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불타버린 국보 1호 남대문! 600여 년간
이 나라 수도를 지키는 도성의 중심으로 자리
매김하던 남대문이 불타 버렸습니다. 불길을 막는다고 그 이름 숭례문이라 했다지만 그 자신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대못을 박으면서 불타버렸습니다. 연결되는 글은 윤홍로선생님 글 다음에 있습니다.
숭례문 원상복구와 윤홍로님의 생각
(보관 문화 훈장을 받은 문화재 건축전문가)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불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지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숭례문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 대부분의 국민은 숭례문이 원래의 그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고 또 당연히 그렇게 진행되는 줄로 아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숭례문 복원공사장 앞을 지나노라면 유심이 바라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제1의 문화재 건축전문가로 존경받는 윤홍로 선생님으로부터 요즈음의 고충이라면서 한통의 email을 보내 오셨습니다. 우선 윤홍로 선생님 email 내용부터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요즘 세간에는 재작년 (2008년) 2월10일에 있었던 숭례문의 화재복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요즘 기계문명의 영향을 받아 옛날에는 인력으로만 했었던 전통방법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지만 문화재의 보호는 전통을 지속적으로 전승해 나가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달에 착륙하여 달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현대과학문명의 기치라고 생각됩니다만, 전통은 현대문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 즉 옛날 방법을 고수하여 후세에 전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편리하고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현대문명을 너무 좋아 하다가는 전통은 사라지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너무 큽니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가장 훌륭한 곳은 아직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후진인 나라라고 생각하고여러 곳을 보아왔습니다. 조선 초기에 건축하였고 1960연대, 아직 기계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수리하였던 모습은 지금도 "옛 방법대로" 하겠다는 의지 있다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는 장인들도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문화입니다.
윤홍로 선생님 email을 인용했습니다.
2007년 12월 7일 보관 문화훈장을 받으신 대한민국 제일의 문화재 건축가의 걱정이고 보면 숭례문의 복원이 새삼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email에 접하면서 2008년 2월 10일 화재가 나던 그때 그 일을 돌아보고 또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복구가 어떻게 되고 있기에 큰 걱정거리가 되셨을까. 혹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원래의 숭례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 볼 생각입니다.숭례문 복원당국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윤홍로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2008년, 화재가 나던 그때 2월 12일 제가 불로그에 올렸던 글과 함께 이 글을 올립니다.
남대문과 그 주변, 옛날과 오늘의 모습
2008년 2월 12일 올렸던 글
불타버린 국보 1호 남대문! 600여 년간
이 나라 수도를 지키는 도성의 중심으로 자리
매김하던 남대문이 불타 버렸습니다. 불길을 막는다고 그 이름 숭례문이라 했다지만 그 자신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대못을 박으면서 불타버렸습니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그 남대문 ! 지난날의 남대문 모습과 그 주변의 모습 그리고
최근의 남대문 모습을 사진과 글로 엮어 보려 합니다.
숭례문은 서울도성의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있어서
남대문이라 한것은 다 하시는 일입니다.
서울 도성의 정문 숭례문이 준공된 것은
1398년의 일이고 1447년과 1479년에 개수 또는
증축된 이래 오랜 기간 그 형태를 유지 해 왔습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구한말에 찍은 사진으로
그때의 남대문과 그 주변 모습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중앙에 홍예문이 있으며 판문에 철갑을 씌운
두 짝의 문이 달려 있어서 이 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다니고 동쪽과 서쪽에 작은 문을 1개씩 두어 계단을 통해
남대문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남대문과 양편의 성벽이 닿아 있었습니다.
성 줄기가 남산정상에서 남대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뻗어 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08년, 양쪽에
길을 내면서 양쪽의 성 일부가 헐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제가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들고 남산에 신궁을 짓는다면서 남대문에서
남산정상까지의 성을 헐어서 신궁을 오르는
384개의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산의 성은 그때 없어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성을 헐어 쌓은 그 많은 돌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마음 아프고 몸 고단하고 이리 저리 괴로움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돌계단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오르내리는 대부분의 분들은
그 계단이 조선신궁을 오르내리던 계단임을 잘 모르십니다.
또 알으셔도 무심코 오르내리십니다. 남대문이 불타 마음 아픈 터에
그 생각까지 떠올라 괴롭히지만, 그래도 알 것은 알고 가야겠기에
남대문 얘기를 하면서 곁들여 몇 마디 올렸습니다.
남대문의 모습, 그 주변모습,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시면서 우리민족의 얼이 깃든 남대문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때는 더 의미 있게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남대문과 그 주변의 모습을
그때 그시절의 사진을 통해서 봅니다.
구한말의 남대문
일제강점기의 남대문
해 방 당 시의 남 대 문
6.25때의 남대문
화 제 전 의 남 대 문
국보 1호 민족의 얼이 담긴 숭례문 !
하루속히 원래의 모습으로
태어났으면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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