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킨 沈友燮방송과장

이장춘 2009. 8. 26. 18:40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킨 沈友燮방송과장

 

 

이 글은 2009년 8월호

KBS 사우회보에 실린내용입니다,

 

 

 

 

 원문 다시 보기

 

일제강점기 조선어를 전담 방송하던

제2방송과는 조선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공공기관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던 조선어를 방송국

제2 방송과 에서만은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었다.

제2방송과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그것을

긍지로 삼고 덕망 있던 저명인사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 가운데 한분이 세 번째로

 제2 방송과장이 된 심우섭이다. 심우섭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경성방송국의 우리말

전담방송인 제2방송과장을 지내면서 우리말을

 지키는데 힘을 기울였고 제2방송과가 제 2방송부로

 승격되면서 제2방송 뉴스에 일본말을 섞으라는

총독부의 지시를  거절하면서 방송국을

떠난 사람이다.

 

심우섭은 방송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중견 언론인으로 또는 문학가로 널리 알려졌고

상록수로 널리 알려진 심훈의 큰형님이며 최초의

동요 반달로 널리 알려진 윤극영의 고종사

형님이기도 했다.  여운형, 최남선, 노창성

(최초의 방송인)등과도 계동, 이웃에

 살면서 친분이 두터웠다.

 

 심우섭이 방송과장을 할 때는

일제의 교육을 받은 아나운서들이 우리말에

 서투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심우섭 에게는

방송에서 잘못된 문법이나 발음은

 용납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말을 바르게 써야 조선인들이 바른말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물론,

집에서나, 술자리에서나 늘 방송을 들으면서 잘못된

방송을 할 때는 전화를 걸어 바로 잡아 주었다.

 

심우섭 과장을 오랫동안

 모셨던 이혜구 선생님은(101세 생존)

 그의 저서 문채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심 선생님의 한자 읽기에 대하여

 하도 심하게 공격하였기 때문에 그 후

아나운서들은 자전을 방패로 방어했다. 하루는

 서순원 아나운서가 “팽대를 하사 하셨다” 는 뉴스를

방송하고 나서 자기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니나 다를 까.

과장이 얼굴은 안보이지만 전화 틀 속에서 “너 지금

그 팽대란 것이 무엇이냐?” 질문 반

꾸지람 반조로 물었다.

 

아나운서는 태연하게 대답하여 왈

“상처를 감는 헝겊 말입니다.”  “아! 붕대 말이로구나!

그게 붕대지 팽대라면 알 수 있나?” 서 아나운서도 지지 않고

 항거 하였다. “아닙니다, 확실히 팽대입니다” “그건 붕대라고 해야 해”

 아나운서는 얼핏 자전을 방패로 내세우고 그 밑에 머리를 감추었다.

 “자전에는 분명히 팽대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튿날 그것이

 화제가 되어 鏰 자를 자전에서 찾아보았더니  과연

팽이라고 쓰여 있어 누가 옳고 그른지 몰라

모두 서로 눈만 바라보았다.

 

심우섭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제2방송과가

제2방송부로 승격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제2방송 뉴스에 일본어를 섞으라는

 총독부의 지시가 내려왔다.

 

심우섭 과장은 총독부에 가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종전대로 우리말만 방송 하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제2방송부장을 해보지도 못한 체

방송국을 떠났다.

 

해방 될 때까지 우리방송인들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해왔다.

해방되던 날 우리 방송인들은 그 어렵던 속에서도

우리말을 흐트러짐 없이 지켜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방우회의 지도를 받아 글을 올리는 춘하추동방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