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를 찾아
세월을 거슬러 40-50년전만 해도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영월을 가려면 열시간 정도는 걸렸을 것이다. 하물며 550여년전 단종이 허수아비 상왕이 되었다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첩첩 산중 험한 길따라 영월땅에 유배되었다. 영월 가운데서도 3면이 넓고 깊은 강줄기가 흐르고 서쪽은 육륙봉의 층암 절벽으로 둘려 싸여 외부 세계와 단절된곳 청령포에 단종은 유배되었다.
지금은 땜을 막는등 물이 많이 줄었지만 단종이 유배되던 때는 지금과 비교가 않되는 많은 물이 흘렀고 그해 여름 대 홍수가 나서 섬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일까지 있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두 칸 짜리 집이 있었다지만 홍수등으로 사라져 버려 그 오막살이 집은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다.
옛 모습을 되살리려는 생각으로 1997년 발굴작업을 해서 희미한 유적은 찾았어도 원래 그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영월군에서는 2000년 이 청령포에 기와집 한채를 짛어 단종어가라 이름을 붙여 놓아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 어가를 돌아보며 단종의 슬픈 얘기를 머리에 떠 올려 보지만 역사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그 어가를 향해서 90도각도로 엎드려있는 소나무를 보고 단종임금을 섬기던 엄홍도의 충절 표현이라며 충절송이라 이름하고 그 소나무를 기이한 일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단종어가 앞에는 영조 39년에 새운 단종유지비(端宗遺址碑) 정확히 얘기하면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가 있고 이 유지비를 보호하는 비각이 있다.
담 밖에는 영조 2년에 새운 청령포금표비(淸령浦禁標碑)가 있다.
이곳이 임금이 살던 곳이니 일반인들은 드나들지 마라는 뜻으로 새워진 비다. 그래서 영조이후 이 청령포 출입이 금지된 때도 있었다.
청령포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고 그 중에서도 다른 소나무와는 다른 노송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등을 보았다는 뜻으로 이름 붙혀진 관음송(觀音松)이다. 단종의 모습을 본 소나무라니 550년 더 되었을 법한 소나무다.
관음송이 있는곳에서 오른쪽 게단을 따라 올라가면 제일 높은곳에 작은 기암괴석이 있고 그 기암괴석을 올라가면 바닥 대리석에 노산대(魯山臺)란 글이 새겨져 있다,
노산대에서 절벽 밑으로 바라보이는 강줄기는 파란 색을 띠며 오늘날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는아름답게 보이지만 단종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85세의 김명희 여사님은 이곳 노산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임금님이 이곳에 오셔서 지냐셨을때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라며 깊은 생각에 잠기신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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