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60년간의 방송인생 성우 이혜경님, 소리의 마술사

이장춘 2008. 7. 17. 18:33

 

 

 
제2차 세계대전으로 억제되었던
 방송극이 해방후 새로운 모습으로 방송되기
 시작 하면서 드라마에 출연 할 성우를 새로 뽑았습니다.
1947년에  조남사,  민구, 장민호,  황정순, 위진록, 황태수님등이 
다음해인 1948년에 이혜경, 최무룡, 구   민,  윤 진, 윤일봉,
이춘사, 남해연, 장서일님 등을 뽑았습니다.
 
 
 방송생활 60년 성우 이혜경님, 소리의 마술사
 
 
1959년 KBS극회 회원들 뒷줄 왼쪽부터

유근필, 노정팔, 정애란 이혜경, 김희창, 이상만, 임옥영,

이창환, 밑의 왼쪽 서계영, 장서일님입니다.

 
 
 6.25전부터 활동하신 이분들은
특기생 성우라고 해서 그 전부터 활동 해 오신
영화 연극배우, 복혜숙, 서월영, 김선영, 박상익, 장진, 한은진,
이향, 송재노, 박학, 이영옥, 김승호, 김복자. 남궁연, 황정순,
정애란님 등과 함게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이 특기생 가운데는 작가. 연출가, 영화배우, 아나운서
 등으로 진출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혜경님을 비롯해서 구민,
장민호님처럼 오랜 기간 성우로 활동 하신 분도 계십니다. 
 
 이혜경님은 그로부터 60년이 더 지난

오늘까지 주로 KBS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하셨고

지금도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KBS무대에 출연하시고

계셔서 가장 오랜기간 방송마이크와 함께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혜경님은 성우로 출발하면서 성인 드라마는 물론
 어린이방송에도 자주 출연해서 모든 청취자의 친근한 벗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목소리로부터 노인 목소리에 이르기 까지,
에로틱한 부드러운 목소리로부터 대북방송 자유통신에서
웅변조의 우렁찬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님은
 못 하는 소리가 없으셨습니다.
 
 
 
1958년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누가누가 잘하나
공개방송을 마치고 이혜경님(가운데분), 강영숙님. 장기범님등과
한용희님등이 함께한 사진입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로만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든 시절에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귓전에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설래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연속 입체낭독
프로그램 등에서는 혼자 여러 목소리를 내면서 여러 사람이
 방송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잘 걸렸습니다. 30분간의 연속입체낭독 방송을 하실때의 모습
 
 
이혜경님은 동국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시절에 방송된 앵화원이나 석가모니 등에서
연극 활동을 하던 중 방송국에서 연기자, 낭독자 모집이
있어서 방송국에 들어오셨습니다. 성우라는 말이 없던 때라
방송연기자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에 들어오셨고 처음 맡게 된
꽁트낭독을 분위기에 맡도록 멋지게 처리하면서 차츰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명 콤비 구민님과 함께
 
 
그때 어른이나 어린이가 다 같이 즐기던
 똘똘이 모험에서 똘똘이 역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6.25가 일어나기 직전 방송국내의의 커플로 결혼을 한
이혜경님은 6.25를 맞아 부산 피난을 갔습니다.
 
 

연출가 이상만과 1기성우
 
 
부군은 그 시대를 사시던 분들이 효과에 이상만,
 연출에 이상만이라고 기억하시는 고 이상 만님입니다.
6.25피난 시절에는 노천명님의 애국시 낭송, 수필낭독, 콩트낭독,
군 가족이나 상이군인 등의 이산가족 찾기, 인생역마차등,
방송에 참여할 성우가 많지 않을 때라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바빴지만 성우 본연의 일 외에도
 방송 소재를 찾고, 방송용 글을 쓰는 등
일이 다양해 졌습니다.
 
 

 

 청취자들이 방송 모습을 직접 보지는 앉치만 본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 합니다. 장민호님등과 함께한 방송 모습입니다.
 
 
1953년 방송국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방송이 자리를 잡아가자 님의 할 일은 많아졌습니다.
드라마에 있어서는 최요안. 김영수, 조남사, 한운사, 김희창,
주태익님 등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일수록 이혜경님의 출연이
 요구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어떤 드라마 던지 소화
낼 수 있는 성우라고 인정되었지만 본인으로서는
 애로도 많으셨다고 합니다.
 
 
 
 
드라마가 모두 생방송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방송이 끝나고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연기에 최선을
다 했어도 작가나 연출가로부터 혹독한 꾸중이 있을 때는
울며 마음 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63년 방송인으로 최고 영예스럽던 방송문화상을 받으셨습니다.
 
 
혼자 30분간을 진행했던 김영수작
잘 못 결렸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서 작가는 작가대로 어렵고

낭독자는 낭독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던

일 들이 50년이 다 된 지금도 기억에

떠오르신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설레이게도 했던 성우였지만 남모르는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만 해도 제법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 하셨지만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서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50년 넘게
출연해 온 KBS무대에만 출연하고 계십니다.
 
 

 
이름 있던 성우들이 민영 방송국을 넘나들며
활동 하시는 경우가 있었지만 님은 주로 KBS한곳을
지켰습니다.  TV방송이 실현되면서 TV방송에도 출연하시고
연극 등에도 출연하신 적이 있지만 민영방송의 출연은 가급적
 자제 해 오셨습니다.  남편이 KBS연출 책임을 맡고
계셨던 때문이기도 하셨을 줄 압니다.
 
 6년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걸이는
 어려우시지만 건강 하신 모습으로, 목소리역시
옛날과 크게 다름이 없으십니다.  여가활동으로
 인형을 만드신다고 하시는군요.
 
60년을 방송과 함께 해 오신 님은  방송의 산 증인이십니다.
 
 

 

1959년 남산 스카이 라운지에서있은
성우송념모임모습입니다. 공보부장관. 중앙방송국장,
방송관리국장님도 자리를 같이 하셨습니다. 왼쪽부터 장민호,
 이혜경, 김수일, 홍은순, 이미경, 방송관리국장 이규일, 구민,
고은정, 최길호  윤미림, 전성천공보실장, 한분건너 최을선,
이경희, 방송과장 노정팔, 최옥경, 천선녀, 오승룡,
중앙 방송국장 이운용님입니다.
 

 

2013년 11월 18일 2013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에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59년 연말 성우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앞줄 오른쪽 부터 구민, 박병호, 윤미림, 이헤경,
이향자,복헤숙, 박용기. 둘째줄 왼쪽부터 장서일, 최옥정, 고은정,
심영식, 세째줄 왼쪽부터 박순옥, 김정옥, 김소원, 네째줄 왼쪽부터
강문수, 김수일, 주상현, 윤병희,오정한, 뒷줄 왼쪽부터 장민호,
박신호, 오승룡, 남일우, 이창환,최길호님입니다,

 

  
 

이혜경 글 더 보기

 

63년의 방송인생 성우 이혜경의 회고록

http://blog.daum.net/jc21th/17780044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KBS무대 50주년-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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