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관악산송신소에 세워진 두개의 거대한 철탑! 이 철탑이 관악산 송신소가 대한민국 방송심장부임을 말해준다. 이 철탑에는 전·후·좌·우로 수많은 파라보라 안테나가 붙어있고 철탑의 제일 높은 곳에는 TV방송용 4다이폴 안테나가 있다. 이 안테나들은 제각기 방송신호를 주고 밭으며 시·청취자 가정은 물론 대한민국 각처에 있는 송·중계소를 통해서 그리고 해외방송망을 통해서 5대양 6대주 세계 방방곡곡에 대한민국의 방송전파를 내 보낸다. 사람의 심장에서 몸 전체에 핏줄이 이어져 생명을 이어가듯 관악산송신소는 전 세계에 방송신호를 전달한다. 1978년 8월 31일 개소로부터 38년, 거대한 바위덩어리 위에 송신소 철탑을 새우기 시작하던 그날로 부터 방송심장부로 자리매김한 오늘까지 관악산 송신소의 歷程을 본다. 위 머리사진 철탑은 처음 개소때 새운 52M이고 아래는 2001년에 새워진 48M의 디지털방송 송출용 철탑, 앞·뒷면을 각각 보여준 것이다.
민병서 초대소장 목소리로 듣는 관악산송신소 건설비화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pKDAw1GYypI
민병서 초대소장 목소리를 들으며 그로부터 3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18번째의 민성기 소장은 어려웠던 시기에 공사를 수행했던 선배들의 노고에 감탄사를 연발하는가 하면 80대가 되어 38년만에 스스로 건설했던 송신소를 찾은 민병서소장은 달라져버린 그 모습에 감동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관악산송신소 주조정실 모습이다. 양편으로 조정판, TV방송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는가운데 중앙에 큰 TV가 있음을 본다. 이 TV가 바로 차세대UHDTV다. 2017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에 들어 갈 예정으로 시험방송을 하고 있는데 현재 수상기가 시판되고 있어서 UHDTV 시험방송을 시청 할 수가 있다.
이곳 UHD TV 송신시설을 통해서 브라질 리우 올림픽 중계방송을 해서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2016년 9월 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밴션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방송의 날 축하연 식장 홀의 양편에 UHDTV 를 설치하고 화면을 보여 주면서 한국방송협회장이기도 한 고대영 KBS 사장은 이 텔에비젼이 가져올 미래를 역설했다. 1930년대 흑백TV가 출현한 이래 칼라 텔레비젼 시대를 거쳐 또 하나의 예고되는 TV혁명은 대한민국 KBS가 주도할 것이다. 지금도 관악산 송신소에서 송출되는 55채널을 통해서 이 방송을 시청 할 수가 있다.
관악산 송신소가 처음 건설되던 때는 국가비상사태 발생시 그에 대비한 예비시설임과 동시에 관악산 전파그늘에 가려져 방송 상태가 불량한 관악산 남쪽 지역에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보조적인 역할의 송신소였다. TV방송 5채널로 송출되는 1TV에 극초단파 라고 하는 30Kw 대 출력 UHF를 설치해서 북한방송의 방해전파를 배제함과 동시에 출력증강의 효과를 기하고 아울러 UHF링크를 구성 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국내에서 처음 설치된 관악산 UHF-1TV 송신기는 뒷날 2TV방송과 교육방송 으로 UHF방송망이 확장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1990년대부터 방송환경이 급격히 변해 디지털, 위성방송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상황에 접하면서 지대가 높은 훌륭한 입지조건을 지닌 관악산 송신소로 중심축이 이동되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수도권을 위한 방송은 물론 전국을 연결하는 링크망이 관악산송신소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오늘날 이 송신소 주요 업무, 기능은 다음과 같다.
관악산 주요업무를 알기쉽게 도표로 요약했다.
전국을 연결하는 그리고 세계로 통하는 방송링크는 관악산송신소를 통해서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악산 송신소는 무선 KBS 자영 M/W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어서 전국 각 방송시들 간의 링크가 가능하다. KT 임차 광 유선망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선을 통한 방송링크는 관악산과 연결되어 있어 결국 국내·외 모든 방송이 관악산 송신소와 통한다. 관악산의 역정을 요약했다.
1991년 백운학 7대소장과 김광일 8대소장의 이·취임때 촬영한 사진이다. 김광일 소장은 4년간 재직하며 임시로 설치되어 운영되던 가삭도를 정규삭도로 교채 건설했고, 서울대학교에서 끌어오던 임시 전기선로를 관악산 과천간의 전용선로로 교채했으며, 송신소건물을 오늘의 모습으로 증축하는 등 관악산 송신소의 새로운 모습으로 갖추게 되였다. SBS 송신소는 김광일소장 재직시 건설되었다.
KBS가 관악산 송신소 길을 닦은 이래 대한민국 방송사들은 제각기 송신소를 세워 오늘날에는 MBC, SBS 지상파 TV방송을 비롯해서 CBS, 극동방송, YTN, 교통방송, 평화방송, 불교방송, 원음방송 등 송신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도로가 없는 관악산 정상의 왕래는 KBS 삭도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연간 4만에서 5만 명이 이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관악산을 도보로 오르내리기 어려운 어른들이 관악산송신소 견학을 원하는 경우 이 삭도를 이용할 수 있다. 초창기 물이 없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중 파이프를 설치해서 물 문제를 해결했고 대량의 특수전기를 필요로 하는 송신소 운영을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과천으로부터 전용 전기 선로가 개설되었다. 공중 물 파이프나, 전용 전기선로 등 시설 하나 하나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복잡한 행정절차와 난공사가 수반되었다.
길도없고 먹을 물도 없었던 관악산 정상 620 미터, 거대한 바위덩어리 위에 또 하나의 방송역사 창조를 위해 첫삽을 뜨던 1977년 7월, 날마다 먹을 물통과 식량을 또는 도시락을 등에 짊어지고 걸어서 산을 오르내리며, 피땀 흘리며 공사를 진행하던 날 「잘하면 본전 못하면 질책」이라는 방송기술인들이 본전을 찾을 것인가? 질책을 들을 것인가? 마음 조이며 시작한 10Kw출력의 VHF 채널 5와 대한민국 최초의 UHF 그것도 거대한 30Kw출력의 광악산 송신소 건설공사, 1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방송이 나가던 1978년 8월 31일, 1인 단기로 1년전 공사에 나썼던 민병서 소장의 눈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불이 감돌았다. 그날 방송기술의 최고책임자 KBS 이인관 기술이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이인관은 감동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색했던 칭찬의 말을 건냈다 그순간 지난 1년간의 몸과 마음속에 싸였던 민병서의 피로는 모두가셨다.
오늘날 대한민국 방송의 심장 관악산송신소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2016년 9월 그때의 그 피떰 흘려 건설한 관악산 송신소 개설 초대소장 민병서, 오늘날 관악산 송신로를 지키는 열여 덟번째의 18대 소장 민성기, 관악산 송신소 증축, 삭도건설 등 중간 역사를 이룩한 1990년대의 김광일 8대소장, 이를 지켜본 방송 기술인이자 KBS사우회 회장을 지낸 정근춘, 그리고 필자 이장춘이 관악산 현장을 찾아 그 사실을 영상과 글로 써 기록으로 남긴다. 이날의 일정은 먼저 민병서 초대소장으로부터 KBS 관악산송신소를 처음 새우던 그때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입부에 민병서소장 육성을 동영상으로 올렸다.
이나라 방송기술인들은 늘 음지에서 일하면서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을지라도 방송의 역사를 개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鑛石시대로 부터 트랜지스터, 전자시대, 디지털 위성방송시대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피, 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방송의 새 역사를 이루었다. 그늘진곳,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방송의 역사를 써 왔다. 세상에 알리려고도 하지 않고 칭찬을 받으면 좋았지만 굳이 칭찬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사명감으로 그리 해 왔다.
필자는 기술을 「방송의 뿌리」라고 한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랄 수 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탐스러운 열매를 뱆을 수 있다. 그 뿌리는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 나무를 키우지만 그 뿌리를 알아주는 이는 그리 많지않다. 그 방송 기술인들은 쉼없는 방송역사를 창조 해왔다. 안방으로 들어오는 방송에는 기술인들의 고뇌와 피땀이 녹아 있다. 세월이 흘러 방송기술의 역할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그들은 여전히 음지에서 방송을 지탱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가고 있다.
사진으로 본 관악산송신소 歷程
정규삭도를 건설하던 때의 관악산송신소 전경이다. 이 삭도는 1977년, 관악산송신소 건설 기자재 운송용 가삭도로 임시 허가를 받아 설치, 운영되다가 1991년 정기삭도로 인, 허가를받아 개통해서 요즈음은 각종 장비의 운반과 산정에서 근무하는 모든기관의 근무자 출, 퇴근 용으로 활용되고있다
건물증축, 장비신설에 필요한 각종 건설자재는 헬기를 이용해서 추진했다. 무거운 500KW 발전기와 5" 헤릭스 급전선등 무게가 많이 나가고 크기가 큰 물건은 미군의 협조를 받아 시누크 헬기 로 옮겼다.
1991년 SBS 송신소가 신축되면서 KBS 관악송신소는 기존 건평보다 250 여평 더 증축되어 약 500 여평의 건물을 확보하게 된다. 그때의 관악산송신소 건물이 오늘날 까지 이어온다. 업무량은 엄청 증가 했지만 기자재가 디지털 시설로 바뀌어 크기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공간의 불편은 없다. 삭도나 전용 전기 선로도 이 무렵에 정상시설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좌측 철탑이 SBS, 중앙이 MBC, 우측이 기존 KBS 철탑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2016.09.11 00:25 방송 기술이 어떤 것인지는 전혀 아는바가 없지만 사진을 보니, 평지도 아닌 산 꼭대기에다가 흙도 아닌 바위 위에다 방송 송신소를 세웠다는 것은 참으로 애국심을 가지지 않고는 해 낼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야하지 않을까 싶군요.그시절 힘쓰고 애쓰신 분들의 피땀으로 세운 바탕위에 현재의 첨단 기술이 발전해 가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민병서 소장님은 피안도 억양이시니 고향이 이북 이실터이고, 한가위를 맞아 또 다시 고향생각 나시겠어요.
이복예 (케이양-카페운영) 선생님 글
2016.09.11 01:38
방송의 심장 관악산 송신소 어제와 오늘 ^^ 대한민국의 중심방송 아름다운 관악산에 우뚝솟아 온세계로 전파되는 미래를 지향하는 관악산 송신소 *^^* 높은산 나무와 바위뿐인 최악의 환경에서 ㅠ 얼마나 많은분들이 온몸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 보이지 않는곳에서 사랑과 희생을 쏟으신 흔적들과 ~ 지나온 발자국들이 작품속 곳곳에 생생하게 담겨져있는 너무나 아름답고 웅장한 관악산 송신소 ^ㅡ^;;
민병서 초대소장님 목소리로 듣는 영상작품 넘 멋지십니다. ^.^*^.^*밑에 올라있는 사진 ㅎㅎㅎㅎ 모두다 멋지십니다 ^^;; 방송에 있어서 기술은[방송의 뿌리] 라고 한다 ~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랄수 있고 아름다운 꽃을피워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수가 있다 ㅠ
방송의 뿌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곳에서 '
아무도 알아주는이 없고 ~ 칭찬과 대우도 없지만 ㅠ 한길만 걸어오신 님들이 계시기에 ㅠ 오늘날에 우리는 안방에서 즐겁게 방송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아름답고 멋진작품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김정희(문학인) 여사님 글 방송 보고 듣기만 했지 송신소방송 기술인들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치못했습니다. 방송기술인들이야 말로 애국자이십니다. 알아주는 이 없이도 어렵고 힘든일, 마다하지 않고 힘을 기울이는 그 모습 눈물 겹도록 고맙습니다. 이토록 보이지 않는곳에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시는 분들이계셨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음을 압니다. 오늘따라 춘하추동방송에 올라있는 여러편의 방송기술인들 얘기를 감명깊에 읽었습니다, 남산 송신소 최초의 건설얘기, 울릉도 TV방송을 처음 시청할 수 있게 되었던 얘기, 눈덥혀 길을 찾을 수 없는 산길을 개를 앞세워 사람이 끄는 썰매에 짐을 싣고 산을 오르는 모습 등등 이런 얘기들이 세상에 알려져야 합니다.
민병서 관악산 초대소장님! 80대라고 하시는데 어쩌면 그 젊은 목소리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대한민국 방송 기술인 여러분에게 진심으로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행복하심을 빕니다.
이영호 선생님 (미국 LA)
이 국장님, 그저 모든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송신소라는 개념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전파가 안방을 넘어
내 손안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훌륭한 시설도 시설이려니와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국장님의 상세한 르뽀가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
니다. 방송의 어느 모퉁이라도 늘 찾아가 소개해 주시는
국장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로스앤젤리스에서
이영호 배상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
<방송의 심장 관악산송신소>
전혀 모른다고 하셨는데, 나같은 사람도 50년 을 방송하러 다녔으나 기술을 잘 모르긴 매 한가지다. 단 한가지...신문과 방송을 두고 흔히 언론이라고하지만 1927년에 이땅에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이래 방송이 걸어온 역사를 보면 신문과는 단순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엄청난 어려움과 고도의 전파 과학 기술을 필요로한다는 점은 잘 안다. 50년이 지난 지금, 놀라울만큼 선진화되어 첨단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바, 그것을 해낸 사람들이 다름아닌......KBS의 전문가 군 바로 엔지니어들이다. 오늘의 KBS를 만든 분들은 바로 그분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화면을 보니 1960년대 후반 첫 발령지인 대구에서 근무 할 때 부터 잘알고있는 존경하는 안진홍 소장님, 백운학 소장님, 김광일 소장님등 낯익은 얼굴들이 감동적으로 클로즈업되어온다.
KBS 기술인들이 두뇌와 땀으로 일구어낸 방송사상 최고 최대의 역사(役事)인 <관악 송신소>, 비 기술인이면서도 기술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오랜기간에 걸친 연구와 기술 축적의 산물, 고지에 쏟은 땀방울, 그 고통과 보람을 춘하추동방송을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SNS에 담아 세계의 시청자에게 선보인 쾌거이자,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국장>께서 이루어내신 방송문화적 업적이다.
KBS는 영원하다
남초 이정부
윤송남 선생님 글
선배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죠? 보고 옛날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송신소 부지 선정때 이계복 선배와 둘이 걸어올라가 연주암 주지를 조찬길 선백님의 사고 나던일, 유재철 소장시 정전이되어 뛰어 올라가던일들이 사진을 보면서 필림처럼 스처 지나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성화 (1964년 tbc '밤을 잊은 그대에게' 최초방송담당) 아나운서님
저는 오늘 이 글을 열었습니다. 몇달 전 문득 방송 엔지니어가 느닷없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제가 1980년 11월30일 TBC 마지막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할 때 '김명제'엔지니어가 늘 FM카를 . 함께 탈 때였습니다. 그때 주조정실과 말을 주고 받으면서 차를 "조금 뒤로 빼"라던가 '여기를 돌아서 조금 앞으로 갑시다" 할 때 무심했지요. 마이크 넘어올 시간은 가까워오는데 차를 자꾸 움직이라고 하기에 "왜?"냐고 물으니 "전파가 직선으로 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하나의 상식으로 넘겼고 그 후 수십년이 지난 어느날 왜 그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생각의 꼬리에 제 머리속에는 '과학자가 문학인이다.'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인식이 뇌를 뱅뱅 돌더라구요.
말을 아무리 잘하고 글을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과학자의 두뇌에서 돌고 있는 복잡한 회로를 말이나 글로서 그들이 현시해 주는 것같이 표현할 수 있겠는가 . . 이런 우문을 갖는 제가 스스로 우습기도 했습 니다. 그런데 머리속에 있던 말은 나오기 마련인지 어느날 저녁 식탁에서 "여보 난 요즘 갑자기 과학자가 문학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했더니 '?.."하는 표정이길래 "사람들은 과학인 들이 대체적으로 현란한 말에 무디다고 들 하지만 아무리 천재 예술가들이라고 해도그 과학을 말이나 글로 그만큼 직접 절달 돼는 기술이 있다고 해야할 까?" 했습니다.
물론 나도 답이 나올 것이라고 기 대하지 않았고 나는 감성적으로 주장한 것이고 지식은 빵점인 것을 잘알고 있기에 서로 반찬에 젓가락이 갔지요. 춘하추둥방송 이장춘국장님께서 몇달전 이런 생각을 가졌던 저의 과학 존경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있는 감동적 인 취재를 올려주셔서 감사한말씀드립니다. 방송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인 지식을 가지시고 열정으로 이런 귀한 역사를 알려주십니다. 더욱 건강하시면서 또 좋은 발굴 기대하겠습니다.
이장춘 답글
올려주신 글들 모두 본문보다 더 훌륭한 글을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성화 아나운서님 글에 대해 답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과찬까지 곁들여 주셔서 몸둘바를 모릅니다. 이선배님은 오랜세월 방송하시면서 프로듀서도, 앤지니어도 많은 접촉을 하셨지요. 제가 엔지니어 분들을 접하면서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그리고 그분들은 머리와 손놀림으로 놀라운 일들을 하시지요. 엔지니어 분들더 그것을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기시라고 권유하면 글로는 못 쓰신다는것이여요. 왜 못 쓰시느냐고 여쭈어 보면 글 열줄만 써도 앞, 뒤가 바뀌어 본인이 얽어보아도 무슨 말인지룰 모르기 때문에 글을 쓰실 수 없으시다는 것이여요.
잘 하시는 선배님이 계셨어요. 말씀 하시는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시면 훌륭한 기록이 될것이라며 글로 남기시기를 권유 했더니 제 권유에 못이겨 '지금 기록을 남기고 계신다.'는 얘기를 하신 선배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님이 어느날 세상을 뜨셔서 그 아들 딸들에게 아버지가 그런 글을 쓰고 계신다고 하셨으니 찾아 보라고 했더니 아무리 찾아도 그런 글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이 모자라는 저라도 그런 기록을 말로라도 들으면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 해 보려고 하는데 생각 뿐이지 저도 이것 저것 하다보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kcs23_2000 선생님 글
2016.10.22 12:00 관악산 송신소 멋지고 웅장하고 서울 수도권 지상파 KBS MBC SBS EBS 메인 기간송신소 로서 서울 경기 인천지역 의 지상파 방송국 DTV FM DMB 기간 송신소로서 수도권 일원 충청권 일부 서비스 라고 대단하네요 1978년 8월 31일 KBS TV 1R FM 개국 시작으로 30년의 넘게 수도권 일원 서비스 과거에는 관악산중계소 지금은 송신소로서 관거예는 남산 시대 지만 지금은 관악산 시대라고 하죠 남산신호가(전파) 가 관악산에 의해 가려져 경기 남부지역 난시청이 발생되는 이유 로 2000년대는 중계소 에서 송신소 명칭이 변경 되었으면 KBS DTV 3개 매체 FM 6개 매체 DMB 3개 매체 MBC DTV 1개 FM 1개 매채 DMB 3개매체 SBS DTV 1개 매체 FM 2개매체 DMB 3개매체 총 TV 6개 매체 FM 8개매채 DMB 20개매체 등 과 CBS FEBC TBS BBS WBS PBC 등매체 등 을 송출하고있습니다.
남산 mbc fm 군fm 교통방송 등은 남산에서 송출중입니다. 과거 중계소 이지만 수도권 전파의 효휼성과 방송 권역 확대 난청 및 난시청 지역 축소 로 인해 kbs 남산 에서 kbs 1fm kbs 2fm kbs 2r fm 송출 했지만 지금 관악산 송신소 로 이전 하여 송출중입니다 수도권 매인 송신소 로서 톡톡히 이제는 남산 시대가 아닌 관악산 시대 라고 합니다.
구능회님 글 2021년 5월 5일
민병서(閔丙瑞) 선배님은, 제가 KBS에 취업할 때 중앙방송국 기술부 중계과 지방계장이셨던 '윤은상(?)' 계장님의 후임으로 오셔서, 고지 TV중계망을 확장하고 이를 운영하는데 노고가 참 많으셨지요. 선배님이 초대 '관악산중계소장'을 역임하셨다니 저도 덩달아 감회가 깊어집니다. 당시에 제가 근무하던 미륵산, 무등산, 식장산 TV중계시설등에도 민선배님의 땀방울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선배님과 함께 고지 TV중계망을 유지 보수하는데 유재철, 정성호, 정근춘 선배들께서 도 함께 애쓰신 것을 저도 종종 고지 현장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오늘의 방송기술 발전과 성장에 있어 남모르게 현장에서 고생한 분들로 기억합니다. 세월이 흐르니 인걸(人傑)들은 점점 늙어 가시면서 혹은 이미 고인이 되신 분도 계시니....^^ 하기사 당시 20대 초였던 저도 7학년 시절을 살고 있으니...ㅠㅠ
그저 무정 세월 속에 녹아든 그 노고를 역사가 얼마나 기억하게 될지...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1961년 12월 남산송신소 KBS TV VHF CH9 송출 시작 1969년 8월 8일 MBC TV VHF CH11 송출시작 1971년 9월 MBC FM 91.90Mhz 개국 남산 1979년 4월 KBS FM 93.10Mhz 개국 남산 1978년 8월 KBS 관악산중계소 KBS 1R FM KBS TV 송출 1986년 4월 19일 MBC TV MBC 표준 FM 시작 관악산중계소 송출 1991년 12월 sbs tv 개국 1996년 11월 sbs 파워fm 107.70mhz 개국 1999년 1월 sbs 러브fm 103.50mhz 개국 sbs dtv 개국 2001년 kbs dtv 11월 방송시작 2001년 mbc dtv 12월 방송시작 2005년 지상파 kbs mbc sbs dmb 개국 2007년 kbs 1fm 남산 에서 관악산 송신점 이전 2010년 kbs 2fm 남산에서 관악산 송신점 이전 2012년 9월 uhd tv 실험방송 시작
김창석 선생님 글
관악산송신소 건설 과 방송이 나오기 까지 보이지 않는곳에서 관악산 그 높은 고지에서 공사하기는 어렵고 열약한 환경에서 지상파방송의 난시청 및 난정지역 줄이기 위해 피 땀 흘린 모습 은 정말 옛날 송신소 나 중계소 공사가 이렇게 했구나 하고 알수 있습니다. 민병서 초대 관악산송신소 소장님 생생한 육성 은 그 고생과 노고를 알수있습니다. KBS 에 역사의 발자취 로 기록 남았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의 관악산 송신소는 KBS MBC SBS EBS 지상 4사 와 더불어 종교 교통 방송 매체를 서울경기 인천 지역 일원 과 충정일부 지역 서비스를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국 심장 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남산보다 높고 서울 및 경기남부 지역 지상파 방송국 서비스 매인 기간 송신소 그 중심의 관악산송신소 있습니다. 관악산송신소를 위해 공사의 힘써 고생하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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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관악산 송신소 40년 아날로그 시대에서 위성 디지털방송시대로
KBS TV방송시작(1961년)과 방송 엔지니어들, 공영방송 글 김동식. 표정훈 교수, 김종화 http://blog.daum.net/jc21th/17782730
KBS TV 남산송신소와 남산타워
2016년 8월 31일 관악산송신소
개소 38주넌을 맞아 역대 관악산 송신소
소장님들과 정근춘 KBS사우회 전 회장님이
관악산송신소를 찾았습니다. 8대소장 관주
김광일님 블로그에 그날의 얘기가 있어
다음은 그 글을 인용했습니다.
17대 조찬희, 13대 성광용, 12대 정원구, 10대 유병민, 5대 조성탁, 전사우회장 정근춘,
현18대 민성기, 초대 민병서, 3대 최용순, 9대 김종수, 8대 김광일. 관악산송신소 역대 소장
1대 민병서 77. 6 ~ 78. 7 2대 유재철 77. 8 ~ 79. 6 3대 최용순 79. 5 ~ 81.11 4대 정성호 81.11 ~ 86. 9 5대 조성탁 86. 9 ~ 89. 1 6대 안진홍 89. 1 ~ 90. 1 7대 백운학 90. 2 ~ 91. 3 8대 김광일 91. 3 ~ 94. 8 9대 김종수 94. 8 ~ 98. 4 10대 유병민 98. 4 ~ 01.12 11대 박태규 01. 1 ~ 04. 8 12대 정원구 04. 8 ~ 06.12 13대 성광용 06.12 ~ 08.12 14대 김윤택 09.01 ~ 10.06 15대 손성준 10.06 ~ 12.06 16대 오영식 12.06 ~ 15.04 17대 조찬희 15. 04 ~ 16.05 18대 민성기 16. 05 ~ 이 동영상은 위에 있는 동영상과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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