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KBS 여로 작가, 연출자 이남섭님 (동영상 있음)

이장춘 2009. 7. 25. 05:50

 

 

   

 예리한 방송 감각의 선구자. 고 이남섭님
 
 
여로  동영상 보기
 
 

 

 

 
이남섭님은 여로의 작가이자
연출자이고 주제곡 작사자였습니다.  

 

 
오늘의 글은 오랜기간 이남섭님과 같이
KBS PD로 일하셨던 김연진님이 쓰신 글입니다.
김연진님은 1965년 KBS-TV, PD로 들어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 파도,  


뚝배기등  많은 인기드라마를 연출하셨고

예능국장등을 지내신후 퇴직후에는 대학 강단에서

방송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 하십니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40년사에
길이 기억될 프로듀서이며 작가인 이남섭

선배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65년 5월로 그가

신명나게 실화극장을 연출하던 때였다.

 
신참 프로듀서인 나의 인사를 한번 치켜 뜨고
바라보곤 곧 자신의 콘티 작업에 들어가는 첫 느낌이
 매우 쌀쌀맞게 느껴졌다. 그렇다.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

으리라.

 

KBS공채 텔레비전 프로듀서와 탤런트(KBS1기 김난영)

부부1호라는 자부심과 모든 프로듀서가 선망하는 "실화극장"을

연출 하는데 크나큰 프라이드가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실상 당시 「실화극장」은 정보부(현 국정원)가
 기획과 촬영,섭외, 연기자 캐스팅은 물론 제작비 (연출
진행비 포함) 까지 지원했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오직 연출에만
전념하면 그만인 그야말로 프로듀서가 왕인 프로그램이었다.
그가 「돌무지」(김동현 작) 를 연출할 때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김승호씨도 그의 연출 의도엔 
이의조차 달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호랑이같은 그도 아내인 김난영씨
앞에서는 약할 수 밖에 없었다. 팔등신 몸매에다
연기에 몰입하랴 아내와 어머니 역할까지 하기엔 인내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가 프랑스 연수를
다녀온 후 그들 부부는 웬지 거리감을 느꼈고 
끝내 별거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산 텔레비전 시절
 A 스튜디오 입구에 자리잡고 있던 연예계 사무실에
당시 탤런트 부부인 정혜선 (본명 정영자), 박병호씨가
한살 된 딸을 데리고 대본을 찾으러 왔다가 그만 아기가
 이남섭 프로듀서의 대본에 오줌을 싼 일이 있었다.
 
불같은 성격의 이 선배가 언성을 높이자
 정혜선이 울고 곁에 있던 박병호씨까지 가세해  심한
언쟁이 벌어졌는데, 때마침 김난영이 그 광경을 보고 초록은
동생이라고 남편을 가로막고 싸우는 장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이남섭, 김난영 부부는 다시 화합의 부부가 됐고
「돌무지」이후 방송된 「제3지대」에선 정혜선이
구월서방 (여간첩) 주인공으로 픽업되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나와의 직접적인 인연은 1969년
 일일연속극 「신부일년생」(임희재 작)을 이남섭
프로듀서가 연출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조직사회(공무원 신분) 에
대한 염증으로 인해 끝내는 그의 두 번째 일일극인「이웃사촌」을
 거부하고 프리랜서 선언을 하는 바람에 나에겐 행운(?)이라고 할까.
초년병이 기라성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일일극을 연출하게
되는 바통터치(baton.touch)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선배는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정홍보용으로 신설된
 일일홈드라마 「10분쇼」(송해, 장욱제, 김난영 출연) 를
직접 쓰고 직접 연출했다.   여기에 자신을 얻은 그는 1972년
 4월부터 이해 말까지 시청률 70%(KBS)라는 공전의
히트작품인 「여로」를 탄생시킨다.
 
「여로」의 주인공에 장욱제, 태현실을
 과감히 캐스팅했는데 바보 역 "영구"를 리얼하게
소화한 영구는 이 한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라섰다.
이후 1974년 일일극 「그리워」,1977년 「유럽특급」등을
 작 연출하는 정열을 과시했다. 그는 지나치게 검소하다 할까?
하지만 1970년대 초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피아트>를
구입해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호기로운 면도 있었다.
 
1980년 12월 1일, 제5공화국에 의해

단행된

 

방송통폐합으로 얼어붙은 현실에 그도

순응하기로  했는지, 아내 김난영이 드라마「영산강」

(양근승 작) 촬영을 위해 광주로 갈 때마다 옆에

동행했고 종일 분장실과 C스튜디오를 지켰다.

 
당시 예능국장이었던 나는
그와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형,
요새 너무 잉꼬부부 같애" "오 난영이, 김국장도
내 나이 돼 보라고, 허허허" 천진 난만하게 웃던 선배의 모습.
그렇게도 열심히 쓰고 연출했던 이남섭 선배, 아침드라마 연습이
 새벽 6시라 망우리 집에서 오려면 4시에 일어나지만 꼭 5~10분씩
늦어 모닝커피를 사야 했던 탤런트 김난영, 이들은 그 아까운
돈을 헛되이 낭비 않고 충청도 온양에 있는
 과수원을 사들였다.
 
주말이면 그 곳에 내려가 벌레를 잡고
거름과 물을 주며 흙내음을 한껏 맡았던 잉꼬부부,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김난영의 죽음은 그를
헤어날 수 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몰고 갔다.
 
위패 앞에서 내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울던 그. 너무나 핼쑥한   몰골에   안쓰러움이 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이남섭 선배 역시그렇게 알뜰히 사랑하던
님의 곁으로 갔다. 세상을 하직하고서도 부부의 인연은 영원히 
간직하길 원했는지, 그들은 평소에 아끼고 보살폈던 과수원 땅에
나란히묻혔다. 슬하에 1남 2녀(둘째 딸 이미정님이 블로그 방명록에

남긴글 참조)를 둔 채... 생전의

그의 딸 '미경'이

엄마를 닮아 

탤런트로 선발되어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아직까지 

행방불명인 것이 가슴 아프다.

 

 

 이남섭 선배 하면 비상한 두뇌와
예리한 감각이 생각되면서 아내 김난영이
오버랩되는 것은 부부관계를 떠나 각기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선구자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는 작품(작가), 연출(프로듀서) , 연기(탤런트),
이 세 분야 가 조화를 잘 이루어야 멋진 예술작품으로
탄생한다는 신념 하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트리오(trio)의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 연출자로서의
이남섭 선배는 비록 20년 남짓 활동했으나
한국방송사에 길이 남을 큰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 50년사) <작고작가 회고> 일전 협회보에
문공위 이계진 의원이 작품「여로」를 구하려 했으나 끝내
구하지 못해 실망했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PC나 CD에
저장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여건이 그러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여담이지만 「여로」라기에 旅路인줄
알았더니 女路라 했다. <여자의 길>이 하도 흔하니
그랬겠지. 자꾸 들으니 그럴 법도 했다.

 

1970년 2월 1일자 선데이 서울에 계재된

이남섭님에 관한 글이 있어 뒷면에 올렸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3063


 

한국방송사상 최고의 인기 드라마 일일 연속극 여로

http://blog.daum.net/jc21th/17780143

 

여로의 주인공 장욱제 연기생활과 그의 삶

http://blog.daum.net/jc21th/17780147

 

동영상. 여로 주인공 태현실이 말하는 여로와 삶의 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149

 

최고 인기드라마 여로의 주제가 / 이미자

http://blog.daum.net/jc21th/17780730

 

 

여로 종합편, 장욱제(영구), 태현실(분이), 작가 이남섭, 주제곡 이미자

http://blog.daum.net/jc21th/17780146

 

드라마 여로주인공 장욱제(영구)의 실재 모습과 연기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146

 

 

김연진님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아래 영문저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999

 

 

 

 

 

 

선데이서울 1970년 2월 1일 영화에 진출하는 TV 연출가 '이남섭'씨

 

('김난영'씨의 남편) 직접 쓴 작품을 감독하며…

10년안으로 국제영화제 대상(大賞)을 다짐 『10년안으로

「베니스」,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

 

 

연출가 이남섭씨(李南燮·36)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펼치는 포부. 직접 TV「드라머」를 쓰고 연출하던 솜씨로 영화에서도

 각본·감독 겸업의 양수겹장이다. TV연출가가 영화감독으로 진출한 예는

『미워도 다시한번』의 정소영(鄭素影)감독에 이어 두번째다. 공교롭게도 이남섭·

정소영 두사람은 KBS-TV에서 4년 가까이 함께 일한 동료PD, 연출과 집필을

겸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있다. 이남섭씨의 처녀작품이 될 영화는

구정 「프로」로 개봉될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다. KBS-TV의

인기연속극으로 역시 李씨자신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던

『녹슬은 단검(短劍)』이 원작이다.

 

1월25일 TV방영(放映)이 끝나기가 바쁘게

영화촬영도 끝냈으니까 TV극의 영화화(映畵化)에도

 초 「스피드」의 기록을 세운 셈이다. 촬영기간이 불과 8일이었다는 점도

 李씨의 일솜씨를 자랑하는게 된다. 그의 TV이력은 KBS-TV의 개국(61년 12월)과

함께 시작됐으니까 이미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가 꼽는 대표작품은

『배신자(背信者)』 『사직골 구(具)서방』 『잡았네요』 『녹슬은 단검(短劍)』.

이 4편중 3편이 영화가 됐지만 연속극으로서도 모두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잡았네요』이후의 『녹슬은..』같은 「코미디」

극은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면서 TV가(街)에

선풍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이른바 예술 작품으로 「데뷔」못하는게 좀 서운합니다.

그러나 문제작을 들고 나간다는 결의보다는 우선 흥행부터 성공시켜놓고 볼

생각이죠. 영화계 안에서의 기반부터 닦아놓고 그 다음에 하고싶은 영화를 만들 참입

니다』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는 「코믹·터치」의 사극(史劇)이지만 TV 「드라머」에서

 불가능했던 분야를 개혁, 완전히 새로운 영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메거폰」을 잡아본

뒤의 소감은 『영화가 TV보다 수월하다』는 것. 『TV는 녹화하는 순간 「카메라」 조명, 편집등

기술적인 문제까지 동시에 해야하는 까다로움과 시간에 쫓기는 피로감이 있지만 영화는

기술적 여건의 제한이 적어 훨씬 여유를 느꼈다』한다.

 

서울大 불문과(佛文科)를 나온 李씨가 영화감독에 뜻을 둔 건

대학 2학년 때부터. TV 연출을 맡으면서 차차 자신이 생겼고 63연도에

도불(渡佛)하여 1년가량 본격적인 영화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이른바 세계적인

감독의 영화를 매일 한두편씩 보았죠. 「칸느」「베니스」등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 정말로 멋이 있읍니다. 영화야말로 모든 예술중에서 가장 다양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어요』 『한국영화는 소재도 문제지만 「테크닉」이

너무 떨어져요. 소설을 그림으로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정, 분위기 묘사가 천편일률이고 대사가 맞지 않아요.

대체로 말이 너무 많고』 신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털어놓는 李감독은

국산영화가 관객을 잃고있는 이유가 『작품의 질이 낮기때문』이라고 못박았다.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춘향전(春香傳)』같은 한국고유의 소재를 가지고 현대적인

 「테크닉」을 구사한 작품. 고유문화의 전승(傳承)을 주제로 현대적인 영화를 만들고싶단다.

 뜻대로 된다면 내년쯤 「유럽」에 가서 그곳 영화를 좀더 보고올 예정. TV「탤런트」

김난영씨(金蘭榮·28)가 부인이고 두 동생 창홍(昌弘·30), 만홍(萬弘·27)씨가

DBS, KBS-TV의 「프로듀서」인 방송가족. TV극 『녹슬은 단검』에

출연했던 김난영씨는 남편의 「데뷔」영화에서 남정임(南貞任),

 박노식(朴魯植) 등과 공연(共演)한다.

 

 

 

 

탈랜트 고 김난영님은 여로의 작가이자 연출가 고 이남섭님의 부인입니다.

 

그 선데이 서울 인기연예인 맨 윗줄에 김난영님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943년 1월 16일 생. 군산여고, 서라벌예대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임자있었네』『그림자』

『사람나고 돈났지』에 출연 중.

 

 <단골>「보그」미용실,

「아미」의상실

 

<취미> 음악 (듣는 것만)

<월수> 10만원

 

<신상> 무남독녀. KBS-TV에 들어가자마자

「프로듀서」이남섭(36·『임자있었네』작·연출)씨와 결혼.

 6살·2살 딸을 데리고 시집살이.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거느리는

 맏며느리. 큰 살림살이라『돈 모을 새 없죠』 <소문> 한때 이혼설까지

번졌던 부부 사이가 원만해져 이제는 싸움 한번 않는 원앙부부가 됐다.

돌아오는 5월 2일(예정일)이면 셋째 아이가 탄생한다.

2주치를 당겨 녹화도 끝내놓고 분만 준비 중.

 

 

면목동님 글


제가   중화중학교에   전학을 갔던  

 83년 3~4월에 김난영씨 아드님이 면목동에  

신축된   중화중학교 2학년이라는   소문이 있었구요.  

 4월의   어느날 분필을   교무실가서   가져오라는 선생님  

 심부름으로 학교건물앞을 나오는 데,   키가   크시고   마른체형의

 아주머니가 검정색   정장에   얼굴을   가리는 망사모자를 쓰시고

 하이힐을   신으시고   꼿꼿한 걸음걸이로 교실건물쪽으로 걸어

가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김난영씨였구요  

어려서 티비에서   자주뵈어서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아드님 얼굴은   모르지만   저와   동창이네요~



추억님 글


2016.10.07 19:36

이준규이던가 중규던가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초등학교때

전학와서 촌놈이라고 놀리던녀석. 고 김난영씨

아드님이죠. 그후 저랑은 단짝이었고 어머님도 자주

뵜는데집 마당에 연못이랑 이층 테라스랑 전부 기억 나네요.

 아버님은 뵌적 없던거 같구 아버님 돌아가시기전에 할머님인가

돌아가시고 어머님 아버님 계속 돌아가셨던거 같구

그후로 미국으로 갔다고 전해들은겄같네요.

이장춘

2016.10.07 22:59

고맙습니다


최준호 선생님 글


2016.11.03 23:16

저희 큰외삼촌이 이남섭씨

입니다. ㅎ 더 놀라운건 김연진

교수님은 저희 대학교 교수님이셨고

전공 수업 도 들었었는데, 교수님이랑

외삼촌 외숙모가 아시는 사이셨을

줄은 몰랐네요 ㅎㅎㅎ 글 잘

보고 갑니다!!

이장춘

2016.11.04 03:51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

이셨습니다.옛날 이남섭님 막네딸이

호주에 산다면서 댓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김연진님이 이남섭 아이가 둘이라고 써 놓으셔서

그 딸이 저 세재는 모르시나봐요. 라고 썼는데

웬일인지 그 뒤로 소식을 모릅니다. 그 딸과는 

외사촌이 되시겠군요. 막네딸 이미정씨

연락되시면 소식 전해주세요.

그때 그 글을 옮깁니다.



이미정 여사님 글


2011.12.02 15:34

감사합니다. 춘하추동님 저는

 이남섭 작가의 둘째딸 이미정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빠의 글을 읽으니 가슴이 ...

 감사 합니다. 아 그리고 1남1녀가 아닌 제가 한명

 더 있었습니다 1남 2녀 엄마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들려 보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춘하추동


2011.12.02 19:33

반갑습니다. 글은 고쳐

 놓도록 하고 또 춘하추동 방송과

 방송 가족인연 난에도 글을 옮기겠습

니다. 가능 하시면 연락처를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히 잘 계셔요.

춘하추동

2011.12.06 16:04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호주에

살고 있습니다.전화번호는 617 3341 3086

입니다.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제 아버님을 기억 하시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미정

saffron

2012.06.08 18:55

미정씨 미경이 준규 소식 알 수

 없을까요? 그런데 문정동에 미경이하고

 준규 살 때 못 본것 같은데 디자이너스 이후로

소식을 알수 없군요. 저는 이원종이구요

연락처는010-3293-0281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