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미군 추럭에 실린 이동방송차 사진
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된 6.25 !
방송국이라고는 부산과 대구만이 남아 있던시절,
세상은 수시로 바뀌고 싸움터의 전선은 자꾸만 이동되어
일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던 상황속에서도 소식은 끊겨 모든것이
궁금하기만 하던 국민들에게 그나마라도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며 소식을
전해주려던 방송국이 해상 이동방송을 포함한 이동방송국이습니다.
서울이 맨처음 수복되었을때도 이곳에 제일먼저 나타나
소식을 전한것은 미군추럭에 실린 이동 방송국이었고
평양을 탈환 했을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위의 이동방송차는 6.25전시 상황에서
사용되던 추럭에 방송시설을 싫고 이동하면서
방송하던 차로 전시 중앙방송국장 노창성님의 둘쩨
따님이신 노라노 여사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6.25때 추럭에 방송국을 싫고 다니면서
방송을 하던 전담기구로 KBS외에 GHQ라는
유앤군 극동군 사령부방송이 있었습니다. 이 방송국은
한대의 자동차에 스튜디오와 조정기계를 싫고, 다른 자동차에는
송신기를 싫고, 또 다른 자동차에 발전기를 싫어 방송국을
형성하고 이 석대의 자동차가 움직이면 하나의
방송국이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면세점이었던 동화백화점
부근에 이 극동군 사령부 방송 본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광화문 지하철역 6번출구에 인근하는 곳으로
사진은 전시 KBS중앙 방송국장 노창성님이 GHQ를
방문한 사진으로 보이지만 주변그림으로 보아서
광화문의 본부는 아닌듯 합니다.
1952년 7월 31일 차음으로 부산에 도착한
이동방송차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추럭의 이동방송차보다 조금 더 낳아진
이동방송차가 1952년 7월 31일 들어왔습니다.
경성방송국 개국때부터 일해오신 신경석님이 이동방송차의
책임을 맡으셨고 뒷날 이동방송차가 속초에 머무르면서
신경석님은 속초방송국장이 되셨습니다.
이때는 KBS라는 콜싸인은
잘 쓰이지 않을때이고 HL이 앞에 붙은
각 방송국 명칭을 불렀읍니다, 서울방송의 경우
HLKA이자만 영어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로부터
핼 케이라고 불리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옛날의 방송얘기를 쓰면서 밑기지 않는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깁니다. 추럭에 실린 방송국
그나마도 미군추럭에 실린 방송국으로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방송하던 잿더미위에서의 방송을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흐른
오늘과 비교하기조차 어렵지만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음을
실감하면서 그동안 힘을 기울여주신 국민들의
노고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곤 합니다.
다른 내용은 6.25와 방송편에 내용이 있어
생락합니다. 오늘 글은 노라노여사님이 보내주신 사진에
박경환 원로방송인의 말씀을 토대로 썼습니다.
방우회 춘하추동방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