님의 송별회 기념 사진입니다.

1953년 9월 27일 날자가 선명합니다. 

 

1. 심리전장교 박서림, 3. 유병은(개국책임) 4. 윤치호 남원방송국장, 5. 김봉완 방송과장

6. 우제탁, 8.이기송, 9. 이택현, 10. 김경배 아나운서 11. 징인규 12. 이영복 아나운서

 

 

방송국 건물은 남원역 앞에 그때로서는
 훌륭한 적산가옥 (일본사람들이 쓰던 가옥 ) 이 있어서
그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기로 하고  건립비용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건립책임자 유병은님은
그때의 상황을님이 쓰신 방송야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 해 놓으셨습니다.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고있는
 대한민국정부는 남원에서 방송국을 건립할
예산은 전혀 없는 딱한 처지였다.'.........중략 .......
 8군은 방송국 건설용 물자로 스튜디오 신설에 소요되는
목재 등  모든 자재와 송신공중선을 건립할 전주등
자재 전량을 공급해 주는 책임을 졌다.
 
남원군수는 적산가옥(일본사람들이 쓰던가옥)을
무상으로 제공 해 주고 남원읍 번영회장은 공사비 전액을
 부담키로 했고, 공보처 중앙방송국은  방송시설을
 제공하기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을 지망하는 방송요원을
구하기가 어려워 현지에서 덕망있는 분을 맞이해서
 방송국장도 하고, 방송과장도 하고 또 군 심리전 요원의
힘도 빌리고 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어렵게 마련된 방송국이 전쟁중에는
물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일대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어서 오랫동안 지역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자율적인 방송을
 해 왔습니다. 500W 적은 출력이었어도 전파장애가 없던 때라
꾀  먼거리인  순창, 임실, 함양등 주변 지역에서도
  깨끗한 음질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60년 1월에는 출력을 1Kw로 올리고
전성천 공보실장, 박정근 전라북도지사, 이춘성
전주방송국장을 비롯해서 호남지역 방송국 책임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방송출력증강을 축하 해 주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립니다.
  
1975년 11월 15일을 기해서 출력이
10Kw로 늘어 청취상태가 한층 좋아 젔습니다.
남원방송국에서 매년 봄에 여는 춘향제는  향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 한   전국적인 행사로이 지역의
 자랑거리 전통 문화행사였습니다. 
 

 

1971년 제 41회 춘향제

 

 
 

 

 

 위의 사진은 KBS가 실시한 1972년에 42회

춘향제입니다. 1983년까지는 지역행사로 치뤼지던

준향제가 1984년부터 중앙의 행사로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중앙행사로 되어 첫번째 맞는 춘향제입니다.

 

 

 

 

아래는 1990년의 60회 춘향제의 모습입니다.

 

 

 
하루에 두시간 반정도의 자체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전속 국악단이나  지역국악인이  출연하는
국악프로그램이 있었고 극회도 있어서 
방송극도 방송되었습니다.
 
 어린이 합창단이 출연하는 30분간의
어린이 프로그램도 매주 2회씩 방송되었습니다.
오작교의 밤 프로그램이나 한달에 한번씩 개최되는
 노래자랑은지역민의 많은 참여하에 성황리에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개국 35년을 맞은 1987년 10월 25일을
기해서남원에서는 제일 훌륭한 문화시설인 현대적인
방송국이 마련되어 지역문화 센터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곳에서 오래 근무 하셨던 분들이
새로운 청사를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1993년 개국기념일의 사진으로 오른쪽부터
김정숙 당시방송부장, 최병일업무부장, 한사람건너 이광주,
배기주아나, 유지아나, 우제탁, 한사람건너 남원방송국장 이승우,
이기동, 이승기, 박영기, 이영준님 입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숨쉬며 언론기관으로서,
또는 문화센터로서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남원방송국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위성방송이다, 디지털
방송이다,CATV다 해서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이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면서  2005 7월 1일을 기해 중계기능만 남기고
 자체방송 기능은 막을 내리게 되어 남원방송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방송을 시청하는데는  예나 
다름없고  방송기능은 전주방송국에서 수행하지만
  허전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1972년 공사가 되기 직전 이곳에는 
 방송국장 윤치호, 방송과장  김봉완,  기술과장
우제탁,  방송요원으로는  김정숙, 정윤조, 이승기, 최병일,
 이영준, 서기원, 이종태, 김귀녀, 이원우, 진정식, 최영희,
 최규분, 박태엽, 김태원, 최주섭님이 계셨습니다.
 
여기 올린 사진은 오랜기간 남원방송국에
근무하셨던 벽산 우제탁님의 제공으로 올렸습니다.
 
방송국은 갔어도 남원지역사회의
 
더욱더 큰 발전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영훈 선생님 글

 

 

저는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 산1-2번지에

 7월달부터 살고있는 64세된 시민입니다. 이곳에는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청취 해 오던 KBS 1라듸오가 청취

되지가 않습니다. 소형 라듸오 뿐만 아니라 승용차에서도

 전파가 잡히지 않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들어온 1라듸오라서

 돌아버릴 지경 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조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당부드립니다.세상하고 완전히

 격리된 기분입니다. 살려주세요

 

 

황인창 선생님 글

 

 

초등학교시절 (1978년쯤) 매주

토요일만 되면 학교수업이 끝나자마나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방송국에 쫓아가

 어린이 노래자랑에 참가했던 경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자애가 함부로 돌아다닌다고 호랑이 같던

 아버지께서도 이건만은 막을 수가 없었지요.^^그 때

사회를 보셨던 김귀녀 아나운서 언니가 어찌

 그리도 예쁘던지...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답니다.

 

모습은 가물가물 하지만

편안하고 특색있는 목소리만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얼굴이라도

볼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면 아쉽게도 사진이

없더이다. 옛날 방송국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생각이 납니다. 사진을 보니 뭉클하기도

하구요. 고맙습니다. 이렇게라도 잠시

추억을 더듬을 수 있게

            해 주셔서요. ^^        

 

우와님 글

 

음.... 남원KBS방송국이

 이런역사가 있었군요 ㅎㅎ
요 근래 몇달 전에 KBS 제1라디오

 남원중계소 1260Khz가 폐국되어서

 아쉽네요 ㅠㅠ 완전 깨끗하게

잘들렸는데 말이죠 ㅠㅠ

 

 

김현식 (남원 문화원) 선생님 글

 

 

글 잡 읽었습니다.

남원방송국 개국 41주년 사진에

최병일업무 부장님은 제가 고등학교시절인

 1985년에 함께 남원에서 함께 하숙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때 다리를 다쳐 제가 등목을 시켜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아들에게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

시더군요. 제가 지금 근무하는 곳은 남원문화원입니다.

정보검색을 하며 여기까지 오다보니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리고 부탁을 드리면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기록물로 남겨두고 싶은데 원본을 스켄한 사진을

받아 볼수 있는지요?   그리고 연락처라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세천 선생님 글



2016.11.12 11:12

고세천 교무입니다. 원불교

남원교당에서 9년 근무를 했지요. 지금은

남원교당 80년사(1938년 시작)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남원교당 일지를 보면 육이오 전쟁이 끝나던 1953년 남원

방송국 부탁으로 훈타원 양도신 교무님이 월 4회 명사에세이

출장설교방송을 했고 때로는 원불교 육일대재 행사에 방송국에서

 출장 나와   행사실황을 녹음해 갔다는 기록이 있던차에 사실확인차

 검색하다가 이 블로그를 보고 흔적을 남깁니다. 1952년 10월 개국하여

 오랫동안 지역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자율방송을 했다는 점과 지역민

들의 정신적 사회통합의 기능을 하는 원불교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명사에세이 출장설교방송이 가능했다고 보여지네요. 이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이장춘 선생님 고맙습니다. 남원교당 일지를 보면

1962년 연예에 취미를 가진 몇분의 교도들이 남원방소국에

 출연하여    "이차돈의 일생" 이라는 제목으로 1주일에

 한번식 라디오 방송을 하였다 는 기록도 있습니다.


1971년 5월 9일 「오늘을 사는 종교인」

5월 23일 「자녀교육법」이란 제목으로 이현조

 교무님이, 7월 15일 「현대는 무엇을 요청하는가.」의

제목으로 조인원 교무님이 설교방송을 했다는 자료가

있는 것을 보면 그때는 서울이 중심이 아니었고 남원안

에서 대부분의 것이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 지역이

중심이 되는 시절이었나 싶습니다.

이장춘

2016.11.13 04:54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송은 지역이 중심이 되었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는 서울에서 방송을 하고 일정한 시간

 남원의 경우는 약 2시간 반 정도를 서울방송 대신 남원

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그 두시간 반 받송 안에서 자체

방송을 것이지요. 지금은 세월이 지나 남원방송국도

없어지고 그때 그분들도 살아 계시는 분들이 적어

 그때의 일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전인규 선생님 063-633-3935

박영기 선생님 010-8714-7301

께 연락 해 보시면 아실런지

모르겠씁니다. 오랜세월 남원방송국에

 근무하셨으며  남원방송국장을 하신

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최다은 선생님 글 


 

2017.09.24 00:39

외국에 나가있어서 할아버지

장례식도 가지 못한게 너무 후회가

되고 슬펐는데 이렇게 사진으로라도

 할아버지를 한번 더 추억할수 있게

되어서너무 좋네요 ^^

 감사합니다

이장춘

2017.09.24 02:24

할아버님이 누구신지요.



 

 

 

방우회 이사 이장춘
 
 

 

강석연,강남달.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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