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가수 박단마와 최초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슈샨보이

이장춘 2010. 4. 29. 01:53
 
 
 
가수 박단마와 최초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슈샨보이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이름을떨치던 가수 박단마!  1921년
개성에서 테어나 1934년경성방송국에서
봄맞이 꾀꼴새로 데뷰해서 6.25전후 최고의
수 반열에 올랐던
박단마님은 노래와 당대
최고의 
쇼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노라노 (본명, 노명자)님의
 자서전을 읽다가 박단마님 예기와그때의
연예계 얘기가 있어서 노라노님 글에박단마님노래를
실었습니다.  박단마님은 1992년 1월 22일
미국에서 사망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나는 열일곱살이에요>
<맹꽁이 타령><슈샤인 보이>
  <날나리 바람><대보름 달맞이>
<미풍의 언덕> <그렇지만은요>
<꼭 오세요><끊어진 테프>
등이 있습니다.


 
 
노라노님의 글
 
1950년대 쇼의 전성시대였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마음을 달래며 고된 현실을 잠시나마 잊으려 했다.
그당시 쇼맨 김해송씨가 이끄는 KPK라는 쇼단이 있었다.
 김해송씨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의 남편이자
 가수 김씨스터즈 부친이다. 작곡의 천재였던
그는 타고난 쇼맨이었다.
   
 
가수 박단마도 빼 놓을 수 없는 타고난 쇼걸이었다.
내가 의상을 담당한 미 8군 쇼단의 맴버였던 그녀와 만난지
얼마 안돼 곧바로 친해졌다. 나는 그녀의 노래와 인간적 매력에
사로 잡혔다. 그녀는 나를 한국의 제일가는 멋 쟁이라고 치켜 새우기도
했다.   그녀의  애달픈 노래는  푹 꺼진 큰 눈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미 8군 쇼에서 부를 팝송에 한글로 토을 달아주고 '대'
'중' ,  '소' 로 감정 표시를 해주곤 했다. 예를 들면 그녀의 애창곡,
 I am in the mood of love 의 가사중 'mood'.에 '대'자를 표시했다.
이 노래의 "in the mood of love"라는 부분에서 그녀가 큰
눈을 서서이 뜨는 모습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손님들의 의상을 만드는것과 달리 무대 의상을
디자인 하는것은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춤과, 노래, 영화를
워낙 좋아 했던 나는 상상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의상에 .
큰 재미를 느꼈다. 요즈음에야 가수 한사람에게 스타일리스트와
코디네이터등이 전속으로 따라 붙지만 당시만 해도 유행가를
부르는 쇼를 위해 의상을 따로 디자인 한다는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명동의 시공관에서 열리는 박단마
1인의 라이브쇼를 위해 나는 타프타 밸트가
달린 검은색 빌로드 드래스와 구슬을 목 밑으로
늘어 뜨린 것을 디자인했다.  무당 부채를 들고 나타난
그녀는 느릿한 가락으로  "노새, 노새,  젊어어서 노새"를
부르다가 갑자기 갓을 벗어 던지며 "슈, 슈, 슈, 슈샤인 보이"
하고 빠른 탬포의 노래로 넘어갔다. 그 순간 극장에서는
우래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 해 낼수 있었던 박단마야 말로 천재적인
 가수이자 쇼걸이라 생각한다.
 
 
잘 아시지만 노라노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이고,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알아 주는
분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인 노창성님과 최초의 아나운서
이옥경님의 들째 따님입니다.  방송의 얫날 얘기를 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도움을 주시고 계십니다.

노라노 여사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본 1950년대 노라노 패션쇼와 오늘이 있기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443


노라노가 쓴 최초방송인 노창성, 이옥경http://blog.daum.net/jc21th/17780072




 
 
춘하추동 방송 이장춘. 
 

 

 

 

박단마 슈산보이.mp3

 

 
박단마 슈산보이.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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