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장도형의 방송 역사박물관
12살의 나이로 누나의 악기점에서
라디오를 취급한 인연으로 라디오제작
보급은 물론 송신기, 콘솔, 녹음기, 스트레오
음향기기 등을 국산화 시키는데 앞장서 온 올해
84세 (2009년 현재)의 장 도형! 지상 4층, 지하 1층의
주택에는 1920년대 방송을 시작 할 때부터 사용해온
각종 방송관련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다.
부산 피난시절 부산 동아대학에
다니다가 1955년 KBS방송기술자 선발
시험에 합격, 연희송신소 근무를 시작해서
1965년 방송국 문을 나설 때까지 그곳 한곳에서
근무했다. 왜 방송국을 그만 두었느냐?는
물음에 긴 얘기가 뒤 따른다.
낮에는 방송국 근무하고 밤에는
라디오나 송신기 제작 등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보수가
봉급의 열배가 넘고 또 일이 계속 밀려
들어오니 방송국에서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KBS는
물론 민영방송의 지역 확장이 이루어
지면서 장도형이 개발한 국산 송신기를
비롯해서 각종 방송장비는 수요를
따를 수가 없었다.
70세가 되기 전까지 하루에
2시간 이상 잠을 자본적이 없다는
장도형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국산화된
방송 장비들은 우리나라 도처에 설치되었다.
우리나라에 설치된라디오 송신기 32대를 제작
보급 하면서 그빆에도 각종장비를 제작
보급했다니 잠시도 손 놓을 수
없는 생활을 해 왔다.
덕분에 수중에 돈이 들어왔고
이 돈으로 史料가 될 만한 방송관련
골동품을 사들였다. 가정에서 쓰다 버린
물건은 물론 각 대학 연구소등에서 못 쓰게
되어 골동품상에 나온 물건들을 원상복구해서
보관해 왔다. 오랜 세월 틈만 있으면 모아온
골동품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물건들이 되었다.
.
방송박물관 건립을 시도
했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방송 80년 역사위에 아직 이렇다 할 방송
박물관을 갖추지 못한 오늘! 장도형의 꿈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방송의 산 역사 산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비록 정리 되지 않은 방송관련
골동품이기는 하지만 몇 장의 사진에 담아서
장도형님의 얘기와 함께 엮어 올린다.
오늘 사진 중에서 잘 처리된 화면은
방우회 노익중님께서 노력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 출시된 14인치 RCA의
이 텔리비젼 모델은 1956년 HLKZ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텔리비젼을 시작 할때 우리나라에 시판되었다.
쌀 100가마니가 넘던 비싼 가격이었고 수입도 어려운 때라
국내에는 모두 3,000대정도만 보급되었다.
JODK가 시험방송을 하던 때부터
사용되던 스피카다. 1924년 12월 9일 시험방송
기념사진을 찍을때도 이 스피카가 배경에 놓여있음을 보고
JODK지휘실 (주조정실)에도 이 스피가는 있었다.
1920년대부터 사용되던 광석
라디오로부터 트란지스타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종류의 라디오, 마이크,
스피카, 안테나, 1940년대의 미국 14인치
RCA TV로부터 국산TV수상기 1호 등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수 많은 골동품이 쌓여
있다. 설명을 듣자니 끝이없다.
가로, 세로 80Cm 또는 60Cm되는
나무로 된 고급가구처럼 보이는 라디오가
있어서 값은 얼마나 갔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집 한채 값이었는데 집도 나름이라 쌀로 계산
한다면 1920년대에 미국에서 나온 비싼
라디오는쌀 150가마니를 주어야
살 수 있었단다.
조선 방송협회에서 보급형
라디오를 만들어 보급했는데 그것도
쌀 열가마니는 주어야 샀으니 모두가 어렵던
그시절에 라디오를 사는것은 돈 있는
사람도 큰 마음을 써야 했다고 한다.
1930년대에 조선방송협회가
보급한보급형 라디오를 따로 모아
보았다. 동행한 방우회 노익중님의 얘기가
골동품 한점식을 입체형으로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소와 조명이 있어야
한다기에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촬영이
가능한대로 촬영했다.
보급형 라디오는 형에따라 다소의
크기 차이는 있지만 가로 약 30Cm 높이 23Cm
정도이고 외장이 목재로 잘 다듬어져 구급스러워
보입니다. 그때는 워낙 비싼 라디오라 훌륭한
외장으로 비산물건임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도형 박물관 동영상으로 보기
봉영상 보시기 전에 음향을 꺼 주셔요.
보급형1호 전면사진 : 일본방송협회마크의 방송국형 123호수신기
보급형1호 뒷면사진 : 일치
보급형2호 전면사진 : 보급형3호
보급형3호 전면사진 : 보급형2호
보급형4,5호 : 보급형1호
┗
최초의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제559-2호)
수많은 방송장비 이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글성라디오가
있다. 1959년 11월 15일에 금성사에서 제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로, 5개의 진공관과
5인치 스피커를 장착했다. 방송 주파수 선택은 가변 컨덴서를
사용하는 다이알 조정 방식으로, 단파대를 포함한 2밴드 시스템을
통해 지역방송 및 해외방송도 청취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으며
최신 기술인 수퍼헤테로다인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의
다른 주파수를 일정한 감도(sensitivity)를 갖게 했다.
전자회로의 설계와 제품 생산의 기술 축적 등
전자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산업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라디오를 최초로 만들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김해수(金海洙, 1923-2005). 김해수에게 라디오는 운명과도
같았다. 그는 14살에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여 이불 속에 숨어서 라디오
기술을 배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관리들도 탐내던 탁월한
엔지니어였고, 해방 직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에 불을 밝히며 ‘전기 의사’라
불리던 고향마을 스타였다.
금성사(현 LG전자) 1회 공채시험에
수석합격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TV 등을
설계하고 만든 김해수는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부품
국산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작은
나라에서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기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의 초석을 닦기 위한 토종 엔지니어의 자존심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글을 남겨주신 분들
유카리나
2013.06.01 15:53
이런 귀한 자료들이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려면, 장도형 선생님같은 분들이 기획하고, 설계하고 하실 수 있으실 때 이루어지면 더 좋겠군요.
평생을 모으고, 함께 움직이시고, 애지중지해오신 귀한 가족들이고, 관계되는 분야에서 보면 대단한 자산이요 보물들인데.............
이장춘
2013.06.01 16:18
그리 하셔야 되는데
잘 진척이 안되네요.
장성생님이 올해 88이신데
아직도 건강 하시만
세월은 자구만 흐릅니다.
장선생님 하드와 춘하추동방송의
솦트웨어가 만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얘기를
하신분도 계시지만 모든것이
생각대로 되는것이 아닌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2013.06.01 16:53
차단 |삭제 |신고
그러게요. 안타깝습니다.
YSL
2013.06.05 03:57
답글 |차단 |삭제 |신고
저는 연세대 전기전자과 이용석교수 입니다. 연세대내에 학교 박물관이 있는데 알아보니 이 수집품들을 학교 박물관에 전시 하였으면 합니다
017-236-2872로 연락 바랍니다
2013.06.05 04:04
그것은 사정이 어려울것 같습니다.
kimkd47
2013.06.05 06:18
참으로 잘봤읍니다...울카페에도 금호박물관장님댁에 신회장님댁에도 나름되로 엄청많이 구색이 갖춰있읍니다...
2013.06.05 12:51
그러세요.
그곳을 가보아야 되겠는데
어떻게 가는지요.
http://blog.daum.net/ds5nlz
맞는지요.
bigbrother
2013.06.05 07:20
올드뉴 라디오 카페 한번 방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cafe.daum.net/OLDNEWRADIO?t__nil_cafemy=item
2013.06.05 12:56
반갑습니다.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Love
2013.06.05 11:58
감사 합니다.
2013.06.05 12:49
또 뵙겠습니다.
cjm
2013.07.19 19:55
특히 강점기 당시 보급형라디오에 대한 자료는 어디서도 찿아볼 곳이 없습니다. 현물전시와 더불어 당시의 문화적 기술적 배경 등도 부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동기 라디오 역사부터가 단절되어 있어 매우 답답하고 그나마 알고 계신분들이 지금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사장될 위기처럼 보입니다 . 참고로 저도 인터넷라디오박물관을 꾸미고자하는데 보급형, 지정, 특선라디오는 입수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해서 보급형3호를 일본에서 구입한 것 외에는 협회마크가 없는 동형모델들을 대안으로 입수해 놓고 있습니다.
2013.07.19 20:01
수고 많으십니다.
장도형 선생님 연세 88세신데
오래전부ㅇ터 박물관 설립준비를 하셨는데
아직 뜻이 이루어지시지 않았습니다.
결실을 밎는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2013.07.21 11:23
개인적 견해입니다만 박물관의 특성은 상징성이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견주어 보면 실제 전시대상이 되는 품목은 그리 많치 않습니다. 예로써 강점기 당시 라디오의 경우 "조선방송협회" 마크가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데 이유는 동일모델이나 기타 모델들은 아직도 일본에 엄청난 물량이 실존하며
그들은 자기들 것이기에 사료로써 잘 정돈해 두고 있어 우리가 특히 더 터치할 부분이 아니며 대다수의 미국모델들 역시 같은 상황입니다.
반면 비록 일본제품이긴 하였지만 "조선"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라디오는 분명 우리 곁에 존재했던 실물이기에 그들 보다는 우리가 더 깊게 논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고 강점기, 이후 50년대를 지나 금성라디오, 그리곤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라디오 속에 숨겨진 애환과 기술적 진통 등을 보여 주는 것이 박물관이 수행해야할 역할이라 생각해 볼 때 분명 박물관은 수량 보다는 상징성이 우선이란 생각입니다.
개장에 어려움이 있으시기에 대안으로 말씀드려보며 인터넷박물관 역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다만 사료는 실물자체 보다는 정확한 해석이 매우 중요하기에 기회가 되시면 강점기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장선생님으로부터 자세한 증언을 받아두어 이후 실물과 함께 보존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윗사진에서처럼 주석이 잘못 부기되지 않을 듯 보입니다.
2013.07.21 11:49
동감입니다.
장도형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말씀하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실물은 유병은 선생님이 모으셨는데
유병은 선생님이 세상을 뜨시기전에
체계적인 준비를 갖추어
kbs방송박물관 준비위원회에 넘겼습니다.
유병은선생님은 청원방물관을 운영하셨지요.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관련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kbs가 박물관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 엄청 어려운 상황에 있어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kbs 방송박물관이 문을 여는날 말씀하시는 사항이 실현되리라 봅니다.
2013.07.21 13:18
그날이 빨리오기를 기원합니다.
공공기관에서는 실물전시나 개황 등을 큰틀에서 유지하고
저같은 개인들은 나름대로의 부분에 특화하여
전체적으로 우리 방송역사에 대한 사료풀을 구축해 놓는다면
이후 세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입니다.
방송사연구에 특히 공헌하신 바가 매우 크신 이장춘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3.07.21 15:08
쿠로자와진
2013.10.27 20:42
대단하십니다!!
2013.10.27 23:28
조선영
2016.11.22 15:31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화도 조광운 박사님의 손녀 조선영입니다. 현재는 학교법인 광운학원 상임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포스팅들을 읽고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할아버지께서는 기술자 양성과 교육을 통해 국민의 힘을 키우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의 포스팅에서 단순히 기술만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와 의지를 볼수 있어서 감명 깊었습니다.
한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면 찾아뵙고 제가 혹시 도울일이 있는지, 함께 해낼 수 있는일들이 있는지 말씀 듣고 싶습니다.
010-9110-8975.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김무생 KimMooSaeng
2017.09.17 01:24
★먼저 회장님으로 활동하신 대선배님
전 한영섭 회장님께 수고 많이 하셨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한국 방송인 동우회" 의 새 회장님으로 선출되신
대선배님 장도영 회장님께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문자 그대로 "보릿고개"보다 더 어려웠던 "상보릿고개"라고까지 표현했던 50년대
대한민국 방송 주역의 한 분으로서 이 나라의 방송의 터를 갈고 닦아오셨던 지난 세월에도
방송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진지한 박수를 올려 드립니다.
여기에 대선배님 이장춘이사님께서 이렇게 "한국 방송인 동우회"의 소식을 전하시는 것은
단순한 공지를 위한 공지가 아니라
이런 소식을 통해서 방송의 대선배님들의 그 발자취를 되새겨 보고,
그 분들이 물려주신 방송의 장인정신을 본받아서
후배들은
현재의 우리의 이 방송을 견고하고 알찬 반석 위에 올려 놓는 일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신호탄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방송역사의 산실을 이어가는 대동맥의
역할을 훌륭히 해 낼 "한국 방송인 동우회"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회원 여러분께도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한영섭 전 회장님께 수고 많이 하셨다는 말씀을 올려 드리면서
신임 장도형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이 소식을 전해주신 이장춘 이사님 고맙습니다.
김무생 아나운서 드림.
박광희
신임 장도형 회장님의 경륜을 살펴보니 방송 사료에 대한 열정은 이장춘씨와 대동소이로군요. 두분 다
우리 방송사의 귀중한 보배로 소이다!
박만식
2017.09.17 02:51
이창춘 선생님.
장도형 선생님의 방송장비내용 박물관 정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9.17 03:49
이 새벽에 멀리서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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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송소 연희의 그때 그 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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