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박경환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장춘 2016. 7. 23. 12:47



박경환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랜 세월 방송을 해 오신 박경환 선생님께서

향년 90세로 2016년 7월 22일 밤 세상을 뜨셨습니다.

박경환 선생님은 1947년 8월 4일 KBS중앙방송국에 입문한

 이래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출전 런던올림픽 중계방송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그 올림픽이 끝나던 다음날1948년 8월 15일 오전에

시행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실황을 중계 방송했는가 하면

 그날 두시부터 실시된 서울시청에서 안국동까지의

국군 시가행진을 중계방송 했습니다.

,

6.25 마지막방송을 마치고 1950년

6월 28일새벽 한강의 폭음을 들으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한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습

니다.  박경환선생님은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KBS

기술본부장,  대통령 임명초대 KBS 이사를 지내셨고

방우회, KBS사우회, 문공회 원로회원이십니다.

.

강남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3호에

 빈소가 마련되어 있고 장례는 7월 25일

아침 7시입니다. 선생님, 국가 유공자여서

 이천호국원으로 가시게 되었니다.


빈소 사진은 방우회 노익중 이사님께서

촬영 해 주셨습니다.








박경환님! 대한민국 방송기술의 산증인






1947년부터 1992년 제1기

KBS 민선이사 3년 임기가 만료 될 까지

45년이라는 긴 방송생활을 통해서 중요한 현장

에는 박경환님이 계섰습니다. 님의 방송인생의 많은

 부분을 중계방송과 함께 했기에 방송의 산 중인임과

 동시에 역사의 현장을 보아온 증인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중계방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정부수립 경축실황이나

 비록 현장에는 가지 않았지만 최초의 해외

중계방송런던    올림픽 중계방송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김구선생님 장례실황, 서울 운동장 등에서

열린 각종 스포츠 중계방송, 1958년 경부역전 마라톤과

경인역전 실황 중계방송,  4시간이나 진행된  5.16 시가행진, 

1968년 멕시코 올핌픽으로부터 연이은  1972년 독일 뮌헨,

 1976 캐나다 몬트리오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현장에 파견된

올림픽 중계방송 1976년의 고리 원자력발전소 기공식,

1978년의 준공식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굵직

 굵직한   중게방송은   박경환님의

손을 거쳐 실시되었습니다.

 

 

1. 김영길, 3.최서영 단장, 4.최계환 아나운서 5.박경환 엔지니어.

 8.원종관 아나운서, 9.조성민, 11. 박세호 기지입니다

 

 

방송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하지만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 수 있도록 까지의 기술적인

일들은 엔지니어가 하는 일이고 그 중에서도 중계방송은

오랜세월 박경환님의 책임하에 이루어 졌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최후일터가 된 당진송신소건립 책임자

 (본사 국장급)로 임명되기전 까지 중계방송 현장에는

늘 박경환님이 계셨습니다. 중계방송과정에서 겪은

 일화도 많지만 1948년 정부수린되던날에 있었던

일화 한토막을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시설장비나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던 시절 중계방송의 준비에서

부터 실시까지는 온 장신을 모두 쏟아 부어야 되는 시점에서

 오전의 건국행사 경축식 실황을 마치고 오후 2시부터 실시되는 시가행진

중게방송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경기도 경찰국 호출을 받았습니다. 바로 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중계방송을 목전에 두고 그리 할 수는 없었

습니다. 중계방송을 마치고 경찰국에 가보니 경축식 실황을 중계방송 해야 할

KBS가 북한방송을 종계방송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모른 박경환님이

그 경위를 알아 보았더니 경찰이 주파수를 잘 못 맞추어 이북방송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은 경찰에 있었습니다.  970Kc (Kz를

사용하기 전이었음) 제1방송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그

인근에 있는 북한 주파수에 맞추어 놓고

방송을 들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최후 일터!

당진송신소 준공실날 박경환님은 그

당진송신소 소장으로 재직중이었습니다. 그날의

준공식 행사를 성공리에 마친 박경환님이 다음날 세벽  

박정의 대통령의 비보를 들었습니다. 박경환님은 소래 송신소장,

 KBS 기술총국 조정국장을거쳐 기술총국장을 겸한 기술이사가 되었고

직제가 개편되면서 가술본부장이 되었습니다. 집행간부직에서 떠난 뒤에도

 1989년 민주화된 방송제도 하에서 최초로 실시된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사가 되어 KBS 최고 의결기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일생을

 방송기술과 함께 한 박경환님은 6.25방송의 공로로

 국가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이밖에 사제한 사항은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강교 폭파현장을 목격한 6.25참전 유공방송인 박경환님

http://blog.daum.net/jc21th/14921087

 

1950년대 60년대 HLKA 라디오 중계방송과 중계방송 차

http://blog.daum.net/jc21th/17781112

 

중앙방송국의 6.25 마지막 방송과 피난길

http://blog.daum.net/jc21th/17780099

 

6.25 한국전쟁과 제주방송국의 탄생

http://blog.daum.net/jc21th/17780107



박경환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영섭 방우회 회장님.  이정오 방우회 사무총장님

노익중 선생님, 민순혜 선생님, 최철미 선생님, 정항구 선생님

배진수님, 김학님, 김영우님, 조부성님, 전봉찬 KBS사우회장님

서종환 문공회 회장님, 전영우님, 엄복영님, 이일로님, 김길회님,

광남순님, 임춘규님, 정용섭님, 계원준님, 권영원님,

황인우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편집장님



정근춘(KBS사우회 전회장) 선생님


대한민국의 방송사에
큰 족적을 남기시고 영민하셨습
니다. 영전에 머리숙여 깊은
애도의 뜻을 올림니다  

雲泉


정인호 선생님 글

      

안녕하세요. 저는 박경환 할아버지의

 손자 정인호라고 합니다. 우연히 이 블로그를

발견하게되어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게되었습

니다.할아버지 발인은 25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이천호국원으로 정해졌다는것을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애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복예 (카페 운영-케이양) 선생님


방송의 역사, 박경환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고통없는 하늘

나라에서 편희쉬세요


 

임연희 (팝가수) 선생님



박경환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경희 (스무고개 박사) 선생님



박경환 선생님 영전에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이경희 올림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남겨진 가족들과 동료, 후배들에게

 그리움으로 남기시고 영원한 길로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서림 (원로방송작가)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서림 合掌  



여운억선생님 (CBS사우회)



박경환 선생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성화 아나운서님


방송사에 큰 족적을

 남기시고 먼 나라로 가신 분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이정부 아나운서



최근 제 자신의 일로 겨를이 없어,

오늘 아침 오랜만에 카페에 들렀다가 박경환

 선배님 서거비보를 접했습니다. 카톡을 열어보니

이장춘 선배님께서 문병을 가신다던 날이 7월22일이
었는데, 다녀오시던 날 저녁에 세상을 뜨셨군요. 남산

 연주소 이래, 방송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한국 방송

기술의 개척자 박경환 선배님! 부디 아름

다운 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삼가

 고인의 몀복을 빕니다. 

  
아나운서 이정부 드림



윤송남 선생님


박경환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7월 23일(토) 오후 4시쯤

 다왔는데 선배님들이 많이오셨더군요.
더운날씨 선배님 건강 조심하세요.



한영신 선생님



박경환 선배의 소천을 애도합니다.

온화하고 인자한 선배이셨는데 부인을 저 세상에

 보낸후 노후의 독거생활에 고생이 많으셨던 탓인지 몹쓸

병마를 이기지 못 하시고  먼저 가신    박경환 선배님!

고이 잠 드시라!   「死とは生ある者の免れない

運命である」と、古人が言ったそうな。     



 

초기 TV중계방송 요원 (번호따라 1.이만희,

2.오승룡, 3.홍대규, 4.박상수, 5.박경환, 6.윤은상,

7.김장식님)중계방송차 앞에 섰습니다. 가운데는

그 시절에 중계차에서 사용되던 TV카메라입니다.

 



모두 함께하는 방우회 춘하추동방송

 

 

강남달 기악.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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