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회 · 문공회

KBS와 사우회 30년 애증愛憎의 세월, 역사의 아이러니!

이장춘 2019. 5. 7. 05:21

 

 

 


  

KBS사우회 30년!

동우회로부터 32년!

  


KBS와 사우회

愛憎이 교차하는 세월이고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KBS와 사우회 30년 애증愛憎의 세월, 역사의 아이러니!

  


KBS사우회는 1970년대,

80년대 박정희, 전두환, 특히

전두환의 무소불위 철권정치, 언론말살

정책으로 직장을 떠나   고통을 겪던 분들이

중심이 된 결사체였다.     그러다 보니 KBS에

대한 서운함을 넘어 증오하는 회원들, KBS쪽을

향해 눈도 안 돌린다는 분들이 많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재정을

꾸려 갈 수 없었던 사우회로서는

KBS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의 시간이 흐르면서 KBS가

민간인을 통해 지불하던 보험료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사우회에서 운영하도록 해서

상당한 수입금을 확보했다.

 

또 KBS에서 年 1,800만원의

보조금을 정기적으로 받도록 협의되었고

이 밖에도 KBS 예산에 몇 가지 보조금이 편성

되기도 했다.   경운동 사우회 사무실 임대료로

5,00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관계

속에서도 회원들의 마음은   여전히  KBS에

대한 거부감, 서운함으로 일관되었다.

 

이런 가운데  모 사장은

사우회를 냉대하다 못해, 사우회 회장

면담까지도  거절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는가 하면   KBS 출신 모 이사는 사우회

지원금 예산을 삭감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때 사우회장 면담까지 거절한     그 사장이

퇴직후 사우회에서는 고문 추대를 거부하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KBS사장을 고문顧問으로

모시는      사우회 규정과 관례에

 따르기로 결론이 났다. 

 

사우회 예산삭감에 앞장섰던

그 이사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세상을 뜨실 때가지 사우회 회원 신분을

갖지 못했다. KBS와 사우회의 갈등관계가

해소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서병주

회장출범 때 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사우회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친목행사도

늘려나가고 새로운 문화행사도 벌려나갔다.

(사우회 회원 1000명시대 참조) 그러면서

우정의 장이 확대되었다.

 

KBS 안에 작은 사우회사무실이

마련되고   KBS스튜디오에서 총회를

열었는가 하면, KBS 국제 회의실 등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문화행사

장소를 제공받기도 하고 수원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후반

KBS사우회 창립일을 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어    2006년 총회에서 1989

6월 1일을 창립일로 정해서 (KBS사우회 창립부터

오늘까지 여러 글을 모아 2006년 6월 1일 : 참조)

연초부터 역량을 이 행사에 모아 나가던 중

사우회 회장단과 정연주 사장의

오찬만남이 있었다.

 

여기서 「사우회 창립행사」와

「방송 80년사 발간」 얘기가  나오자

뜻 밖에도    정연주 사장은「사우회 창립

행사」를 KBS친정 나들이 「KBS 홈커밍」으로

해줄 것을    제안하면서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행사계획을 진행 해 나갔다.

    



 

6월 1일 KBS 안에서 있었던

그 행사에 역대 가장 많은 회원들이

참여해서 성황을 이루어 주셨다. KBS에

대한 서운함도 많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김은구 회장이 출범하던 해 2007년 사우회

송년행사를 처음으로 KBS 본관 구내식당

에서 했을 때 정연주 사장과 임원들이

참여해 주셨고 350여명의 회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토록 많은 회원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사우회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KBS 사우회

제 10기 -2007년 2008년-참조)     정연주

사장에 이어 들어선 김병순 사장시절, KBS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KBS사우회에

대한 지원금을 연간    1,800만원에서 1차로

5,000원만으로 늘렸고,   또 그 다음해는

7,000만원으로    늘려주어 어렵던

사우회 재정에 숨통이 트였다.

    


 


상암동      KBS 미디어 센터가

준공되어 여의도에 있던 KBS계열사들이

옮기면서 사무실 사정이 다소 완화된 KBS는

2010년  별관 10층 일부를 사우회 사무실로

제공해서 현재에 이른다. (지금의 사무실은

8층), (동영상, KBS사우회 새로운

사무실과 현판식 참조)

 

지금은 사우회원의

KBS출입이 신분증 제시나,

주차비 없이 자유롭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과 같은

절차를 거쳤다.      이런 사정을 안 당시의

김형준 부사장은 깜짝 놀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며 사우회원들의 출입과 자동차 출입 

현역사원과 같이 신분증 제시 없이, 또

주차비 없이 출입토록 했다.  

 

사우회 재정이 어렵던 시절

20만원 또 몇년이 더 지나 10만원의

입회비를 받아      재정에 보태왔었다.

강대영 KBS부사장 시절  KBS사원이 퇴직해서

사우회 회원이 되는데 입회비를 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며 사원이 퇴직할 때 사우회 입회비 1인당

50,000원을 지원해줘, 오늘에 이른다. KBS 웹메일을

처음 시행한 김인규 당시의 담당 본부장(전 사장)은

웹메일 역시 전·현직 사원들이 함께 써야

한다며 그렇게 시행해서

오늘에 이른다.

 

  

  

 

필자는 늘 강조한다.

「KBS 인은 하나다.」 라고

선배들이 일구어 논 바탕위에

후배들이 발전시키며   든든한 기반을

가꾸어 가며 성과를 일구어 내는 것. 이라고,

지나다 보면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섭섭함이

있을 수 있을 지라도    국민의 사랑받는 KBS를

위해 바른 길로 가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되는

마음은 같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후배가 뜻과 지혜를 모아

국민의 사랑 받는 KBS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