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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孫夕友) 님! 음악과 함께 한 60년

이장춘 2010. 11. 10. 19:32

 

 

 

 

손석우(孫夕友) 님!  음악과 함께 한 60년

 

 

1953년 6.25전쟁이 휴전으로

이어지면서 부산으로 피난갔던 KBS

중앙방송국이 서울로 돌아온후 음악프로그램을

 늘리던 때 방송국의 음악방송에 참여하셔서 가요 프로그램

에도 관여하시고 새로 구성된 경음악단에도 참여 하시면서 작사 작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나온 곡이 스스로 작사 

작곡하셔서 최초의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던 송민도님의

목소리로  불려진 하나의 사랑입니다.

 

 1955년! 이 노래가 전파를 타면서

대 힛트를 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음성은

손석우선생님의 그때 그 얘기와 송민도님이

부른 곡 나 하나의 사랑입니다.

 

 

방송국에서 활동 하시다보니

방송인들과 친해지셨고 나 하나의 사랑이

힛트하면서 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무렵

미국에서 6개월간의 방송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신 조남사님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시도하면서 청실홍실이  최초의

멜로 드라마로 방송하게 됐을때 선생님이 주제곡을

작곡하셔서 송민도님의 노래로 불려졌습니다.

 

 청실 홍실이 안방을 파고 들면서

조남사선생님은 물론, 주제곡을 작곡하신

손석우님, 또 이 노래를 부른 송민도님을 비롯해서

장민호, 김소원, 정은숙님 등 출연자들도

함께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님은 작곡가로서 명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오아시스 레코드의 전속

작곡가가 되셨고  이 무렵에 새로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국 HLKZ에 님이 지휘하는 악단이 자주 출연

하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때의 얘기를  HLKZ에서

음악프로그램을 담당 하셨던 황문평님이 

다음과 같이 써 놓으셨습니다.

 

방송국에 자주 출연하던 악단 중에서

손석우의 열의는 대단했다. 저녁방송을 위해

한낮부터 풀 리허설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것, 이럴 때 손석우자신이 호주머니를 털어 커피

한잔씩이라도 출연진에게 선사했는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악단 멤버나 무용수들이 미국회사(초창기는 RCA 회사가

 직영한다는 인상이 짙었었다)라서 커피까지

무료로 먹여 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963년에는 방송인으로는

 최고의 영예로운 상,  제 6회 방송 문화상을

받으셨습니다. 1965년에는 방송부문 서울시 문화상을

받으셨고 2003년에는 문화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 대한민국 보관 문화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손석우 선생님의 지난날로 잠시 거슬러 올라 가 봅니다.

 

1920년 12월 30일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목포 상업학교를 나온 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은행이던 목포 호남은행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원래부터 문학, 음악, 미술, 체육등 다 방면에

다재 다능했던 님은 연예부문에 발을

들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던중 해방을 전. 후해서

작사, 작곡, 노래, 쇼등 다 방면에 걸쳐

인기 절정이던 김해송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해송님은 이난영님의 남편이고

김 씨스터즈 아버지입니다.)

 

김해송님과의 만남은 님을

일생동안 음악인으로 살게 한 중대한

갈림길이었습니다.   님은 김해송 선생님을

만났기에 음악인으로 살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님의 작품 100곡선을 발행  하시면서 그 책을

김해송선생님에게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김해송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활동을 시작한 님은 김해송님이 KPK

쇼단을 결성 하면서 그 쇼단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습니다. (KPK쇼단은 해방후 6.25전까지의

최대 쇼단으로 미군 공연을 비롯해서 큰 무대에는

이 쇼단이 참여했습니다,) 6 . 25 전쟁이 일어

날때까지 그렇게 활동하셨습니다.

 

전쟁은 님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스승이던 김해송선생님은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님은 고된 부산 피난살이 에서도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다방에서도 곡을 만들어 취입하고 남의 점포에서도 곡을

취입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이때 취입한곡이 SP판

 항구의 불루스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도 그 곡이 어떻게

구현될지 몰라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다가

훌륭한 곡이 나왔을때는 날아 다닐듯

기뻐 하셨답니다.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하던

 1950년대 중반부터 나하나의 사랑,

청실홍실을 비롯해서 1958년 손시향이 부른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1961년, 한명숙이 부른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그 밖에도 최희준이 부른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KBS 전속가수 김성옥이 부른 초혼,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수 많은 노래가 그 시대를 사시던 분들에게는 아직도 머리에 생생 합니다.

 문학적 소질이 있으시던 님의 곡 대부분을 스스로 작곡 하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올해 91세로 수원에서 사시는 님은 음악활동은

못하셔도 건강 하시다고 하셨습니다.

 

더 자세한 사향은 선생님의 약력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1920년 12월 30일 전라남도 장흥 출생

1933 목포공립상업학교 입학

1938 목포공립상업학교 졸업

1938 호남은행(민족자본의 은행으로 훗날 조흥은행으로 흡수) 근무

1941 조선연예주식회사 입사 , 태평양전쟁 발발로 연예생활 단념

1948 김해송악단(K.P.K) 입단

1955 KBS 전속악단 결성에 참여, 가요방송 지휘자

1956 오아시스레코드 전속 작가

1961 뷔너스의 레이블로 LP 자주 제작 시작

1963 방송가요작가그룹 결성

1969 EASTERN MUSIC 초청으로 도일, 3개월 동경 체류

1963 방송문화상 수상

1965 라디오 서울 방송문화상 수상

       TBC 가요상 수상

2003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수훈

한국 가요의 일본어 역사(譯詞)작업 수행 

 

 

 

 

 

 

사진은 1955년 5월 27일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자랑 공개방송을 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선생님은 이때 KBS 전속경음악단을 지휘했고

이 사진속에 님의 모습이 함께합니다. 이무렵 손석우님은 청실홍실,

나하나의 사랑등의 히트곡을 내면서 작사, 작곡, 지휘자로서 큰 발걸음을

 내 딛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선생님을 비롯해서 스무고개에 출연한 문제안,

이덕근,  이경희 박사와  사회 임택근아나운서,  문시형 프로듀서가 함께 했고

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장기범 강영숙, 아나운서 프로그램을 맡은 김창구, 기술을

맡은 한기선, 김성열, 편성책임 노정팔님이 함께 했습니다.     아래는 1956년

대구에 있는 5공군단위문공연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3.김인숙, 4.이경희,  

5.송민도, 8.김석야,12.김창구, 13.유해룡, 14.노명석, 17.손석우,

 20.김성열, 21.송민영, 22.5공군단장, 23.임택근, 24.송영수,

 26.문시형, 27.명국환, 28.장기범, 30.이상만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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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의 사랑 비지맨트.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