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방송국에서 KBS 창원방송총국까지 오늘날의 창원방송총국이
마산방송소라는 이름으로 출력 50w
주파수 600kHz, 호출 부호 JBOK로 처음방송을
시작한것은 1942년 2월 20일로 남한만으로 볼때는
여섯번째로 새워진 방송국이었습니다. 이때 방송소장은
다나가라고 하는 일본인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라 방송은 일본의 계몽방송과 공습경보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산방송소가 방송국으로 승격한것은
1944년 1월 1일의 일이었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방송국이 우리 손으로 돌아 오면서
시설 유지관리에 힘을 기울인 오기영님이
국장으로 취임하셨고 이때 진말봉, 고종수,
강대현, 조선제님이 마산방송국에
근무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구마산 노비산에 있는
일제에 의해서 추방당한 호주선교회 선교사
사택을 방송국으로 개조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이 사택은 해방되고 선교사들이 돌아와 반환요구가 있어서 돌려주고 청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6.25
동란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해 7월 대성동 있던 복수사
절을 개조해서 방송국 청사로 썼습니다.
이때 출력이 50W에서 300W로 증강
되었습니다.새로 마련된 청사는 마산시민의
열열한 성원아래 마련된 것으로 이런 성원이 없었
더라면 방송국은 진해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1957년에 이곳 방송국장을 지내셨던
이태구님이 기록 해 놓으셨습니다.
해방되고 우리나라가 고유의
호출부로를 받을때 HLKO가 배정되어
1959년 7월 27일까지 사용하다가
HLKD로 바뀌었습니다. 초기 마산방송국 얘기는 1957년부터 마산방송국장을
지내신 이태구님이 1958년에 쓴
글이 있어서 옮깁니다.
4281년 (서기 1948년) 12월 지윤상씨가
2대 방송국장으로 취임해서 기술자가 콜싸인을
하는 등 방송면의 침채를 보강하고 새로 아나운서를
채용하여 노래하는 경음악, 지방소식과 같은
일주일 평균 한시간 반의 자국방송을
하게 되었다.
4283년 4월 다시 오기영씨가
3대 국장으로 취임하여 4283년 7월
6.25동란중에 현국사(마산시 대성동에 있는
일제때의 절 복수사를 개수한것임 ) 로 옮기고 ..4286년
이천택씨가 제4대 국장으로 부임한후 지방방송국의 계획을
점차로 확장하여 4288년 아나운서를 보강하고 하루 세 번의
지방소식시간을 비롯하여 오락과 교양을 중심으로 하루
평균 2시간 반의자국방송을 실시 하므로서 마산
방송은 청취 대중 속에 침투하게 되었다.
이태구님의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시던 무렵의 마산방송국
에는 이태구 국장님을 비롯해서 배성호,강대현, 서용수, 구연경, 박승개, 추금자, 현창남, 김윤수, 김호영, 황용일님 이 근무했습니다.
1959년 진해에 송신소가 새로 설치되면서
출력은 1kW로 늘어났고 주파수는 1430kHz로 바뀌었
습니다. 1977년 가포에 10KW의 송신소가 세워지면서
가청권이확대 되었고 주파수도 940KHz로 바뀌었 습니다. 이때 진해 송신소는 폐쇄되었습니다
1960년 7월 19일국사를 마산시 완월동으로 옮겨 1987년
6월 1일 창원으로 옮길때까지 이곳에서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1969년 5월 9일 불모산에
출력 500W의 TV중계소가 서면서 이 지역에서 TV를
시청 할 수 있었고 1978년 1월 말 불모산의 출력이 10KW로 늘어 나면서 서부경남 일대의 시청상태가획기적으로 개선
되었습니다. 자체 TV방송은 마산방송국 청사에서 방송 실시가 어려워 창원에 있는 경상남도 도청안에 임시스튜디오를 설치해서 1983년부터 방송을 실시 했습니다.
창원에 경상남도 도쳥 소재지가
자리잡게 됨에 따라 방송국 부지를 창원에
마련하고 1985년 6월 1일 새로운 청사를 착공해서
1987년 6월 1일 준공을 보면서 TV자체방송을 비롯해서
창원방송총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986년 3월 12일
마산방송국장으로 부임해서 얼마 안 있다가 그해 12월 1일자로 직제가 개편되어 마산방송총국장으로 승진 보임된 서병주 총국장은 1987년 6월 1일 창원방송총국 준공식을 치루면서 지역명 따라 방송국이 창원방송총국으로 바뀌어 창원방송총국장 자격으로 창원방송총국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한자리에서 을지국장이 갑지국장으로 승진하고 마산방송총국장 자리에서 창원총국장이 된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구호 KBS사장과 지역 각계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준공식을 치룬 창원방송총국은 이번 새로운 청사 준공으로 26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때의 서병주 총국장은 1989년 1월 7일 라디오본부 부본부장 겸 라디오국장으로 부임했다가 잠시 다른 직책을 거쳐 라디오 본부장, 또 퇴직 후에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KBS 사우회장으로 재직했습니다.
마산방송국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밀양 아리랑 가요축제는 밀양출신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실력있는 아마츄어 가수를 발굴하기위해 창원방송총국이 해마다 여는 행사로 올해(2010년)로 9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곡은 박시춘선생님이 작곡해서 기타반주를 한
남인수의 데뷰곡 눈물의 해협입니다, .
임진왜란 최대의 승전 한 산대첩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통영 한산대첩 축제 KBS축하 음악회는
올해(2010년)로 5회가 되었습니다.
공사가 되기 직전 을지방송국이던
마산방송국의 자체방송시간은 약 3시간이었
습니다. 마산, 진해, 충무 등 경남 서부 일대의 뉴스를
전하는 지방 소식이 다섯차례 방송되었고 군항의 밤, 오늘도 명랑하게,가정시간, 생활상담실, 농어민의 시간, 우리들의 차지등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전속단체로는 각각 7명으로 구성된 경음악단과
가수회가 있었고 각각 40명정도로 구성된 어린이노해회,
애기노래회, 어머니 노래회가 있었습니다.
마산방송국의 어머니 합창단은 특히 유명해서
청와대 까지 초청받은적이 있었습니다.
국장 하 영 호
방송과장 김헌식 박승개, 윤예근, 이문구, 박종식,
제창우, 정정화, 김원태,허문수, 김외조,
서영순, 김봉갑, 조환금,윤삼규,
김용배,
김삼수 님. 문인상, 김종대, 이상대님. 진해 송신소장 박재희
김형대, 조남주, 김태하, 박석병,
박동섭, 강춘근,
이승무님
불모산 중계소장 김영식
신수기, 곽재환, 박돌수, 김철훈
1964년 마산 방송국에 근무 하시던분
국장 김덕수
방송과장 박용명 박승개, 강완수, 이상세, 유순길, 이수인
기술과장 구연경 현창남, 천우병, 이석대, 이문구
송신소장 고세혁 이인화, 구연도, 문인상
2010년 창원방송총국 사원
총국장 : 오세영
위원 : 신석진
편성제작국
국장 : 고영산
선임 : 최우철, 박재용, 노병무, 직원 : 차다혜, 이아롬, 유혜진, 김윤정, 김태균, 박소영, 심인보, 이지윤, 이지희, 조민지, 백승철, 박덕선, 권오용, 연규청, 원명구, 김성수, 류영희, 정병철, 김순석, 박한길, 문석민, 장영우, 임성욱, 진정수, 나동명, 박일성, 김승일, 정영상, 김광호, 김창수, 손윤희, 박정용, 노영근
보도국
국장 : 강철구
선임 : 김대진, 최성안 직원 : 김소영, 손원혁, 조미령, 박현, 송수진, 박상현, 진정은, 송현준, 오용민, 조현석, 신용정, 조덕현, 장정호, 권경환, 정재준, 김현수, 배수영, 류해남, 박재우, 강윤배, 김진오
기술국
국장 : 구자룡
선임 : 박치흠, 문정석, 김두식 직원 : 곽응순, 이봉재, 장순익, 여태길, 백우동, 서기조, 변일환, 김영식, 조인제, 김광식, 박승근, 김두원, 조원현, 김보아, 이상준, 김기용, 정재호, 박종인, 박근수, 이상민, 류진수, 서정권, 김재훈, 고시전, 권성준, 고춘우, 김종언, 곽남우, 박주택, 이광호, 황종훈, 문숙돈, 배남진, 이상국, 이환수, 박동열, 차상현, 김형천, 김성백
총무국
국장 : 황상기
선임 : 윤선애, 김종일 직원 : 배중훈, 백승민, 이경환, 권미정, 정석근, 박장수, 김태경, 문영일, 김종상, 천규인, 이윤세, 장영학, 박만식, 허호영, 구교완, 민성호, 장원택, 전동주, 이승도, 오길종, 김영은, 장정희
진주방송국
국장 : 박장호
선임 : 천현수, 진우석, 이흥숙 직원 : 고정용, 도대영, 조윤희, 구교민, 배성우, 서상훈, 양성모, 김성주, 이병헌, 심민보, 김대한, 박진하, 최세진, 유영선, 정대선, 서영교, 강명호, 이영도, 이수호, 박동환, 임재일, 김영수, 김지환, 이윤철, 김종호, 최인재, 박영식, 황봉주, 김동수, 권재경, 김성태, 김해천, 오창훈, 김미균, 이상열, 김성진, 구자수, 김동훈, 윤규원, 서경수, 정태환, 정세영
40여년 KBS외 인연을 맺어온 이수인님이 1965년 마산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있던시절 어머니 합창단을 창단해서 운영했고 육영수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공연을 갖으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다른 방송국에서도 어머니합창단을 창단하는 방속국이 생겼습니다. 이수인님은 1968년 서울 중앙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지휘를 맡아 오랜세월 KBS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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