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KBS, 남산 라디오 방송국의 시설과 구조

이장춘 2010. 2. 4. 04:38

 

 

 
KBS, 남산 라디오 방송국의 시설과 구조
 
 
1957년 12월 10일을 기해서
서울 중구 예장동 8번지에 옮겨진 남산
 라디오 방송국은 그때로서는최신 시설을 갖추
었습니다.  남산 언저리 1281평의 대지위에 1층 350평
2층 347.5평, 3층 114.2평으로 된 현대식 본관과 42평의
발전실을 짛었습니다. 뒤에 원자력원의 건물을 인수해서  
중앙, 국제방송국이 자리 잡았고   TV방송국이 마련되어 
KBS 3국이 자리하면서 남산 방송시대를 열었습니다.
 (KBS 3국은 1968년 7월 25일 중앙방송국으로
 통합 개편되었습니다.) 
 
1957년 초부터 시작된 라디오 연주실은
그때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신 한기선님이
 이 시설 책임자가 되어 전체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음향시설도 과학적인 기법으로 최적화된 공법을 도입, 
방송시설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남산방송국을 처음 짛을때는 위 사진의
건물만 있어서 대공방송과 해외방송을 하던
제2방송과는 정동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5.16때도 제 2 방송과는 정동에 있었습니다.
 
 
1961년 7월 1일을 기해서
국제방송국이 새로 발족되고 이어서
방송국 옆에있던 원자력원 건물을 정동방송국과
교환하기로 하면서 원자력원의 건물과  원래의 방송국을
연결해서 하나의 건물로 만들고 원래의 방송국 건물에는
방송 제작 송출시설과 중앙방송국 편성과 방송과 (아나운서실,
보도실) 중앙, 국제방송국 기술과가 자리했고 새로 편입된 원자력원
건물에는 1층에 두 방송국의 서무과 2층에  중앙방송국장실, 중앙방송국
편성과장실, 국제방송국 대공과가 있었고 3층에는 음악계, 자료실 겸
문화연구실, 국제방송국  대공과장실, 해외과장실이, 4층에는 국제

방송국장실, 해외과와 국제방송국 자문위원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과장실이 따로 있었지만 업무량이
 늘어나고  공간이 더 필요 해지자 과장실은 없어지고
 사무공간도 후에 다소의 변경이 있었지만 골격은 
공사가 될 때까지 유지 되었습니다.
 
 
제작 송출실로는 중앙방송국과
국제방송국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조정실이
2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54.2평의 면적에 340석의 방청석을 가진
제1연주실은 무대의 후벅과  측면을 가벼운 반사 재료로
특수한 곡면과 재료로 설계되고 마이 크로폰등 현대식 기기를
 마련하고 아나운서 부스와 영사실을 갖추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비롯한
여러 공개방송이나 행사때 사용하는 있어서  방송국의 
월례조회 등 모임도 여기서 가졌습니다.   

 

  

 

1958년 10월 10일 쌍십절 기념 한. 중국친선의 밤 행사 모습입니다.

 

 

제1연주실에서의 스타탄생 녹음광경입니다.
최고의 아마츄어 연기자를 금주의 스타로 선정하는
이 프로그램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20평으로 된 제 2 연주실은
경음악, 어린이 합창, 아기노래회의 합창,
 간단한 어린이 공개방송 등에 활용 되었습니다.
 
 

 

제 3연주실에는 녹음된 효과음 녹음물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바람소리, 물소리등을
 도구를 활용했습니다.
 

 

 

 

  

 
제5, 제6연주실은 우리 고전음악을 위해
마련된 연주소로 주로 국악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별도로 설계되었습니다.

 

 

 

 
 7부조와 8부조는 주조정실과
연결되는 중앙방송국 부조정실로
활용되었고  10부조는 주조정실과 연결되는
국제 방송국의  부조정실로   활용되었습니다.
9부조와 13부조는 국제방송국 일반 프로그램의
녹음실로 활용되었고 그밖의 부조는 중앙방송
일반 프로그램의 녹음실로 활용되었습니다.
 
 
 
각 스튜디오별 면적을 보면
 
제1스튜디오 90평 공개방송용,
제 2 스튜기오 25평,  제 3스튜디오 25평,
제 5스튜디오 25평,  제 6스튜디오 25평,  제 7
스튜디오 4평 제 8스튜디오 4평 제 9스튜디오 6평, 
제 10스튜디오 6평제 11스튜디오 12평,  제 12스튜디오
 12평,제 13스튜디오 18평 편집실 13평입니다.
 
 
 
스카이 라운지는 회의실 등
다용도로 사용 되었습니다.
 
 
제가 방송국에 들어 갈때만 해도 정문에
수위가 있어서 정겹게 맞아주곤 했는데  1968년
1.21사태, 삼척. 울진 사건 등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예비군이 창설되고 청원경찰제도가 새로 생겨 처음에는
수위와 청원경찰이같이 근무 하다가  수위는 차츰 차츰 없어졌고 
 소속은 내무부이고 일은 KBS에서 하면서 KBS의
봉급을 받는 낫선 청원경찰로만 메워졌고
숫자도 더 늘어났군요.

 
 
어제 텔레비젼 방송국모습을
올려놓고 보니 옛 라디오방송 연주실도
기록으로 남겨 놓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설로 본 역사의 현장 남산방송국을 썼습니다.
이 터의 내역등 얽힌 얘기가 많지만 오늘은
시설얘기만 썼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