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방부에서 온 박 대위입니다,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괴뢰군이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 일을
즉시 방송 해 주셔야 합니다. 한 시도 지체 할 수 없습니다.”
하며 박 대위라는 사람은 나에게 종이쪽지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공산 괴뢰군이 공격을 개시 했다는 것과
그러나 국군은 건재 하니까 국민은 동요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동란이 시작되던 날
새벽 5시경 서울중앙방송국의 당직아나운서였던
나는 방송국 수위가 숙직실로 달려와 깨우는
바람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6.25가 일어난것을 처음 장송한
그때의 아나운서 위진록님의 글이었습니다.
위진록님은 VUNC에 재직하시다가 1972년
VUNC가 방송을 그만둔 뒤에도 미국에
거주하시는 KBS사우회 회원입니다.
동영상, 6.25 첫 방송뉴스와 전쟁 상황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담당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그 내용을 방송 할 수가 없어 상부에 보고하고
당국에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침 7시경이었습니다.
라디오가 적었던 시절이라 그 뉴스를
접한 사람이 많지 않았으려니와 3.8선 부근에서
총격전은 흔히 있었던 일이라 이 소식에 놀란 시민들은
많지를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요일이었고 각자
할 일을 하는 등 평소와 별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상공에 소련제 북한 야크기가 나르고
또 하루, 이틀 더 지나면서 공산군은 서울에 도달했습니다.
27일 저녁에는 북한의 탱크가 서울 깊숙이 들어왔고 자정이 지나면서
총포소리는 서울 도심 정동 방송국까지 들려 왔습니다.
국방부 지휘에 따라 군 트럭에 비상 방송 기기를 싫고
한강 방송국을 떠난 것은 2시가 좀 넘어서였습니다. 한강이 막혀
트럭은 길거리에 버려야했고 맨손으로 한강을 건너던 방송요원들은
한강을 건너면서 천지를 진동하는 한강 폭파 음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대전방송국과 대구방송국을 거쳐
부산에 이르고 제주에 비상 방송국을 배에 송신기를 싫고,
또 트럭에 송신기를 싫고 비송방송을 하면서 잠시 서울에 와서
파괴된 시설을 복구해서 방송을 한 적도 있지만 결국 1. 4
후퇴로 밀려 부산에서 3년간을 지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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