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은은 1943년방송국에 들어와 1974년까지의 재직중은 물론 퇴직후이도 방송에 온 정력을 기울였다. 방송기술자로 방송국에 들어왔지만 방송현업이나, 방송자료수집, 방송역사 기록, 국제방송 교류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나라 방송사를 실증적으로 쓴 방송 史家로 일제 강점기 방송을 통한 독립 운동사를 비롯해서 실증에 입각한 이 나라 방송역사의 기록한 방송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방송학계에서 활용되고 있는 방송사는 대부분 유병은의 자료와 기록에 바탕을 두고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 연유로해서 2009년 3월 27일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유병은
經 歷
日本 동경 고등무선 專門학교 卒業 後, 1943년부터 平生을 放送에 從事.
1944年 춘천방송국 개국요원 개국후 기술과장
1950年 大田放送局 放送課長
1952年 남원방송국 개국책임 1953년 개국
1957年 공보처 在職中 6개월 美國硏修
1961年 서울中央放送局 技術課長
1962年 서울市 文化賞
1962年 1963年, 亞細亞放送會議 韓國代表로 參席
1965年 梨花女大 視聽覺 敎育科 講師
1966年 서라벌 藝術大學 放送科 講師
1966年 제9회 방송문화상 수상
1969年 放送局 勤務中 漢陽大 經營學 碩士 學位取得
1973年 大田放送局長
1974년 2월 停年退職 後에도 繼續 大學 出講
1974年 韓國放送史 編纂 事務局長, 淸垣博物館長
1979年 高麗大學 新聞放送科 韓國放送史 特講
1987年 放送 特別賞
1988年 “短波放送 連絡運動” 冊子 發刊 및 同 主題發表,,,
“放送野話” 冊子 著述 및 放送歷史 關聯 放送出演 多數.
2009년 8월 24일 타계
유병은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1. 1943년 방송국에 들어와 1944년 춘천방송국 개국요원이 되고 개국 후에는 방송책임을 맡아 방송, 기술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2004년판 춘천방송국 60년사)
2. 1950년 대전방송국 방송과장을 하다가 6.25를 만나 방송국장 직무를 대행하면서 전시 중앙 방송국이 된 대전방송국에서 전시 비상방송을 했고 피난길에 오른 방송인들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때 대전방송국에 방송청취실을 마련, NHK, VOA, VUNC, 평양방송, 모스코바방송, 북경방송 등을 수신해서 보고서를 작성 국무회의에 제출했고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국무회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대전방송 60년사)
3. 6.25전쟁기간 중 파괴된 시설복구에 앞장섰고 특히 1952년 지리산 작전지구 민심수습과 공비소탕 특수목적으로 남원방송국을 건설할 때 건립, 개국 책임을 맡아 수행했다. 중앙의 예산 지원이 없던 시절, 열악한 조건에서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 남원방송국을 건립, 개국했고 남원방송국은 6.25전쟁 수행목적을 달성한 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4.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 경기대회를 중계 방송한 해외 중계방송을 위해 파견된 최초의 방송기술자다. 이전에도 해외 중계방송은 있었지만 방송기술자가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5. 방송기술자로는 한기선에 이어 1957년 10월부터 1958년 4월에 걸쳐 6개월간의 미국연수를 받고 선진방송기술을 도입했다(방송관리국 시설계장 재직 시) 시설계장으로 있던 유병은은 1961년 남산 텔레비전 방송국 건립에 앞장섰다. 중앙방송국과 국제방송국 기술과장을 겸직하던 1962년에는 국제방송국 건물을 마련하고 기기시설을 남산으로 옮기는 책임을 맡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6. 1962년 마닐라 수도 쿠알라 룸플에서 열린 제4회 ABC총회에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참여했을 때 한국대표로 참여했고(부위원장) 이 대회에서 ABC총회를 ABU 총회로 개편 할 것을 제의, 실현 할 수 있도록 하고 다음 대회인 제5회 ABU총회를 우리나라에서 열도록 주도했다. (유병은은 영어소통에도 능숙한 사람이었음)
7. 1966년 방송계에서 최고의 영예와 권위가 인정되던 방송문화상을 수상했고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퇴직 후. 방송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8. 이 땅에서 시험방송이 시작되었던 1924년부터의 사적가치가 있는 모을 수 있는 모든 방송기기와 자료를 모았고 이를 정리해서 청원박물관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인 사립방송박물관을 운영 하다가 KBS 방송박물관 건립을 위해 그 자료는 모두 KBS에 이관되어 KBS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방송 박물관을 추진하고 있다. 유병은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실증적인 방송자료를 통한 방송사가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방송자료 수집과 정리 족적은 크다.
9. 유병은이 스스로 체험하고 수집한 자료는 우리나라 방송사를 쓰는데 기초가 되었다. 1977년 방송 50주년을 계기로 한국방송 50년사를 출판 할 때 한국방송사 편찬위원회 사무국장이 되어 방송사를 체계화함으로서 이 나라 방송사라는 종합적인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그 뒤에 발간된 방송 60년사, 70년사 등을 발간 할 때는 방송 50년사가 그 기반이 되었다.
또 1987년 KBS문화 사업단이 발행한 방송야사는 유병은이 일생동안 체험한 방송기록을 방송야사라로 엮어 출판된 것이다. 잡지나 방송에 출연해서 얘기한 자료도 많다. 대학 강단에서 실증적인 방송역사를 강의하기도 했다.
10. 구전이나 지엽적인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일제 강점 말기의 항일 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했으며 이 일을 널리 알리고 길이 보존하도록 했다. 이 항일운동이 국가의 인정을 받아 관련자 3사람 (성기석, 조종국, 홍익범) 이 1991년 광복절을 계기로 훈장을 받을 수 있었고 뒤에 당시의 관련자 박용신(생존)이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밑받침을 했다. 유병은이 수집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일제 강점기의 각종 재판기록 사본은 수원 방송박물관 추진위원회에 보관되어 있고 사건의 진상과 내용은 1991년 KBS문화 사업단이 발행한 302페이지의 단파방송 연락운동이라는 책자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방우회는 각종 쎄미나, 토론회를 거쳐 1991년 여의도 KBS에 물망비를 세우고 이 역사적 사실을 길이 보존하고 있다.
11. 뛰어난 話術 그리고 學究熱, 放送歷史및 視聽覺關聯 硏究 等 그 能力을 認定받아 大學講義및 放送出演 等, 放送人公職者로서 類例를 찾다보기 어려운 多才 多能한 能力의 所有者였다.
올해 93세이신 님은 2000년대 들어서도
활동을 하시다가 90세가 지나면서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가 2009년 8월 24일 세상을 떠나셨다.
일생을 함께하신 공제순 여사역시 님이 떠나신지
22일 되던 10월 15일 세상을 떠사셨다.
명예의 전당 헌정되신 분 더 보기 제목, 영문자 주소 클릭
임택근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2795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하신 정순일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338
표재순 전설의 왕PD (프로듀서), 문화 예술 기획의 거물 http://blog.daum.net/jc21th/17781519
윤혁기, 한국 TV편성의 대가이자 귀재 http://blog.daum.net/jc21th/17781521 박근숙 : MBC뉴스 데스크 탄생 주역이자 초대 앵커 http://blog.daum.net/jc21th/177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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