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KBS사우회 회원 1,000명 시대를 열며 제가 KBS 사우회 홈페이지 올렸던 글입니다. 2006년 본 춘하추동방송에도 이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KBS사우회 창립 30주년 기념 사이버 박물관 개막을 계기로 다시 올렸습니다. 이 글 쓴 날로부터 14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회원 3,000명 시대를 맞이했으나, 그때 곧 건립된다던 방송 박물관은 이직도 잠자고 있습니다. 어쩌면 관계자 들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KBS와 KBS 사우회의 무궁한 발전, 영광 있기를 기원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KBS사우회 회원 1000명시대를 열며
회원 1.000명 시대를 열며 (1) <1000명시대에 이르기까지>
1987년 3월27일 발기인 52명으로 발족하고 1988년 12월 19일 104명의 선배회원들로 창립총회를 가졌던 사우회가 발족일로부터 꼭 18년이 되는 2005년 3월 회원1,000명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울러 연간 2억의 예산을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적으나마 1억 원의 기금도 마련되었으며 매월 회보가 발간되어 전 회원들과 관련단체 또는 관련인사들에게 전달되고 연말 송년회와 연초에 열리는 총회 등을 통해서 서로 간에 만남의장이 마련되기도 한다.
회원들의 친목활동을 위한 5개 (등산, 낚시, 바둑, 탐석, 서화사진) 의 분과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방송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방송문화 연구회 (기획 인력, 홍보출판, 사이버, 미디어 비평) 가 홈페이지 운영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에도 8개의 지부 (부산, 창원, 대구, 전주, 광주, 대전, 청주, 춘천)가 결성되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우회의 오늘이 있기 까지는 회원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선배 임원진의 각고의 노력에 따른 결과임을 되새기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으며 회원의 일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서 잠시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발족 초기에 회원들의 입회비와 연회비 이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었던 상황에서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K.B.S본사의 도움으로 경운동의 사무실이 확보되고 난고 끝에 성사된 보험수입이 정상화 되면서 사우회가 제 모습을 갖추고 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90년부터라고 여겨진다. 여기에 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한 것은 2000 회계연도 부터의 일로 이때까지 기금의 필요성은 느껴 왔으나 재정의 취약으로 성사되지 못하다가 6기 회장단에서 연간 500여 만원의 임원찬조금을 출연하고 월드 뉴스 발간에 따른 수입금이 힘이 되어 작년 까지 매년 2,000만원씩 5년간에 걸쳐 모두 1억 200만원의 기금을 적립하게 된 것이다.
한편 사우회의 목적사업 수행 측면에서 보면 회원간의친목, 상부상조, 복리증진 등의 회원들 스스로를 위한 활동과 방송문화발전에 기여라는 두 개의 축으로 나누워 볼 수 있겠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웠던 초기로서는 전자 즉 회원들 스스로를 위한 내부 활동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제8기 회장단 발족 시 부터 방송문화 발전에 기여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이것을 위해서 방송문화연구회 (MEDIA STUDY GROUP) 규정을 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 따라 미디어 스터디 그룹 위원장이 선임되고 그 밑에 기획인력, 홍보출판, 사이버, 미디어 비평 등 네 개의 분과 위원회가 발족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고 방송, 보도 분야의 회원들의 입회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방송, 기술, 경영 등 각 분야의 수적인 균형도 유지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시기에 20만원 또는 10만원을 받아오던 입회비가 폐지되면서 입회비의 부담이 없어짐에 따라 불과 2년 동안에 300여명의 회원이 늘어나면서 드디어 1,000명의 회원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회원 1.000명 시대를 열며 (2) <즐거운 만남, 뜻있는 나눔>
이 땅에서 첫 전파가 발사 된지 78년, KBS가 공영체제로 바뀐 지 32년, 그동안 방송인들은 이 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치하 에서 암암리에 독립운동을 위해서 힘을 기울여 왔고 해방의 소식을 전하면서 다 같이 만세를 불렀다.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줬고 국민들의 힘을 모아 이 나라의 가난을 모라 내는데 앞장서 왔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해서 이웃의 왕래가 불편하던 그 시절부터 그리고 철조망이 가로막혀 남, 북간에 혹은 동, 서 간에 왕래가 불가능 했던 그 시절에도 KBS전파만은 한반도의 저 끝까지 그리고 외딴 섬까지도, 산간 오지 까지도, 북녘의 끝 압록강 두만강까지도 강 건너 북간도까지 사하린까지 바다건너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도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 전파와 함께 희, 노, 애, 락을 같이하던 주인공들이 모여 새로운 삶을 누려가는 곳이 바로 이곳 사우회임을 우리는 안다. 사하린의 어느 동포가 이러저러한 어려운 경로를 통해서 스스로 쓴 사연과 함께 보내온 녹음 테잎 모니터 보고에 접하면서, 유럽의 어느 외국인이 중파로 또는 단파로 발사된 K.B.S의 방송프로그램을 그대로 녹음해서 그의 소감을 쓴 편지와 함께 보내준 것을 받아본 감격의 순간들을 접하면서,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어, 강 건너 바다건너 산 넘어 대한민국 땅을 찾은 동포가 KBS방송을 몰래 들으면서 이 땅을 동경하고 있던 중 이렇게 찾아왔노라고 전 국민 앞에서 울부짖으며 외치던 그 모습에 접하면서 같이 눈물 흘리던 기억을 간직한 그때 그 방송인들이 다시 모인 곳이 이곳 사우회임을 우리는 안다.
저 멀리 이국땅의 싸움터에서 그리고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저 멀리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을 빛내주고 대한민국을 살찌게 해 주었던 모든 해외주재 동포들에게 이 땅의 소식을 알려주면서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던 전파의 파수군 KBS인들이 다시 모인 곳이 사우회임을 우리는 안다.
만나면 즐겁고 나누면 뜻 있음을 우리는 안다.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만나련다. 직위도 없고 직책도 없이 친구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만나고 또 만나련다. 추억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련다.
회원 1000명 시대를 열며 (3) <만남의 기회확대>
1000명의 회원과 가족들이 한번이라도 한자리에 모여 보았 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한 번도 그래보지 못했기에 그런 소망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각기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만남의 폭을 넓혀나가고 서로의 정감을 나누면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좀 더 뜻있는 삶을 영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우회는 이런 장을 좀 더 넓혀 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경운동의 사무실을 넓힘과 동시에 이곳을 휴개실로도 활용 할수 있는 분위기를 갖추었고 여의도 KBS 내에도 사무실을 가추워 이곳에서 일도 하고 회원들이 쉬어 갈수도 있게 했읍니다.
작년 까지는 이곳이 비는 경우도 있어서 회원들이 들리시기가 불편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부터는 이곳에 여직원도 배치하고 항상 일하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처음 발걸음 하시기가 어색 하셔서 그렇지 들리시다 보면 편해지실 것입니다.
경운동이나 여의도나 어느 때 던지 들려서 쉬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주 1-2회는 어느 곳이던 들립니다. 한편 각종 친목활동의 폭도 더 넓혀나가려고 합니다. 현재 5개의 고정된 분과 위원회가 있어서 활동하고 있지만 참여회원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모든 회원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행사가 있다면 이것도 해 보았으면 좋겠고 또 현재의 분과 위원회에 없는 다른 분야의 친목활동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 모든 회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고 규정도 여기에 맞추어 개정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어느 때 던지 얘기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2회에 걸쳐 정기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2월에 열리는 정기 총회와 연말에 열리는 송년회 입니다. 작년 송년회에는 230여명의 회원이 참석 해 주셨습니다. 각 지역별 송년회가 있어서 서울의 송년회에는 대표분 중심으로 몇 분만 참석 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성황을 이루어 주신 것은 사우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리의 만남의 장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말 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정기적인 모임이 더 활성화 되도록 노력 할 것이고 회원여러분들께 서도 더욱더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회원 1000명 시대를 열며 (4) <할 얘기, 하고 싶은 얘기>
KBS는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를 지켜보고 또 역사를 이끌어오면서 그리고 때로는 역사를 스스로 창조하면서 격동의 80년 세월을 지켜온 만큼 KBS와 함께 살아온 사우회 회원님들에게는 그동안 겪은 일도 많고 얽힌 얘기도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들 가운데는 이미 기록물로 남겨진 얘기들도 많지만 숨어 있는 얘기들도 많고 어딘가 한 구석에 기록으로 남아 있어도 미처 알지 못한 얘기들도 많습니다.
그동안 발간된 방송 70년사나 고 노 정팔 선배님의 회고록 (한국방송과 50년) 그리고 KBS연감을 비롯한 각종 방송관련 연감이나 자료 또 각 지역 방송국에서 발간되는 각종 방송 역사물 등 많은 기록물들이 있지만 미쳐 들추어 볼 기회가 없거나 정리가 덜 되었거나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얘기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지난날에 관해서 할 얘기, 해야 할 얘기,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고 이것을 정리해서 후세에 까지 남겨야 할 일도 많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하기 위한 일환으로 오늘날 KBS가 방송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박물관 건립을 결정하기까지 유병은 선배회원님의 공로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은 관계자를 만나면 그때 마다 방송박물관을 건립해야 된다는 점을 역설 하시고 박물관이 건립되면 일생동안 모아 소장하고 계시는 방송 관련 장비 들을 비롯한 방송관련 자료를 모두 내 놓으시겠다는 뜻을 밝혀 오셨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맺어져 오늘날의 방송 박물관의 탄생이 눈앞에 다가 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원방송센터 안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박물관은 머지않아 모습을 들어 낼 것이고 여기에는 그동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모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비와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한눈에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박물관 운영에 어떤 형태로 던지 사우회나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 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때 박물관 일에 관여 하셨던 한중광 (현사우회 이사) 회원님도 그런 얘기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로 사우회가 또는 회원님들이 여기에 참여 할 것인가는 연구 과제라고 봅니다. 우리회원님들 가운데는 이 나라 방송 초창기부터 방송현장에 계시던 선배 회원님들이 아직 생존 해 계시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 나라 방송 역사에 산 증인인 것입니다.
최창봉, 이인관, 유병은, 김성열, 김성배, 김선영. 박경환, 정경순, 김광식, 신정휴, 이승균, 김원용, 고세혁, 장병량, 이인화, 이관구, 김일영, 김순경, 이상설, 민두식, 김상헌, 신병운, 박상진, 방흥안. 최계환, 이무근, 윤기범, 황병찬 (비회원은 제외하고 회원님의 성명만 무작위로 기재했음) 회원님,
이밖에도 여러 원로 회원님들이 1930, 40년대부터 1970, 80년대 까지 격동기에 이 나라 방송을 지켜 오신 분들 이고 또 1950년 60년대부터 각 분야별로 전문분야의 방송을 담당 해 오신 회원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지금도 이분들을 만나면 단파사건을 비롯한 일제치하에서 겪었던 얘기들, 6.25당시의 방송의 비화. 4.19, 5.16등을 겪으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얘기들, 어린이 프로, 음악프로만 몇 십년간 제작하면서 겪고 느낀 얘기를 듣자면 얘기의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방송에 종사하는 사원들은 우리가 겪었던 얘기들을 잘 모르거나 틀리게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까운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우리 방송인들 가운데 흔히 10.26에 관한 얘기는 잘 아시지만 KBS인으로서는 응당 알아야 할 그 주인공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행사장 일터가 KBS당진송신소 준공식장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시는 사원들이 많습니다. ( 현지에는 비석도 새워놓았건만 )
또 그동안의 기록물들이 잘 못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 니다. (강완수 회원님이 최근 사우회보를 통해 3회에 걸쳐 KBS연감을 중심으로 틀려 있는 부분을 지적한일도 있음) 작년에 춘천방송 60년사가 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60년대 초. 중반에 걸쳐 이곳 춘천방송국에 근무했던 저로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유병은 선배회원님의 춘천방송국 초창기 얘기들을 상세하게 증언 하신 기록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찾아내야 할 증언들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이 나라 방송역사의 산 증인이신 원로 회원님들이 계실 때 그날의 일들을 더 발굴하고 정리해서 후세에 남겨야 하고 그러려면 소요 비용은 KBS 예산을 활용하겠지만 일은 사우회가 또는 사우회의 회원님들이 적극 참여해서 추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원님들께서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지시고 회보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또는 서로 만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어 주시면 좋으 리라고 생각 해 봅니다.
2005년 4월 KBS 사우회 부회장 이장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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