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옥의 동영상 한편 올렸습니다. 동영상을 계속 보시려면 음악을 끄셔요,
노래 한강! 6.25 한국전쟁으로 태어난 최병호 작사, 작곡, 한강! 대한민국 사람들이면 이 노래가 모두 귀에 익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 최병호님은 문학인도 음악가도 아닌 뜻밖에도 방송국에서 근무하던 방송 기술자로 6.25때 해상 이동방송에도 참여하고, 대구방송국 10Kw출력증강에도 앞장섰습니다. 한강을 건너 남으로, 남으로 밀리면서 시상과 음률이 머리에 스쳐갔고 그것을 입으로 흥얼거리며 오선지에 옮긴 것이 한강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노래 한강과 최병호 그리고 심연옥
최병호! 그분이 필자의 방송국선배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주 가까이 계시는 그분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원로방송인들의 모임 방우회에서도 만나지만 그분이 그분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방우회 선배님들도 그분이 그 유명한 한강 노래를 써서 작곡한 주인공임을 잘 모르시는가. 봅니다. 평소에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특유한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KBS사우회 일을 하면서 어린시절 대구방송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KBS사우회 서병주 회장으로부터 최병호 선배가 6.25전쟁 중 대구방송국에서 한강이라는 시를 쓰고 곡을 부쳐 대구에서 노래를 불러 화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최병호선배가 바로 곁에 계시는 그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3년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용실선배로부터 한강을 작사, 작곡한 최병호선배를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고. 박경환 선배로부터 그분이 방우회 회원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병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 하시기를 꺼려하는 듯했으나 얘기가 나오니 친절히 얘기 해 주셨습니다.
피난길에 그때의 심정을 글로 옮기고 곡을 붙였어요. 그때 한참 이름을 날리던 가수이자 레코드를 제작하던 분이 찾아와 그 곡을 노래로 부르고 레코드에 넣어 시판했으면 한다고 허락 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첫 레코드가 나왔는데 그 가수가 부른 노래가 내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아요. 그러던 중 500W로 방송하던 대구방송국을 10Kw로 증설 하기로 해서 본인이 공사 건축책임을 맡았어요. 1952년 가을이었습니다.
이때 만난가수가 대구 문화극장에 기거하면서 공연활동을 하던 심연옥 이었어요. 그때 심연옥의 인기가 대단했고 심연옥의 음색이나 스타일이 그 곡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대구방송국과 협조해서 노래를 충분히 연습하고 대구 문화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놀라운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이로부터 노래 한강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20대 중반의 일이었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만나서 얘기 하지요. 여기까지가 전화로 최병호 선배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최병호님은 2011년 1월 1일 발행 문공회보 통권 50호 특집호에서 내가 작사 작곡한 "한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음 글을 올리셨습니다. 전문을 옮깁니다.
지난날 서을 근교에 있는 뚝섬 유원지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넓은 백사장에 수양버들, 버드나무등 많은 수목으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수영인파와 노릿배 타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혹 땟목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볼때면 낭만적인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초유의 비극이 시작되었고 1951년 1. 4후퇴 때는 아름다운 서울 정든 서울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끊겼기 때문에 결빙된 마포강을 건너는 피난행열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서울 방송국 소속 공무원으로서 한강교 폭파전에 정부에서 마련한 마지막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방송국은 지방 방송국 기능으로 천도후 중앙방송국 역할을 하게 되었고 저는 방송국 뒷 마당에 판자집을 마련하여 피난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고 그 와중에 추억속의 아름다운 서울을 자주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무렵 1952년 제가 직접 작사 작곡한 "한강" 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피난온 방송국 전속 가수들에게 "한강"곡을 주어 방송 출연을 시켜 보았지만 가수들이 그 곡을 적절히 소화하지 못하여 고민 하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대구 문화극장에서 방송 실연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심연옥(당시 가협 가수 문화극장에 기거) 을 만나 방송 실연 공연에 출연시키자 (1953년) 예상했던 대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반주는 공군 경음악단)그때부터 한강은 심연옥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중가요 한강은 발표된지 57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 해주고 애창 해 주셔서 저로서는 감사 할 따름입니다. "한강"은 요즈음에도 공중파로 늘 방송되며 노래방에서도 많이 애창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강곡을 담은 CD, TAPE, DVD등이 많이 발매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 한강을 사랑 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과 관계기관 담당자분들께 매우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3월 23일부터 5월 23일가지 서울시 청계천 문화관 전시실에서 개최된 "서울을 노래하다. 서울 대중가요 기획전" 은 나뿐만 아니라 서울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시회를 개최 해 주신 관계자들에게 충심으로 사의를 표해 마지 않습니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심연옥 아내의 노래, 김백희 안해의 노래, K.B.C (한국방송문화협회) http://blog.daum.net/jc21th/17781368
백년설(이창민) 육성으로 듣는 노래 나그네 설움(설음)에 얽힌 사연 http://blog.daum.net/jc21th/1778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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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가수 백년설과 고향소식 http://blog.daum.net/jc21th/17780667
노래 한강과 최병호, 심연옥 http://blog.daum.net/jc21th/17780130
심연옥님이 kbs경음아단의 반주애 맞추어 열창하는 모습입니다. 백년설님과 부부가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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