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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최학수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이장춘 2016. 2. 15. 22:07

 

 


방송인 최학수 선생님께서 2016년

2월 6일 세상을 뜨셨습니다. 1950년 6월 국방부

보도과에 근무하던 최학수 중사는 6.25 발발과 함께

KBS가족과 생사를 같이하는 운명적 인연이 되었습니다.

장대같은 여름비가 쏟아지던 1950년   6월 27일 밤부터 28일

새벽까지 적의 조명탄이 하늘을 날고 총포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가운데 추럭 쓰리쿼터에 비상 방송장비를 싣고 한강을 건너려는

찰라,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도보로만 한강도강이 허용

되어 방송장비를 실은 화물차는 길가에 버려지고

뿔뿔이 해어져 한강을 건너면서 한강폭파

 현장을 목격하며 생사를 갈랐습다.



방송인 최학수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방송인들과 함께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서 피난짐을 풀었다.    3개월이 지나

9.28 수복으로 서울에 돌아왔지만 인해전술로 밀려

오는 중공군 앞에서 다시 방송국 피난짐을 쌌다. 뿔뿔이

해어졌던 1차 후퇴 때와는 달리 2차 후퇴때는 다소의 시간을

 갖고 후퇴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국방부 책임자는 홍천중위와

최학수 중사였다. 전쟁으로 밀려가는 마당에 모든것이 여의치

 않을 때였다.   최학수 중사는  그래도 방송인들은 모두 함께

피난길에 올라야 된다는 일념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뒷날 최학수 중사는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학수 중사의 6.25 후퇴 후일담



중앙방송국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군 장비 (자동차등) 가 필요 했는데

군 지휘부에서는 방송요원으로 아나운서와 엔지니어

밖에 인정 해 주지 않았다. 명단을 작성 해 보니 37명이었는데

이 인원으로는 도저히 방송국직원 전체를 철수 시킬 수 없고 그렇다고

 군 지휘부의 설득도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37명으로 결재를 받은 후

나는 37이라고 쓰여진 위에 1자를 더 써 넣어 137명으로 고쳤다. 군사재판에

회부 될 각오였다. 왜냐 하면 중앙방송국의 가까이 지내던 편성이나 서무직원들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137명으로 늘여놓고 보니 중앙방송국의 임시직원까지

다 넣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중앙방송국의 1.4후퇴는

 원활하게된 것으로 믿는다. 최학수중사의 얘기를 인용 했다.





최학수 중사는 전쟁이 끝나고 소속을 방송국

으로 옮겨 방송인이 되었다. 텔레비젼 무대계장, 춘천

방송국 방송과장 보도부 차장(행정서기관),  등을 역임하다가

 KBS가 공사로 발족할 무렵 문화공보부로 옮겨 고위직에 재직하다가 

 퇴직, 오랜 세월 문공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건강이 나빠져 5년여에

 걸친 요양생활 끝에 2016년 2월 6일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 2월 9일

동작동 서울 현충원 충혼당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오랜 투병생활로

 연락이 잘 안되고 또 설을 끼고 있어서 동료들에게는 연락이

 되지 않아 가족들끼리 조촐한 장례식을 치루웠다. 


장례를 마친 딸 최선경님이 미국으로

돌아가 사후에라도 알릴 분에게는 알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필자에게 전화가 왔다. 옛 동료 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라 꼭 알려야 할 곳에 연락 올리고 이 글을 올린다.

최학수선생님은 화랑무공 훈장, 홍조근정훈장등을 수상했다. 오래전

부터 필자와 얘기를 나누어 온 딸 최선경님은 필자의 연락처를 알고

 계셨지만  설도 끼고해서   미처  연락을  못하신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분들, 아버님에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하셨다.



최학수선생님 생전 화보

 



  1965년 12월 제3공화국 수립 공로표창을 전수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으로

그때 공보부장관의 감사패를 전달받은 조대진 춘천문화원장과 인근 군부대장이

함께 했다. 왼쪽부터 필자 이장춘, 김영우, 최학수 방송과장, 조대진 문화원장 이은경

아나운서, 두사람 건너 한승은 춘천방송국장. 이용실 기술과장. 이범진 기자.

 

 



1966년 전속가수를 선발하고 찍은 기념사진

김영우님, 최학수방송과장, 이용실기술과장, 윤병찬기자,

정경래 아나운서, 이장춘과 새로 선발된 전속가수, 전속악단이

같이 한 사진이고 아래는 1967년 2월 2일 사농송신소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찍은 사진으로 홍민기님(왼쪽 첫번째) 방송

국장 장기범님 (왼쪽 세번째)을 비롯해서 두번째 이용실

(기술과장), 네번째 최학수 (방송과장) 차례로

방영호, 이한동, 천기태, 윤병찬님


 



유경환 (유카리나)여사님 글



  정말 다급한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재판이라도 받을 각오로 인원의 숫자를

 늘려 고쳐서라도 더 많은 방송인가족을 구출해 내신

크나큰 용단을 내리신 어른이 계셨군요. 감동입니다.
문득 엊그제 개성 공단에서 급작히 철수하신 기업인들이 떠

오릅니다. 큰 보람된 일을 하고 가셨으니,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여기의 사진에는 거의 국장님 젊은시절

모습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고 최학수 선생님과의 추억이

정말 많으셧을거 같아서 국장님의 애석함이 더하시리라

생각되는군요.그래도 장수하셧고, 누구나

 다 갈 수 박에 없는 길을 더나셨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김헌수 선생님


평소에 그렇게 아껴주신던 최학수선배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니 슬품에 받쳐 하염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명복을 빌어 올립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
하실줄로 믿습니다. 이세상에 계실때 찾아뵙지 못함 하나의
변명이 되겠지만 .............평소 사랑주시던 마음으로
용서 이해하셔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 이웃동네
현충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최선경(딸)님이 김헌수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김헌수 선생님께  아저씨 라고 부르며

따르던 철부지 중학생 시절 뒤에 너무긴 세월이

흘러 아버님께서 떠나신 후에야 옛 이야기를 듣고 아저씨 

목소리를 듣게 되었네요. 생전에  기회를 만들어 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할 뿐입니다. 보내주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큰

 위로가되어 보고 다시 보고 했어요. 주말엔 아버님이 항상 대견해

하시던 아들아이의 둘째 아이  돐이라서 이제야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아침이면 집 가까운 미국 교회에 가서 아버님을

위해 기도를 바치지만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햇살이

시린 가슴을 더 아프게하고 아버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하네요. 


 제게 보내신 영상처럼  세상의
 모든

다 내려 놓으시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주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기를 기도하면서 잘

지낼께요.   김헌수 아저씨!  아버지의 추억안에 함께

하신 소중한 인연이셨던 아저씨,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신 이장춘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최 선경 올림



이복예 (게이양 -카페 운영자) 선생님 글



방송인 최학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님은 우리들곁에

안계시지만 님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과

모든 흔적들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아

언제나 함께할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없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 ㅠ 방송인 최학수 선생님

영원토록 사랑합니다 귀중한 작품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국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늦게 나마 방송인 최학수 선생님!의
 명복을 비옵니다. 아버지의 부음을 알려 주신
 따님 최선경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6-70년대시절
 요직에서 방송활동을 하셨군요. 저는 행정 공무원이였기 때문에
 기술, 예능분야인  방송계는 잘 모르지만, 방송계에서 초창기에 
 하셨던 분들의 노고가 정말 많았구군요. 육 이오,동란,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십단위 숫자앞에 1,자를 더 붙여,백단위로
 기록하여  많은 직원들을 탈출 할 수 있게 해 주셨다니  그 대담성과
의협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 집니다.  젊은시절 이장춘 사장님의
 모습을 또 볼수 있는  영광과 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장춘 국장님!...


이동식 선생님 글

저는 공사4기 기자 이동식입니다.
얼마전 춘천시에서 옛 KBS방송국자리를
 다른 용도로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아
아마도 없어졌을 것 같은 저 청사 앞에서 찍은
 선배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저도 1977년 9월 초년병 기자로서 춘천에
 내려가 저 청사에서 근무하면서 선배들로부터 수업도 받고 훈련에
혼도 나고 했던 기억(물론 선배들이 잘 해주신 기억은 너무 많아서
 못씁니다)이 새로운데 당시 선배들이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그래도
 얼굴에 웃음이 넘치시는 걸 보면 정다운 가족처럼 오손도손
잘 일을 하며 지내신 것 같습니다. 최학수 선배를
알게 된 것도 고맙고 옛 사진을 올려주셔서
 더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경 (Kristln Park-최학수 선생님 큰 따님)선생님



존경하는  이장춘 선생님께 ,
  소중한 자료와 귀한 사진들을 통해
 어려운 시절의 자취와 소중한 인연이셨던
분들을 기억하며 지낼 수있게 해주신 선생님의
 노고에 마음속으로 늘 감사드리면서도 인사 한번
 못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저의 아버님 생전의
사진들과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고 가슴에
 남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장춘 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최선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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