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주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6,25전쟁중에 테어난 제주방송국은
6.25로 개국시기가 앞당겨진 방송국이었습니다.
해방되고 얼마 안 있다가 1946년 11월 제주군이 제주도로
승격하면서 방송국의 필요성이 절실 해져방송국건립을 추진,
성사단계에 이르렀지만 4.3사건이다, 5.10선거다 주변상황에
밀려 방송국 건립을 미루어 오던 중 6.25로 급박한 상황에
최후의 보루로 제주방송국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대구에 내려와 있던 정부는
8월 7일 22명의 개국요원을 발령하고
준비를 갖추어 제주경찰국 경비정에 기계를
싫고승선한 것은 1950년 8월 10일이지만 8월
14일에야 출발하게 되었고 8월 15일
도착해서 공사를 시작 했습니다.
전쟁중 제주도 경찰국이 KBS에
경비정을 배정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에
방송국 설치도긴요 했지만 당시 KBS 중앙방송국과
인연이 있었던 조동식님의 노력과 이성주 제주도
경찰국장의 특단의조치에 따른 것이었
습니다. (박경환님 말씀중에서)
전쟁중이라 방송국 건립을 위해
새로 집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체신부 제주
수신소 건물에 50W송신기를 설치하고 나무로 안테나를
세워 방송을 시작한 것이 공사시작 한 달도 안 된 9월 10일의 일로
이때부터 호출부호 HLKS, 주파수 1080Kz, 제주방송국은 탄생되었습니다.
이때 제주방송국 개국요원으로 선발되신분은 박능상 (방송과장)님을
시설책임자로한 엔지니어 박경환, 정기영, 강기년, 김재억, 이덕빈,
김익모, 이성실, 김홍린, 조동식, 김구환, 왕종현님 등 12분이었고
초대 제주방송국장이었던 이원영, 김홍진, 김해규, 권혁규,
주태익, 홍대식, 최승길, 유종현, 김경식, 이순길님등이
방송 또는 행정요원으로 선발 되었습니다.
방송국이 문을 열면서 처음에 온
중앙요원들은 공사가 끝나면서 9월중으로
대부분 떠나시고 처음 제주방송국장으로 발령된
이원영님 역시 9월 14일 이천택님이 오시면서 떠나셨습니다.
중앙 요원들이 떠난 자리는 제주에 사시던 방송요원들이 자리를
매꾸기 시작 했습니다. 이천택 방송국장, 방송과장 김두규님을
비롯해서 고두천, 고세혁, 장병량, 채종식, 김석규님 등이 그때 제주방송국의 개국요원들이고 많은 공을 싸으신 분들입니다.
김두규, 채종식, 김석규님은
1952년 9월공비들에게 학살당했고
고세혁님과 장병량님은 지금도 KBS 사우회
회원님으로 자주 나오십니다. 장병량님이 써
놓으신 1952년 9월 14일밤 공비 출연시의 얘기도 전해 내려 옵니다.
초기 개국요원님들과 함께 일하시던
이천택님은 얼마 안있어 떠나시고 이곳이
고향이기도 한 김인지님이 부임해서 1961년 4월
이태구 국장님이 오실 때까지 10여년간
이곳을 지켰습니다.
1951년 1.4 후퇴로 중앙방송국이
다시 부산으로 왔을때 이곳의 출력은 50W에서
500W로 늘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후퇴하면서 가지고 온
500W 비상송신기를 만약에 대비해서 이곳 제주에 설치한것입니다.
위 사진은 1951년 3월 10일 500W송신기를 설치하고 김인지 국장님을 비롯한 제주방송국 직원들과 박능상, 이성실님을 비롯한 중앙방송국 기술진이 함깨한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1951년 3월 10일 500W송신기를 설치하고기술인들이 모여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박능상, 이덕빈, 고세혁, 한사람건너 장병양, 이길선님입니다. 뒷 줄 오른쪽 안경 낀 분은 이성실님으로 얼마후 부산에서 단파송신기실헙을 하다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이성실님편 참조)
1952년 9월 14일 제주방송국 개국 2주년을
막 넘기면서 세분의 순직자를 낸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개국특집좌담으로 방송된 제주지역 공산군의 만행을 고발한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은 공비들이 방송국을 습격해서 김두규 방송과장과 채종식, 김석규,
세 사람을 한라산에 끌고 가 학살 한 것입니다. 경찰의 수색 끝에 1주일이
다 되던 20일에시신을 찾아 24일 장례를 지냈고 제주방송국이
현재 자리하고 있는 노형동 청사로 이사와 1993년
3월 이곳에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제주방송국이 문을 열때는 부산에 있는
중앙방송국에서 군가나 음악, 전쟁소식, VUNC,
VOA등을중계방송하는 등 10시간의 방송을 하고 있을때라
이곳에서도10시간의 방송을 했고 자체방송은 한시간을 했습니다.
중앙방송국이 서울로 돌아가 정상방송을 하면서 이곳의 방송시간도
늘어났지만 예비송신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상당기간 16시간
방송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다른 지역방송국과 비슷한
세시간의 자체방송을 편성한 것은 1957년부터였습니다.
오랜기간 체신부 건물을 빌려 사용하던
방송국은 1960년 4.19후부터 모든 자산을 인수받아
모름지기 셋방살이를 면하고 출력도 1Kw로 늘리면서
주파수를 800Khz로 바꿔 방송 상태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제주도가 면적은 좁다 해도 중앙에 한라산이 자리하고 있고
또 떨어져 있는 섬도 있어서 전 지역에 양질의 방송을
내 보내기 위해서는한라산 언저리마다
송신시설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연주소시설도 중요했지만 적절한 곳에
송. 중계소 설치가 절실해서 1971년에 연주소를
확장해서 옮기고 동시에 연주소와 같이 있던
출력 1Kw송신소를 아라에 10Kw 송신소를
새로 새워 옮겼습니다.
이 무렵 견월악에 5Kw 텔레비전
송신소도 새워 제주도에서 텔레비전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중계소도 증설 해
나가고 1971년에 처음으로 마이크로웨이브가 개통되어
질 좋은 방송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내 방송망은
이때부터 제대로 갖추어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신재주 청사는 1980년 10월
20일부터 문을 열고 몇 차례 증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의 자체방송을 시작한
것은 1978년 7월 1일의 일로 초기에는 매일 저녁 7시와 9시 25분에 자체 뉴스를 했고 주당 한, 두 차례 프로그램도 제작해서 방송 했습니다. 이때 방송된 프로그램으로는 도민의 광장,
영농교실, 내 고장 만세, 누가 누가 잘하나 등이었습
니다.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제주에 자리 잡은 제주방송국은 감귤아가씨 선발대회, 유채꽃 축제등 행사가 많았고
관광겸 업무차 오시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1972년부터 1980년대까지 개최된
탐라민속제에서 발굴된 성산면의 장구소리와
톱질노래는 1976년 제15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 상을 받았고 안덕면 덕수리 불미노래는 1979년 제 20회
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1980년에 제주에서 개최된
21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안덕면 덕수리 방앗돌 굴리는 소리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탐라민속제에서
발굴된 노래는 많았습니다. 1981년부터 범도민 향토축제로
치러지고 있는 감귤축제는 제주감귤의
우수성을 국내외에널리 알리는데 기여 해 왔고
1983년에 시작한 유채꽃 큰 잔치는 국내외 관광객
유치는 물론 제주 관광발전에 크게 기여한
문화이밴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73년 공사될 무렵의 직원들
국장 김 화 룡
방송부장 오길웅
박명수, 신숙희, 김영주, 정승배,
장희영,김병래, 문인수, 고병호, 한강수,
현동옥, 고대석,김영택, 송순옥, 김인숙,
김정숙, 고상철, 장덕상, 양영하님
기술부장 김기화
김성철, 조경남, 이영진, 문기종님
아라송신소장 장병양
임정행, 고진호, 지정호, 장익상, 김정연, 강시군님
서귀포중계소장 전상성
기찬수, 김창세, 이홍구, 좌광연, 고종국
필자가 제주방송 총국에 근무하던 시절얘기
제가 제주방송총국에 간 것은 1997년
3월이었습니다. 본사 업무국장 1년여를 겪으면서
한전 통합공과금 체제가 마무리되고 민방의 70% 수준이던
광고료가 100%수준으로 되었기에 내놓고 말은 하기 어려웠지만
가보고 싶은 곳이 제주방송총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땅이면서도 이국적인 제주도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 같았고 방송도 특이 했으며 중앙방송 참여도 많았습니다. 연간 300회에 달하는 전국에서 제일
많은 보도기사 참여가 있었고 2TV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나오는 생방송 시간이나 1TV 여섯시 내 고향 시간에는 유난히도 제주방송총국의 참여도가 높았습니다. 제주도의 카메라에 잡히는 그림은 모두가 신선한 새로운
그림이었습니다. PD나 기자도 보람을 가지고 밤, 낮이 없이 참여 했습니다. 2TV 아침생방송 책임 PD 오태수님은
제주에서 연락만 하면 참여 기회를 주셨습니다.
국정 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중앙방송 참여를 많이
하라는 얘기를 하기에 자랑상아 한참을 얘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주에 갔을 때 그곳에 계시던 분야별 국장님 으로는 고성균, 문인수, 정재철, 김영택님이었고 뒤에 정재철, 김영택이 김청길, 이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느영 나영 하나로, KBS와 함께 세계로”가
그해 방송목표였습니다. 작은 땅의 제주도였지만 도민들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터라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데
도내 언론이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언론사가 먼저 마음을
하나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MBC와 제주일보, 한라일보, 제민일보가 자주 만나고 마음을 모아 공동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 시절의 제주 언론사 대표님들이 함께 한 사진 왼쪽부터 한라일보, 제주일보, KBS, 제민일보, MBC 언론사들의 책임자로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무두 모여 마음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 속의 관광제주를 지향하는
비전을 제시하고감귤 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 하자는 것이 그 때 제주방송국의 뜻이었고 전 직원이 이일에 앞장서 주었습니다. 특히 그해 여름에 있었던 특집
“바다낚시의 천국 제주” 는 제주 바다의
자원이 무한함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선상 생방송 5월의 제주” 는 수중과 지상을
연결하는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정용 기자가 일생일대의 역작을
제작 해 보겠다고 무려 100일 동안이나 바다
밑을 취재하고 서울과 제주를 오르내리면서 만들어낸 “제주 해저탐사 생존과 본능, 그리고 아름다운 세계”
라는 프로그램은 전국방송망을 타면서 바다
속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강민부 PD가 제주는 물론 전국의
녹차 산지 취재와 그 효능실험을 거치는 등
힘을 기울인 프로그램은 제주녹차 재배에 새로운
활로를 불러 넣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감귤아가씨 선발대회는 제주 민요와 설화를 주제로 창작발래극 느영나영 공연도 해서 전래민속의 현대화를
통해서 도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도박성 화투놀이를 하던 현직검사가
KBS카메라 앞에서 손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을 전국 전파에 실어 기자는 특종 상을 받았지만
총국장은 검찰로부터 눈총 받던 일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리에 생생합니다. 제가 제주도에 있을 때 국정감사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국정감사 보조는 했지만 수감 책임자로 감사를 받은 것은 저로서는처음임과 동시에 마지막이었습니다. 2년전 제주방송총국 국정감사로 곤욕을 치렀던 KBS본사가 유난히도 관심을 갖는 국정감사였습니다. 본사도 저도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2년 전의 양상과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000000000000000
제가 1년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머물렀지만 보고 들은 것, 느낀 것은 많습니다.
특히 적은 인원으로도 그 많은 일 들을 해내기 위해
밤낮없이 힘을 기울이던 직원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그 때는 칭찬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던 일들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10년 현재 제주방송총국에 근무하시는 분들
총국장 : 장성환
위원 : 김영훈, 김세균
편성제작국
국장 : 홍성협
선임 : 조동건, 강민부, 박한종 직원 : 이승현, 윤영식, 이동희, 이영재, 이현주, 오 준, 현재성, 최혁준, 오준석, 이송은, 박태원, 양천호, 김경호, 현송희, 강봉선, 이재준, 변영삼, 황두선, 이종식, 허성모, 김필승, 김은정, 오수안, 강인창, 김인방, 문정근, 이찬우, 문의순, 홍성협
보도국
국장 : 김방홍
선임 : 조강섭, 이광우 직원 : 하선아, 유승용, 채승민, 고진현, 곽선정, 변진석, 유용두, 연봉석, 조승연, 강정훈, 염기석, 김보현, 정양후, 양희용, 김혜경, 강재윤, 김익태, 장왕렬, 양석현
기술국
선임 : 이성주, 김경은, 김경수 직원 : 박정수, 조윤정, 김경욱, 양진영, 범종수, 이호건, 강선정, 박상수, 이성은, 이정훈, 정회상, 김하균, 조희용, 김황진, 손재경, 이유훈, 조동명, 박인수, 이용택, 김태길, 부유봉, 고영완, 홍승표, 진우찬, 진영종, 문재환, 김민철, 강창준, 김형진, 전상호, 김동범, 이두환, 최동림, 김기만, 양규열, 한만홍, 김성수, 김성호, 김석찬, 양정훈, 박수찬, 오남훈, 강병호
총무국
선임 : 임관홍, 김성보 직원 : 김창수, 이명진, 안정훈, 문의숙, 고경미, 임종석, 성용호, 김문석, 김승보, 진경보, 김익생, 이관진, 양재신, 김천환, 김형석, 고상수, 고세진, 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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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 우제탁님 글
제주방송국 ,,,생각도 못한 청천병력? 같은 의외의 발령,,,1980년도 그곳에 가서 고생 아려움도 많았던 곳,,,바다 건너 섬 이지만, 손님도 많니오고 서울방송 참여도 많았고, 어려운 일도 많았던 곳, 자그만치 6년간의 제주근무,,,개인적으로 엄청난 손실 충격 변화 ,,,결정적인 큰일도 당해야 했으니,,, 그러나 잊을수 없는 크고 어려운 일도 해냈다고 보는 것,, 사실 그늘에 숨겨저 버린 상태가 되였지만,,, 대 성과도,,,그레서 인간세상은 70% 는 부당 비정상으로,,, 란 말이,,,당지근무시는 퇴근 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생활,,,그리고 직원들 절대다수가 서울 하늘 만 처다보고 " 언제 육지,,,서울로 갈수 있느냐 ? " 를 고대하며 근무하는 곳 ,,, 한도 많았고 잊을수 없는 내 인생에 한 획을 그은 곳,,,그레서 " 인생은 물과 흘러 가는 것? " 이라고 했던가 ?
2013. 11. 8 벽산 우제탁
아이엠 람보님 글 제주총국에 역사가 한 퇴직선배님의 소개로 볼수가 있다는것 감회가 깊습 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같이 일하시던 제주방송총국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제주방송총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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