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6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자들의 공적을 모아

이장춘 2009. 3. 28. 03:54

 

 

 

 

제6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자들의 공적을 모아 

 

 

한국 방송 영상 산업 진흥원(원장 박준영)에서

마련한 여섯 번 채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식이

 2009년 3월 27일 오후 세시 목동에 있는 방송회관에서

있었습니다.  4년 만에 있은 이번 헌정식에서는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해온 열 분이 헌정되었습니다. 연령순으로 유병은, 임택근, 이정석,

 박근숙, 정순일, 이순재, 오승룡, 김기팔, 윤혁기, 표재순님이 헌정되셨지만

 유병은, 임택근, 이정석, 오승룡님은 불로그에 글이 있어서 불로그 주소를

연결 해 놓았고  다른 6분의 공적내용은 여기에  요약해서

 연령순으로 올려드립니다. 고인의 경우는 대리로

참석 하셔서 자료 사진과 함께 대리인

사진을 올렸습니다.

 

 

불로그에 올린 내용을  보시려면

 

개인별 글의  클릭 ->옆 제목에 마우스 대시고 

 

클릭 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유병은

 

 

 

 

   클릭->임택근 아나운서와 라디오방송 전성시대

 

 

 

클릭->언론인 이정석과 방송인 명예의 전당

 

 

 

 

박근숙 : MBC뉴스 데스크 탄생주역이자 초대 앵커

 

 

 

1957년 부산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1931년 MBC개국요원으로 보도국에 발을 디딘 이후

34세 약관의 나이로 초대 보도국장에 취임해서 74년 MBC상무로

보도국을 떠날 때 까지 37년동안 보도국을 이끌었다.

 

1970년 10월 5일밤 10시 30분

한국 최초로 앵커시스템을 도입한 뉴그 프로그램

 뉴스 데스크를 탄생시키고 초대 앵커로 활동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대 변혁기에 있던 1970년대에 시청자의 뉴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며

펑균 시청율 50%를 기록하기도 했다. 텔레비전 보도제작의 책임자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 우리 방송보도의 틀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정순일 : 방송 최초의 연구기구 방송문화 연구실의 주역

 

 

 

 정순일은 1950년대 중반, 한국일보와

월간 “신태양”에 날카로운 방송평을 쓸 정도로

방송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그는 당시 오재경 공보실장에게

 발탁되어, 1957년 6월 방송관리국 산하 연구기관인 방송문화 연구실

창설요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방송 초기 각종조사, 연구, 합평회 등을

 통해 좋은 프로그램 개발과 포맷창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글쓰기에도

뛰어나 1958년 제 1회 신춘방송극 현상모집에

무정의 계절에 입선 하기도 했다.

 

1963년 문화방송 주일특파원, 편성국장,

TV편성국장, 기획심의실장, TV국장을 지냈으며

1973년 KBS 운영심의실장, 국제국장, 방송담당이사,

경영본부장, 국제방송 교류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방송계 전 분야에 걸쳐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방송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순재 : 표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배우

 

 

 

고등학교시절 연극에 맛을 들여

대학연극반(서울대학교)에 들어가 활동을 하면서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인 HLKZ에서 데뷔한 이래

연기를 평생 업으로 삼아 1962년 KBS-TV개국 기념작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 방송 연기자협회 초대, 제2대,

제11대 회장을 지내며 “연기엔 완성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항상 피눈물 나게 대본을 외우고

새로운 역할을 창조하기 위해 고민 할 뿐입니다”

라는 신조로 연기에 전념했다.

 

그는 소통을 중요시 하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 정신으로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에 연기생활의 전성기를 맞으며 삶의 진정성과

 사실성이 깃든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클릭->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자 성우 오승룡 

 

 

 

 

 김기팔 : 용기 있게 시대를 증언한 작가

 

 

 

소설 지망생으로 고교시절 적색영감,

대학시절 KBS 대학방송극 경연대회에 참가

“산울림 이야기”로 1등을 차지하고 1960년 KBS신춘 연속극

 “해바라기 가족”으로 방송문단에 등단했다. 풍부한 자료와

문헌 섭렵을 통해 문제의식에 투철한 다큐멘타리

드라마가 주 관심분야로 1968년 10월에 시작한

“한국 찬가”는 우리 근세사를 인물위주로

진단한 작품이다.

 

1970년 10월에 시작한 정치 다큐드라마

“정계야화”는 1공화국 시절 정치사를 사건별, 쟁점별로

추적 비교 분석하며 당시 군사정권에 억눌린 청취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으나 방송 통폐합으로 끝을 보지 못했다.

TV시대 권력의 실체를 밝히려 한 “땅”도 그 대상의

반발로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윤혁기 : 한국 TV편성의 대가이자 귀재

 

 

 

민간방송 TBC 편성 PD로 방송에 입문한 뒤

 KBS와 SBS등을 두루 거치며 편성 실무를 통한 방송시장의

경쟁력을 전파하고 TV편성의 초석을 다졌다. KBS방송본부장,

기획조정실장, 부사장등을 거치면서 공영방송의 편성철학을 정립했다.

1970년대 말 그가 편성한 채널이 시청율 면에서 타 방송을 압도하는

 성과를 얻은 것도 투철한 프로정신의 분석력,

부단한 학습의 결과였다.

 

전문방송인 가운데 처음으로 SBS대표이사 사장에

 영입되어 6년여의 재임기간동안 신생민방 SBS가 방송 3사

반열에 초기 진입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솔선수범 정신으로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하는 업적을 남겼다.

 

 

표재순 : 전설의 왕 PD, 문화 예술 기획의 거물

 

 

 

연세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에

두각을 들어내 극예술 연구회에서 연출을 맡고,

1960년 실험극장을 창단했으며 1963년 극단

산하의 창립단원으로 활동했다.

 

1963년 TBC-PD로 방송에

입문해서 1969년부터 1989년까지 MBC-TV에서

“전설의 왕 PD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원군, 집념, 수사반장 등

수많은 드라마를 기획 연출했다. SBS전무이사와 SBS프로덕션

사장으로서 방송의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문화 예술부문의 기획과 연출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옛날 옛적에 훼어이” 등

 많은 연극작품과 “오즈의 마법사” “해상 왕 장보고” 등의

 뮤지컬 “성춘향”등의 오페라를 연출했으며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 폐막식” 연출과 “광화문 2000”등

 다양한 문화 행사의 연출을 맞는 등 문화

 예술계의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