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KBS 강릉방송국의 어제와 오늘

이장춘 2011. 7. 17. 11:02
 
 

 

 KBS 강릉방송국의 어제와 오늘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동쪽을 영동
서쪽을 영서라고 부릅니다.  산맥이 가로막혀 
영동은 이곳에서 방송을 송출하지 않으면 방송
불모지일 수밖에 없었던 곳에 처음 방송을 들을수
있었던것은 1941년 12월 6일이었습니다.
 
 1941년 함경도 원산에 방송국을
새우고 원산방송국 강릉방송소라는 
이동방송국으로 출발했다가 얼마 안있어
고정방송국이 된 강릉방송국은 강릉시
교동  철도관사 자리에서 출력 30W,
주파수 600Khz로 방송을
내 보냈습니다.
 
방송을 내 보내면서 라디오 수신기도
 보급해야 되고 보급된 수신기에 대한 서비스도
해야 되고 수신료도 받아야 되어서 이런 일을 할 출장소
문을 연 것이 1943년 7월 15일로 아래 사진은 이때
출장소  직원들이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1947년 5월 1일을 기해서 출력을
 300W로  늘리고 그해 12월에 방송국이
되었습니다. 1950년 5월 5일 새로운 방송국

 건물을  세우고 출력도 500W로 늘렸지만 곧이어

6.25가 나면서 방송은 중단 되었습니다.  강릉에서 

공산군이 물러나면서 1951년 8월에는  20W로  

 이동방송을  실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깅능에서 공산군이 물러나면서

1952년 일제강점기  신사사택으로

쓰던 건물을 방송국으로 개조해서 출력

500W 방송을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강릉 방송국장으로 계시던  황병찬선생님이
 1958년에 쓰신 글이 있어 옮깁니다. 

 

 

 

햇간난 아이의 울음소리 마냥 30W출력으로
작은 규모의 중계 방송장치를 가지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일제하 즉 단기 4275년 (1942년)에 시내 철도관사
65호 건물에서 강릉방송소로 중계방송을 시작한 것이 오늘의
기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당시의 시설목적은 오직 치열해가는
소위 대동아 전쟁 중에 있어서 그들이 한갓 전파관제를
해서 시설된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하겠다.
 
그 후 8.15해방과 더불어 소규모나마
그 시설일체는 우리에게 인계되어 이로부터
실로 우리를 위한 우리방송이전파를 타고 청취자의
환성에 호응하므로서 청취자와 방송국은 호흡을 같이하며
우선 방송시설 개선에 힘썼던 것이다. 그리해서 지방민의 열성적인
 요청과 당시 대한 방송협회 기획으로 방송소는 방송국으로 그 명칭이 
바뀌고 30W 방송시설은  300W로 확장되어 시 외곽지역인  홍제동
1우 산마루에 자리 잡고  4281년 (1948년)  12월 6일을 기해서
개국을 보아 300W나마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설로 확장되어 자리잡고
 굳어가는 강릉방송국도 6.25공산남침으로 무참히도
 폐허화 되었다. 6.25동란의 수난기를 거쳐 복구건설 고난기에
들자 당시 춘천농대 강릉분교 설립 기성회의 협조를 얻어 4285년
(1952년) 5월 현국사의 시초인 왜정시 강릉신사 신궁사택의 귀속재산
 건물 28평의 주택을 개조하여 500W 방송시설을 갖추고 4285년 (1952년)
7월 15일을 기해서  복구건설 개가를 올려 완전수복을 알리는
1080KC의 힘찬 전파는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어
지방주민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설되었던 방송기기를 보면
송신기는 부산방송국에서 그리고 수신기는
목포방송국에서 각각 전환되어마치 폐품이용을
위한 조립식이라는 감을 주었었다.
 
 
황병찬님은 강릉방송국을 비롯해서
강원도에서 일생동안 방송과 함께 하셨던 분으로
1958년 말부터 강능방송국장님으로 계셨습니다. 이 무렵
강능방송국에 계시던 분은 황병찬 국장님을 비롯해서
함영복, 최장섭, 정은영, 최돈민, 황대수
전명찬님이 계셨습니다.
 

1958년에는 출력이 5Kw로 늘었고
 1961년 11월에는 다시 10Kw로 늘어났습니다.
 1968년 5월 20일에는 경포에 10Kw 새로운 송신소를
세워 방송국과 송신소가 분리되면서 동해안에서 가장 강력한
출력으로 전파를 발사 했고  정선, 황지, 삼척 등 여러 중계소를
보유하고 있어서 라디오 시대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계소를 보유한 방송국이기도 했습니다.
 
1971년 3월 27일 괘방산에
TV 중계소가 세워져 선명한 TV방송을
시청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제감점기의 신사 사택을 빌려쓰던
강능방송국은 1962년 구 명주 교육청 청사를
개조해서 방송국으로 사용하다가 강릉시 용강동에
지금의 방송국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지어 자리를 옮긴것은
1965년 12월 1일이었습니다. 1980년 12월 이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신축해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5년 7월 1일을 기해서 속초방송국과
태백방송국이 방송국기능을 상실하게 됨에 따라
강릉방송국 관할 구역에 편입되어 많은 시설과 광활한
지역이 강릉방송국 관활로 되었습니다.
 
 
공사 될 무렵 라디오 하루 자체 방송은
3시간정도 되었습니다. 지역 특수 여건상 다른
을지국보다는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방송되던 프로그램으로는 지역뉴스, 공지사항을  비롯해서
 KR새싹, KR무대,사랑방차지, 노래자랑, 노래와경음악,
수산상담,내고장 농사, 오늘도 명랑하게, 생활상담실,
오후의 로타리,  우리들 차지등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름철 해수욕 철이면 중앙방송국의
지원을 받아 성대한 공개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사진은 1972년도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실시한 공개방송 장면입니다.

 
 

 


어린이 공개방송이나 지역특성에 맞는
행사도  종종 열렸습니다. 강릉방송국이 주최한
행사 중 차례대로  맨 위의 사진은 영동어린이 음악
콩쿠르 광경이고 그다음은1984년에 있었던 하계
시민대학 모습, 그리고 차례로 한국화가 초청   

전시회 모습과 2008년 개국 67주년 기념

작품전시회 테잎커팅 장면입니다.

 

 

 

  

 


 

공사되기 직전 1972년말 강능 방송국 직원

 

 

 



국 장   황  병  찬

방송과장 강완수

김종성, 정인철, 김월순, 박영일,
홍현업, 오부돌, 이순애, 박무선, 최찬송
 

기술과장 최장섭
정재철, 정의륜, 김원대, 배석진, 이창섭

 


경포송신소장 민경원
장철원, 허상률, 박연철
 

삼척중계소장 정호섭
신금용, 김재호, 김복성, 최창운

 
황지중계소장 가동현
조영관, 김원규, 박성애, 이숙희
 

정선중계소장 이연근
안영준, 김각영, 최찬병, 이근란

 

 

 

 

1964년 강능방송국 근무직원

 

국장 조남두

 

방송과장  신창균

 

강영애, 정인철, 김영효, 우재명,

최세용, 박창근, 이창섭, 김정준

 

기술과장 김병기

가동현, 곽남순, 김부일

 

삼척 중계소장 함영복,

조성탁, 윤두림, 유재철,

 

송신소장 최돈민

장철원, 조춘택, 최상집

 

 

 

오죽헌에서 최장집 강능기술과장님과 본사 기술관리부장

송재극님이 합께한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사우회 서병주 회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회원님들이  2005년 개국

64주년을 맞을 무렵 강릉방송국을 찾은 모습입니다.

이날 전 KBS사우회 회장님이신 신병운 고문님과, 

윤기범, 이무근, 정하룡님등  원로 회원님도

 같이 들려 주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옛날의 금잔디-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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