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 올림픽과 임택근 아나운서 방송추억
열 여섯번째로 열린 멜번 올림픽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참여한 이래 최초로 은 매달을 목에 걸었던 올림픽 이었습니다. 최초로 방송 엔지니어가 올림픽 중계방송에 참여하고 장기범, 임택근 두 사람의 아나운서가 파견되어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소련의 항가리 침략등 어수선한 속에서 북반구에서만 열리던 올림픽이 처음으로 남반구 호주에서 1956년 11월22일 부터 12월 8일 까지 열렸습니다. 67개국에서 남자 2813명과 여자 371명이 참여했고 호주국민들의 따뜻한 환대속에 300만명의 관중이 날마다 경기장을 메웠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복싱·역도·레슬링·육상· 사이클·사격·농구에 35명(전원 남자)과 임원 22명이 참가해서 복싱에 은메달과 역도에서 동메달을 받았습니다.
복상 밴텀급 송순천선수의 주먹앞에 당할자가 없었습니다. 준결승은 물론 결승에서도 월등히 앞선 역량을 보여 주었지만 판정에서는 상대방 독일 베레토의 손이 올라가 한국인들은 물론 모든 관중들의 야유를 받았 습니다. K.O승을 걷우지 않으면 판정에서불리한 대우를 받던 약소국의 설움이었습니다. 이때뿐만 아니라 오랜기간 다른 국제 체육경기 에서도 그래왔습니다.
김창희, 집념의 인간승리였습니다. 역도 라이트급에서 종합 370Kg을 들어올려 3위를 한 김창희선수는 1948년 런던대회에서 6위 1952년 핼싱키대회에서 4위, 이번 멜번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매달을 딴 이래 우리나라는 오랜기간 역도에서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50년대까지의 올림픽 중계방송은 라디오 밖에 없었고 그것마저도 중계방송은 어렵게 일우어져 방송상태도 좋을리 없었지만 그런대로 방송국에서는 그 모습을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국민들은 어떤 형태로던지 그때의 경기실황을 중계방송을 통해서 들으신분들이 많습니다. 라디오가 없던시절에 시골학교에서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확성기를 틀어 전교생이 같이 듣도록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의 중계방송 추억
1956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올림픽대회의 중계방송을 맡게되어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더났을때의 일을 두고 두고 나는 잊을수가 없다, 장기범선배와 엔지니어 김성열씨와 함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여의도 모래사장에 미군이 임시로 지어놓은 공항에서 가족들의 뜨거운 전송을 받으며 프로팰라 비행기에 올랐다.
동경에서 여객기로 바꿔단뒤 홍콩을 거쳐 마닐라에 도착 거기서 일박한 후 다시 호주로 떠났다. 드디어 제16회 올림픽 개막식날,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멜버른 스타디움에 들어서자 마자 잘 갖추어진 운동장시설에 저절로 감탄의 소리가 새어나왔다. 제대로 된 울타리와 관중석도 없이 바람만 불면 흙먼지가 자욱이 날리는 서울의 초라한 경기장을 멜버른 경기장과 비교하니 또다시 전쟁이 원망스러웠다.
멜번 올림픽 우리나라 중계방송단 장기범, 임택근 아나운서와 김성열 엔지니어가 IOC 프레스센터 책임자를 만나 촬영한 사진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섯종목에 선수단 57명이 참가해서 두개의 메달을 획득 ,23위의 순위를 기록했다. 복싱의 송순천 선수는 올림픽 경기사상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 씩씩한 대한남아의 기상을 세계에 떨쳤다.
역도의 김창희선수가 출전하기전날엔 한번도 한번도 중계방송 해보지 못한 역도중계에 자신이 없어 밤을 새우며 경기규칙을 공부해야했다. 김성집선생과 역도관계자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외운 벼락치기 상식을 가지고 대담하게 역도경기장에 들어섰던 기억을 떠 올리면 지금도 그때 일이 회상되어 식은땀이 난다.
역도경기는 용상, 인상, 추상의 세 종목에 걸쳐 한종목에 세번씩 도전해서 제일 무거운 중량을 들어올린기록으로 성적을 메기는 기록경기다. 실내경기장을 꽉메운 관중들이 숨을 죽인체 조용히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네 김창희선수차례가왔다.
"가슴에 선명한 태극기 표지를 단 대한의 건아 김창희선수의 등장입니다. 위아래 짙은 감색 유니폼을 입고 널찍한 가죽벨트를 허리에 메고 있습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바벨 앞으로 한발 한발 들어서고 있는 대한의 아들, 용상 1차시기를 하려는 순간입니다."
고요한 실내경기장에 왕방울 단듯 크게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 얼마나 목소리가 컸던지 박수속에 김선수의 일차시기가 끝나자 본부석으로부터 조용히 해 달라는 부탁겸 주의 쪽지까지 받을정도였다.
나는 한 옥타브 낮춰 방송하려 했지만 우리 선수가 등장 할때마다 자연히 커지는 목소리를 어쩌지 못했다. 드디어 김창희선수가 종합 3위를 기록하여 동메달을 획득하고 멜버른 하늘높이 또 하나의 태극기를 계양했다.
떠나는 방송단을 환영차 나온 방송간부들 왼쫍부터 윤갈구, 유병은, 송영호, 이규일님, 아래는 이 대회에서4위를 한 이창훈선수와 임택근 아나운서
방우회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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