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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와 5.16 그리고 그날의 방송

이장춘 2010. 5. 12. 02:52

 

 
 
 4,19와  5.16 그리고 그날의 방송

그 때로부터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민주주의를 찾아야 되겠다, 그리고 잘 살아야 되겠다.
민주주의를 해본적도 없고 잘 살아 본적도 없었던 우리 겨래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4,19나,  5.16이 혁명이다, 의거다, 정변이다,
쿠테타다 해서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러면서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오늘, 
이제는 민주주의 터전도  어느정도 확립되었고 그 어렵던
가난의  굴레에서도  벗어났습니다.
 
반세기를 지나면서 그 간절한 소망을
가슴에 안고 피, 땀흘려 일하던 세대는 세월이
많이 흘러 세상을 뜨신 분들이  많고 이제 세대가
 바뀌어 그 때를 실감 하시는 분들이 줄어 들었을 지라도
그 시대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그때를
되돌아 볼 수있는 글에 동영상을 엮어
3회에 걸쳐 올립니다.
 
 
지금 들려오는 오디오나
 
3일간에 걸쳐 올리는 동영상은
 
그 때 그 상황에서 제작된 것임을
 
이해 해 주셨스면 합니다. 
 
 

 
4.19와  5.16은 6.25가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의 획기적인 역사의 전환기였습니다.
  5.16의  성격 규정이 시대와 입장에 따라 변하기는 
했지만 역사의 전환기가 되었음은 분명한 일이고
 그로부터  후진국이라는 굴래는 서서히 벗겨지고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릿고개라는 용어도 
사라지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때 시대적 배경부터  간단히 살펴보면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던 간접선거를 직접선거로
바꾸고 또 3선개헌이다,  4 사 5입이다, 해서 헌법을 바꾸어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꿈꾸던 터에 국민의 여망을 안고
1956년 대통령에 출마한  신익희 선생님은  대통령 선거일을 10일
 앞두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1960년 4대
대통령에 출마한 조병옥 후보도 선거일 한달 남기고
세상을 뜨시니  다른 대안은 없었고 대통령
선거는 무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자유당은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 까지 독식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 결과 자행된것이 대대적인 3.15부정
선거였습니다.  이로부터 발단된 국민적인 저향은 
 4.19로 이어졌고  4월 26일을 기해서  
 정권은 막을 내렸습니다.
 
과도기를 거쳐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당 자체가 둘로 갈라지고,  한번도 제대로 민주주의를
 겪어보지 못한 이 땅에서 서로의 주의 주장만을 내 새우면서
혼란이 야기 되었습니다.  집궡당 민주당은 구파다,  신파다해서
정쟁을 일삼다가 당이 두개로 완전히 갈라져 버렸습니다. 
 
 세상 물정 잘 모르던 일부 세력은
가자 북으로 오너라 남으로 라는 구호까지
등장하면서 나라의 형편을 어려웁게 했습니다. 
결국 새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고 군사 쿠태타의
 빌미를 제공했고 드디어  1961년 5월 16일 총,  칼을 든
 군인들이 방송국을 점령하고 이를 신호로
정부를 장악했습니다.
 
 
 
 
 집권 과정을 별개로 하면  어떻든
그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도
 절실히 바라조국 근대화의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 되었습니다.
 
5,16은 박정희 장군이 인솔하는 군 지휘부가 남산에
있던 방송국을 점령하고 그 날 첫 방송을 신호로 일제히 거사가
진행 되었습니다.     그날세벽 KBS 방송국 당직,  박종세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첫 방송이 전파를 탔습니다.  그 얘기는 내일 올려드리고
 방송이 전파를 타기 위해서는 방송기술자의 역할이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오늘은 그날의 당직 엔지니어 임시현님이
남기신 글을 올리겠습니다.
 
 
 
 
 
 엔지니어 임시현님의 글 

 


5.16혁명 전날 나는 숙직에 걸려
방송국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 5분경이었다.수위가  들어와잠에
취한 나를 흔들어 깨웠다.

.... 중략....
 
별 수 없이 현관 쪽으로 나와 보았다.
과연 수십 명의 군인들이 몰려와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나와 있었다. ...중략...나는 무척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어둠이 덮인 저만치에서 무장한
군인들이트럭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한영식 엔지니어와 함께 방송국
청사 뒤쪽으로도망하기 시작 했다.  담을 넘어
주자 파출소까지 단숨에 달려갔다.거기서
사방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전화는 통화되지 않았다.
그제야 방송국 청사로 몰려온 군인들이 무슨 거사를
벌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방송 개시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긴장과 당황 속에서도 방송은
내고 봐야
 될게 아닌가 싶어 다시방송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에 당도하니 군인들이 출입을 막았다. 나는 신분을
 밝히고 방송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자 그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주조정실로 들어서니 4시 50분이었다.
주 조정 실 앞 복도에 서있던 박종세 아나운서가
겁에 질린 얼굴이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그것은 어쩌면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다가
 동지를 만난그런 반가움 같았다.

이윽고 5시 정각 나는 시보와 함께
 애국가를 방송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내 곁에 서
계셨던박정희 장군은 “이게 방송이 나가는 거요
 하고 물었다. 여기서 라디오를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방송 나가는 겁니다.

박정희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나 나는 방송이 나간다고 자신있게
말 했지만과연 송신에서 제대로 방송을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몹시 불안 하였다. 물론 방송이 나가기 직전에
송신소에 신호를 보내어 김익모씨에게  정규방송이 아닌것이
 방송되더라도 자르지 말고 방송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김익모씨 역시 일체자르지 않고 방송을 해 줄 터이니
안심하고 방송하라고 말 하였다.

그리하여 애국가가 끝남과 동시에
박종세 아나운서의 혁명공약 낭독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5,16  제1성'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 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동포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없이 각인의 직정과 정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 혁명 위원회 의장 육군중장 장도영

 

 

 '혁명공약'

 

1.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군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 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군인) 이와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민간)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1961년 5.16이 일어났을 때

5월 17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시가행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중계 방송한 임택근

아나운서의 글 한편을 올립니다.

 

 

  

 

 

그때 국립영화 제작소에서 제작되어
전국의 극장이나 집회장소에서 상영되었던
동영상 한편을 보시겠습니다.  동영상을 보시기
전에 위의 오디오를 꺼 주셔요.  
 

 

 

 

 

 

 

방우회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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