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윤영중, 1950년대의 여성아나운서 그때의 방송 그 목소리, 그 패션

이장춘 2016. 12. 19. 04:21

 


 




1953년부터 1962년까지 10 여년년에

걸쳐 HLKA 중앙방송국에서 청취자들의

마음을 끈 꾀꼬리 목소리!   그 맑고 청아함에

아름다움을 더해서 청자색 목소리의 아나운서라고

불렸던 윤영중 아나운서!    공개모집 광고에 접하고

응모해서 아나운서가 된 이래 10년 세월 아나운서

생활을 했던  인연으로   80을 넘은   지금도  

 윤영중 여사를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윤영중 아나운서라고 부릅니다.



윤영중, 1950년대의 여성아나운서 그때의 방송 그 목소리, 그 패션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적었던 1950년대! 그 시절 아나운서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과 함께

 방송국을 뒤로 해야 해서   여성은 아나운서생활 5년을

 넘기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10년 넘는 세월 방송과 함께 하며 화제를 모은 두 분의 여성

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KBS와 MBC에서 20 여 년간

아나운서생활을 하며 여성으로는 최초의 아나운서

실장(MBC)을 한 강영숙 아나운서와 오늘의

주인공 윤영중 아나운서입니다. 






 오랜 세월 방송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받으면서 방송을 했었기에

話題도 많고 방송史料도 많습니다.  듣고 계시는

방송은, 1950년대 윤영중 아나운서 목소리로 라디오

방송만 했던 그 시절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희망

음악회」, 「추억의 멜로디」,「수요일 밤의 향연」,

  대북방송노래에 정을 싣고」프로그램의

 일부를 발췌해서 올렸습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 공개방송 (김공선과 함께)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녹음 테이프라 음질이 많이 변했지만

늘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시는 노익중 선생님

의 기술력을 발휘해서 손색없는 디지털 목소리로

복원 되었습니다. 9분으로 편집된 이 방송을 들으시며

오늘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1956년

 최초로 들여온   중계방송 차 앞에서   윤영중

 (중앙), 장금자 (왼쪽끝) 아나운서 등이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1956년 최초로 들여온 중계방송차 앞에서 윤영중(중앙), 장금자(왼쪽 끝)



학교 선생님이 여성 직업 상위순위

이던 시절 학교 선생님이 되고자 서울사범학교

(교육대학 전신)를  다녔지만  뜻밖에 맞은  6.25

한국전쟁으로 아나운서가 되었니다. 그때는 강영숙,

김인숙, 장금자,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윤영중 아나운서가

KBS 서울 중앙방송국의 여성 아나운서의 모두였습니다. 

 TV방송국도  없고  민영방송도 없던   1950년대! 새로운

소식을 접할 미디어가 별로 없고 마땅히 즐길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KBS 라디오 방송은

곁에 있는 친구였고 마음의 위안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 라디오방송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 목소리는 국민의 친근한

벗이었고  여기에   여성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더 정겹고 친근한 마음으로 다가

왔습니다. 어린이 시간이나 주부시간은 물론,

디스크자키나 낭독, 공개방송, 대북방송에 이르기

까지 여성아나운서의 참여폭이 넓어지면서 윤영중

 아나운서는 늘 바쁜 생활을 보냈습니다.    





꾸밈없는 청순함과 청아한

윤영중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침부터 심야방송까지

 음악이나 낭독은 물론, 뉴스나 주부시간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윤영중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서

방송되었습니다. 신문에 소개되는 사진이나 전국 영화관,

 지역순회 공보관 등을 통해서 상영된   대한 뉴스를 통해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 윤영중 아나운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애청자들로 부터 수많은 전화나 편지를

받고 그 속에는 짙은 사랑얘기를 담아 보내는

러브레터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윤영중 아나운서가 근무하던시절의

 아나운서들,  노정팔 방송과장님과 왼쪽

 한사람 건너 김인숙, 장금자, 강영숙, 윤영중

아나운서실장 장기범은 윤영중에게 더 많은 좋은

 프로를 배당하려고 했지만       세침뜨기윤영중은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사양했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맡겨지면

 해야만 하는 조직사회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다

보니전파를 타는 목소리의 횟수도 많아지면서

그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남산 KBS중앙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늘 가깝

지냈던 후배 김경숙, 이현숙아나운서와 함께



정동방송국 부조정실을 방문한

 당대의 명배우 김승호님이   그곳에서

방송을 하고나온 윤영중에게 칭찬을 늘어놓던

 옛 시절이 머릿속에 생생 하시답니다. 남산 KBS

중앙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늘 가갑게 지냈던

후배 김경숙, 이현숙아나운서와 함께





아나운서가 결혼을 하게 되면

 방송국문을나서야 하던 시절 1962년

KBS에서 TV방송을 시작하던 때 결혼과 함께

 아나운서생활들 뒤로 했습니다. 아나운서생활은

접었어도 연속낭독 등 지금으로 말하면 프리랜서로

 방송에 참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아침

시간에 방송된 세계 문학전집 사일러스 마나로 지금도 그때가

 머리에 생생하시답니다.     그때의 담당 프로듀서 정창명은 

성우들이 담당하던  연속낭독을 아나운서 출신이 낭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때의 인기가 대단했고  

또 아나운서 출신의 연속낭독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윤영중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떠난지 55년이 흐른 오늘에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나운서 황우겸, 임택근, 전영우,

박종세님이 만나면 그때 윤영중 아나운서의

모습을 종종 화제에 올리기도 합니다.





KBS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인기 장수 프로그램 스무고개 사회를 보는

 임택근 아나운서와 비밀실에서 문제를 제시하는

윤영중 아나운서입니다. 비밀실에서 제시된 문제는

 방청객에게만 알려주고 출연박사들이 한고개 한개를

넘으면서 스무고개가넘기전까지 비밀실에서 제시된

문제에 대한 담을 맞츠어 나가면서 재미있게

엮어지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출연했던 프로그램 중에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여쭈어 보았더니

 많은 프로그램을 했지만 추억의 멜로디, 시사레뷰,

시사논평, 희망음악회, 수요일 밤의 향연 그리고 임택근,

최세훈 아나운서와 함께   남, 녀 아나운서가 번가라가며

진행했던 일주일간 일어났던사건 사고 소식을 모아 방송한

주간 종합 뉴스,    대북방송의 노래에 정을싣고,  자유의

메아리,잊혀지지 안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대북방송 등에 헌신했던 공으로

윤영중 아나운서는 현재 국가 유공방송인

 대우를 받고 다소의 연금도 지급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어서 인생의 큰 보람으로 생각하며 지금도

 서예활등 등을 벌리며 열심히 살고 계십니다.    순박기,

새침뜨기,   눈물많고 착하기만 하던 젊은시절의 윤영중은

세월이 흘러 80이 넘었어도 아름다운 목소리는 여전

해서 요즈음도 시낭송도 하고 서예를 하며

뜻있는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월정 정주상 선생님으로 부터

전수받은 여송 윤영중 서예는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님의   작품을 감상하시는

분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서예에 관한

 얘기는 따로 글을 올려 연결했습니다.





사진 촬영이 쉽지 않던 1950년대

윤영중 아나운서가 보존해온 그때 그 시절

 희귀한 사진들은 그 시절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史料가 되기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소중하게 간직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과 함께 주요 방송관련

 史料 시진을 올려 함께 감상합니다. 오늘 오른 사진 속

패션도 그 시대의 패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어서 많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당대 패션계의 최고 반열에 있던

 최경자님 작품으로  최경자님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패션공부를 한 패션계의

정통파로 불려  방송에 자주 출연했고 그런

 인연으로 윤영중 아나운서의상은 전적으로

 최경자님의 작품이고 이밖에 다른 아나운서도

 최경자님의 의상을 많이 착용했습니다.





최경자님은 국제복장학원과 국제

양장점을 경영했고 그 유명한 앙드레김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찾는 팬들 특히 여성 팬들이 1950년대 여성아나운서

 패션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녀로 불린   노라노 (본명 노명자) 여사는

 그 부모님이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인들이어서  

그 인연으로       많은 의상작품과 글이

춘하추동방송에 올라 있습니다.



화      보



1957년 방송국을 남산으로 옮기고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했습니다.

공개방송이 끝나고 촬영한 사진 앞줄

왼쪽애서 네번째 윤영중 아나운서.




윤영중 아나운서와 함께 한 1958년

 KBS 아나운서 앞줄 왼쪽부터 1.송영필,

2.강익수,     3.장기범, 4.임택근, 5.박종세,

6.최세훈, 7.이규영,8.강영숙, 9.전영우, 10.황우겸,

11.유석춘, 12.강찬선, 13.김동만, 14.최계환, 15.최두헌,

16.문복순, 17.장금자, 18.유창경, 19.이광재, 20.한경희

 21.김준철,22.최만린, 23.이현숙, 24.윤영중,

 25.조영준, 26.이본 아나운서.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영중, 이현숙, 강찬선, 송영필, 김경숙

뒷줄 오른족부터 박종세, 장금자,  전영우, 문복순,

 최계환, 000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 아래는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 9월 22일 압구정 한 음식점

에서  만나 촬영한 사진이다. 오랜세월 10여명의 그때

아나운서들 모임을 이어왔지만 세월이 지나 4명에서

7명의 그때 그 아나운서들이 만난다. 앞줄 이현숙

 아나운서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문복순,

윤영중, 민병연 아나운서







1959년 설날 새배차 오재경 공보실장

(장관) 집에서 만난 방송인들,  오재경장관

내외분(부인 신재덕)과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와

 김명희 프로듀서 오장관 아들 오종열 등. 참고로 1958년

 설날에 공보실장(장관)을 찾아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방송인

들의 모습을 올렸습니다. 강정수, 이중집, 황우겸, 임택근,

강익수, 이상만, 한기욱, 송재남, 이상희, 박호준.





서울중알방송국 아나운서 족보로

 불리는    역대 아나운서 명단입니다.

KBS아나운서실에는 차례대로 작성한 네편

 명단이 걸려있고 이 족자는 그 첫번째로 JODK

경성방송국   개국때부터    1964년 입사

아나운서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영숙 아나운서




부조정실에서 김인숙 아나운서



1958년 새로 도입된 녹음기를 시험작동하면서  




위 사진은 1956년 처음으로

 실시한 아나운서 강습회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제1회 강습회는

 윤영중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서울 중앙방송국의

최계환, 이광재, 박종세, 임동순, 장금자, 윤영중, 부산

전응덕, 최재희, 대구 권오상, 광주 황의돈  마산 서용수,

이완희,    청주 조창동, 이규영, 이리 백기홍, 서정복, 이외에

기독교방송 1명, 육군 정훈국 1명이 참여해서 강습회를 받았고

위 사진의 강습회 수료식 기념사진을 보면 오재경 공보실장, 

이운용중앙방송국장, 이규일 방송관리국장, 이인관 기감,

 윤길구 방송과장, 송영호 방송관리과장, 한기선 공보실

 시설과장, 이종훈 중앙방송국 기술과장, 박능상,

노정팔, 유병은님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위 사진은 제1회 아나운서 강습회를

마치고 덕수궁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1.조창동,

2.정훈국 장대위, 3. 4. 5.박종세, 6.이완희, 7, 8.최재희,

9. 10. 11.백기홍, 12.윤영중, 13. 14. 15. 16. 17.황의돈, 18. 19.

20.서용수, 21. 22. 아나운서입니다. 아래사진은 역시 1차교육에

참여했던 박종세아나운서가 제공한 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두번째

정훈국 장대위, 네번째 박종세, 여섯번째 최재희, 맨 오른쪽 장금자.

뒷줄     왼쪽부터    이완희, 황의돈, 이광재, 조창동, 전응덕,

이규영, 임동순, 강익수(교육책임), 서용수, 백기홍,

한사람 건너 윤영중아나운서입니다.




강영숙, 한사람건너 장금자, 윤영중, 김인숙,(정동방송국)



이현숙 아나운서와 함께 한 윤영중 아나운서





전영우, 이현숙, 윤영중, 이규영




위, 아래  : 문복순, 윤영중, 김인숙, 송영필, 전영우 아나운서




문복순, 송영필, 윤영중, 김인숙




윤영중, 송영필, 문복순




윤영중 장금자 아나운서





장금자, 윤영중



장금자, 윤영중









윤영중, 김현수,





장기범, 임택근 아나운서와 이승만대통령 아들 이강석





윤영중, 만병연 아나운서




이현숙, 000,   윤영중 아나운서




드라마 녹음 : 왼쪽부터 이광자,

박신호,  정애란, 한분건너 윤영중,

이흥자, 홍두표, 이혜경, 심영식

















남산방송국 정원에서







2층 아나운서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윤영중 아나운서 사진첩에서

역사의 현장 황궁우와 옛 조선호텔에서

촬영한 결혼사진 삭장을 골랐습니다. 1960년대의

위는 황궁우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사진은 엣

조선호텔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조선호텔자리

환구단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에서 돌아와 국호를 대한으로

 하면서 대한제국이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바로 그 터지요.

아주 역사의 현장에서 촬영한 소중한 사진이라 따로 글 한편써서

사진과 함께 올려 아래 연결했습니다. 신랑 심경섭은 학생시절

부터 널리 활동한 분으로 이철승, 송원영 등과 함께

그 시대에 널리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옛 조선호텔에서

신랑 심경섭과 : 신부 윤영중 아나운서가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조선호텔 그랜드 홀!

  동료와 선후배 아나운서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6.25 12주년을 앞둔 시점이라 특집방송 등  방송 일에

  바빠  참여인원이 적기도 했지만 시절에는 지금과는

 달리 단촐하게 치뤄지던때였다. 김인숙, 최계환, 

장금자,  문복순,  김정현,  민병연, 송영필,

김경숙 아나운서 모습이 보입니다.





1992년 워커힐에서 만난 1950년대

60년대   아나운서들과 함께 한 사진

 윤영중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장금자,

문복순, 민병연, 성선경아나운서



2014년 4월 7일 윤영중 아나운서

조형미술의 선구자 최만린 선생님 현대미술관 초대전에서




전시장 안에서 문복순 아나운서와 함께 한 윤영중 아나운서



 

앞줄 왼쪽부터 문복순, 박종세, 황우겸,

최만린, 박찬숙, 뒷줄 왼쪽부터 윤영중, 황인용,

이헤옥, 박민정, 이혜옥, 김규홍 아나운서


앞줄 왼쪽에서 첫번째 윤영중 아나운서


 

왼쪽부터 문복순, 탤런트 김민자, 최불암 내외분, 김규홍, 박찬숙, 황우겸, 윤영중아나운서



2011년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만난 1950년대 방송인들과 함게 한

 윤영중아나운서왼쪽부터 홍기욱, 조부성,

민병연, 김인숙, 윤영중, 오승룡님



 위진록 아나운서 출판기념회 (2013년 10월 19일)에서

옛 방송동료를 만나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뒷줄 왼쪽에서

두전째가 윤영중 아나운서이고 앞줄 왼쪽부터 음악평론가 이상만,

성우 유병희, 영화배우 최은희, 뒷줄 왼쪽부터 유병희님 딸,

윤영중 아나운서, 성우 고은정, 성우 천선녀님입니다.


위진록 아나운서 출판기념회 (2013년 10월 19일)에서

왼쪽부터 민병연,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가 함깨 한 사진.



 윤영중 아나운서 큰 언니 윤옥희님이

81살의 연세들어 수필문학 신인상을 수상

하던때 둘째 언니 윤정민님과 동료아나운서였던

 문복순님이 함께 참여한 시상식장에서 1950년대 방송인

보견심님을 만나 촬영한 사진입니다. 뜻하지 않게 오래전의

 친구를 만나반가움을 더했고 이 사진은 그 친구 보견심님이

촬영해 주셨습니다.  큰언니 윤옥희님은 올해 87세가

 되셨어도 수필문학가로 활동하십니다. 보견심님은

1950년 방송인 박진서님으로 따로 써 올린

글을 아래 연결했습니다.



윤영중 아나운서 가족과 함께





윤영중 아나운서에게는

1남 2녀가 있습니다.올해 54세의

아들 심재천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유엔

평화유지군 군사 옵서버로 활동하는 등 35년간

 대한민국의자랑스러운 국군으로 활약하다가 올 3월 말

(2016년) 예편했습니다. 아들이 대한민국 훈장을 가슴에

달고 예편 하던 날 84세의 윤영중 아나운서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했습니다. 손, 자녀 교육

등으로 멀리 뉴질랜드에 가있는며느리가 이 사진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도 늘 자랑

스럽고 행복하시다 하셨습니다.






큰딸     


 둘째 딸           과 함께





둘째 사위      와 함께

아래는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에

 재직했던 둘째 사위 와 함께 본사 벽에

 걸린 빌게이츠를 비롯한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들이 함께 한 사진 앞에서 촬영

 




6.25 첫방송 위진록 아나운서

방한 한국아나운서클럽 만잔장에서

2017년 6월 30일 한일관 압구정점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풋풋하고 청초했던 젊은 시절부터
완성을 행해 정진하는 황혼기에 이르기

까지 평생을 함께하신 직장의 동료들과 지금도

함께 교류하며 지내시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본이

 되실 분이십니다.   아직도 게획하시고 하실 일들이 많을

터이니, 이제는 속도를 늦추시고 건강하고 여유있게 즐기시며

걸으시기를 기대합니다. 한 개인의 걸어오신 길에서, 근무

하셨던 직장과   함께하신 분들 모두의 개개인의 역사

까지도 알게되니    이국장님께서 하시는 이러한

일들이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윤영중 아나운서 서예가 여송, 월정 정주상 선생님과 한국난정필회

http://blog.daum.net/jc21th/17782240


환구단과 황궁우, 옛 조선호텔, 윤영중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3051


방송사적으로 본 역대 여자 아나운서들 1926년부터

http://blog.daum.net/jc21th/17781609 

 

박진(朴珍)님, 방송극과 연극계 전설적 인물 박승진(朴勝進)

http://blog.daum.net/jc21th/17781597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윤영중 1950년대 방송.wma



 


??? 1950?? ??.wma
2.1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