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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방송역사와 곽규석, 최동욱, 이종환, 박인희 디스크 자키 disk jockey

이장춘 2016. 2. 16. 20:50

 



최동욱! 우리나라 DJ 창시자로 불린다.

동아방송 PD였던 최동욱이 1964년 10월 5일

‘3시의 다이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DJ’라는 이름으로 첫 방송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DJ방송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방식의

DJ 방송 프로그램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960년대 70년대

DJ 방송 프로그램의 주축을 이룬 것이다. 81세가 된 최동욱선생은

지금도 인터넷방송을 통해서 종일방송을 실시 하고 있다. 필자가 2015년

마지막 가던 12월 23일 KBS사우회 여성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최동욱선생의

현장 "DJ’를 접할 수 있었다. 1960-70년대 DJ스타 최동욱 선생을 초빙해서 연

'힐링교실‘에서는 “팝 콘서트”, 방송형태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쌍방대화형식과

희망곡을 현장에서 3초 만에 즉시 듣는 새로운 포맷의 DJ를 접할 수 있었다.

50년대 후반 60년대 중반의 뮤직 홀 붐60년 대 후반 70년대 음악다방 붐

70년대 초 뮤직 살롱 붐 - 디스코 클럽 (디스코 장 고고장)  이날

 최동욱의 DJ 형식의 “팝 콘서트”는 이들 형태와는다른 새로운

형태의 공개 음악방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DJ 방송역사와 곽규석, 최동욱, 이종환, 박인희 디스크 자키 disk jockey



DJ 방송의 역사는 방송형태나 내용,

개념은 다소 달라도 방송의 역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있어왔다고 할수 있다. 방송이 있는 곳에

 음악이 있고 그 음악의 해설이나 또 일기예보 등 간단한

 공지사항, 생활정보, 스퍼트 등이 함께 방송되었다. 녹음방송

이전의 생방송시대에는 디스크 없이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생방송으로 진행되었기에 disk jockey는 아닐지 몰라도 

그런 형태로부터 발전된 것이  뒷날  라디오 전성

시대를 화려하게  수 놓은 DJ의 초기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된 나라의 방송국에서

다발 다발 꽃다발로 시작되는 ‘꽃다발’

프로그램은 일제강점기를 넘어 우리방송을

시작한 이래 최초의 disk jockey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그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제작 진행 하신 분은

 안서 김억선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부를 수 없었거나 부르기

 어려웠던 노래를 싫고 그 사이에 자작시를 비롯해서 주옥

같은 시 그리고 정겨운 얘기를 담아 방송했다. 



 1950년대 문복순 아나운서 진행 희망음악회



 1950년 KBS 주요 음악프로그램으로

‘희망음악회“ 프로그램이 있었다. 청취자들로부터

희망곡 엽서를 받아 사연을 엮어 음악과 함께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의 여성 아나운서는 오랜세월 그 프로그램과

 더불어 큰 인기를 모았다. 필자가 방송국에 들어오던 시절 1963년

라이트 뮤직 등으로 엮어 아침 출근시간을 전후해서 방송되는

 ”오늘도 명랑하게“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는가 하면 하루 중의

가장 중요한   낮 12시 뉴스가  끝나고 방송되는

 ’노래의 꽃다발”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청취자들로부터 받은 희망곡 엽서의

사연을 들려주기도 하면서 생활주변 얘기나

정보, 에피소드 등 다점 다감하게 엮어가는 것이다. 

  청취자들의 희망곡을 사전에 엽서로 받아 사전 준비를 하고

선곡해서 생방송으로 보내리는 경우도 있고, 녹음방송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나운서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성우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disk도 부족하고   여러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어서 그런 방송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기서 한발자욱 나가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은 프로그램이 CBS기독교방송에서

 1961년에 실시한 ‘KY 달려라“ 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기독교방송이 많은 disk를 확보하고  그시절 인기를 모아가던

 ”후라이 보이 괵규석“ 을    등장시켜    인기몰이를  해 나갔다. 

 지금까지 아나운서나 성우가 사전에 준비된 원고나 엽서 등으로

 이어가던 프로그램이 청취자가 전화로 참여해서 푸는 음악 퀴즈

프로그램으로 이색적인 프로그램이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이얼 Y를 돌려라" 전화를 통한 희망곡

 신청과 즉석 대화로 엮어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가능성을 열었다. 





1961년 말 서울 MBC의 개국으로부터

본격적인 상업 민영방송시대가 열린다. 최초의

상업민영방송은 부산 MBC였지만 지역에 위치한 방송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1960년대 민영방송이 본격화되면서 경쟁의 시대가

도래 하고 각 방송국마다 개성 있는 프로그램의 편성에 힘을 기울였다.

여기서부터 1964년 동아방송 0시의 다이알이 편성되고 최동욱이 등장

하면서 DJ라는 새로운 방송형태가 탄생했다.  영, "0시의 다이얼"은 대

 성공이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3시의다이얼"이 편성되었다. 사람들이

 잘 듣지 않던 낮방송시간이나 심야 방송시간을 살려 낸 것은

 동아방송국의 이런 프로그램이 공헌한바 크디.





동아방송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으던

 최동욱은 방송국을 TBC동양방송으로 옮겨간

 뒤에도 동아방송은 박인희 등 인기 DJ를 등장시켜

 그 인기를 이어갔다. 최동욱이 동양방송으로 옮겨가 진행한

 팝전문 프로그램 “탑툰쇼” 그리고 그 시절 심야 프로그램 이종환이

 엮고 임국희 아나운서가 낭독한 “한밤의 음악편지”, 동아방송의 심야

 프로그램 김세원의 “밤의 플랫폼” 지금도 그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다. DJ를 얘기하면서 이종환을 빼어놓을 수는 없다. 

 MBC 「한밤의 음악편지」 이 프로그램에서 

이종환과 임국희는 하나였다.





그로부터 이종환은 프로듀서로,

DJ의 큰 별로, MC로 활동하며 각 방송사에서

그의 역량과 목소리를 들려주며 후예를 양성하는

 등 본인이 할 수 있었던 2011년까지 방송을 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해어날 수 없는 병환으로

2013년 5월 30일 고인이 되었다.   

 자세한 얘기는 아래 연결했다.





2015년 12월 23일에 필자가 만난

최동욱선생!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KBS에서

재직하다가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인터넷방송을 했다.

10년간 이어기던 미국의 인터넷방소을 접고 국내에 돌아와 

10년간 인터넷방송국을 운영한다. 어려움이 많아 중단 하려고도

했지만 청위자들의 욕구로 중단이 어렵다고 했다.  4시간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녹음해서 5회를 재방송하면 종일

방송이 되어 하루 종일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최동욱이 인터넷 방 홈에 가면


<< 인사의 말씀>> 

 

www.radioseoulkorea.com

‘동아방송.com’ /‘라디오 서울코리아’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이 방송은 음악 전문 웹 라디오

방송으로 24시간 명곡만을 방송하는 월드 클라스의 인터넷

라디오 미디어입니다. 이 방송은 품성을 중히 여기면서 서정생활을

즐기시는 청취자를 위한 헌신적 정신으로 방송의 품위를 존중하는 한국

유일의 본격 웹 라디오입니다.   누구나 이 미디어에 접속하기만 하면 시간

제약 없이 무제한 청취가 가능합니다. “오늘의 방송내용”, “오늘의 넘버 원”,

 “연도별 Top 100", "공고”를 열어 보실 수 있습니다. 또 “라디오 서울코리아

소개” “최동욱 칼럼” “알고보니 사전” “최동욱 저술산책”등도 자유스럽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희망곡 신청, 자유게시판 (회원 사랑방),

사랑회 전용방 그리고 회원 오피니언 등   회원전용실을 이용

하시려면 회원에 가입 (무료)하시면 됩니다. 좋은 음악과

 더불어 여러분의 윤택한 정서 생활의 샘이 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아방송.com

라디오 서울코리아

라디오 서울-USA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DJ방송의 개척자 최동욱, 최창봉을 통해 본 DJ방송 50년 Disk Jockey 반세기

http://blog.daum.net/jc21th/17782808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얼마전 일요일 아침 KBS 1TV에서
방영하는 '울림'인가하는 사회 각 전문분야의
 원로들을 모셔다가 진행하는 프로를 보며, 그 정정하심이
 놀랍웠던 최동욱 PD선생님이시군요. 긴긴 세월을 한결같이
 자신의 길에 몰두하시고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시는 그 힘은
 음악과 함께하셔서인 듯 합니다.      사랑의 AV.음악회에도 늘
참석하시는 것으로 알고있는데건강 잘 유지하시고, 음악과
 늘 함께하셔서 오래도록 100세 시대의 어른으로서
 여러 음악 애호가들 곁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시기를 기원합니다.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한밤의 음악편지, 오늘은 여기서

작별을  고 합니다." 이종환 임국희" 였습니다.
학창시절 밤을 잊게하고, 별과 사랑을 그리워 하며,
사색의 구름다리를 늘 건너게 했던 잊지못할  프로 여서,

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 프로그램과   이 종환,임국희 두

진행자의 이름은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이종환 씨가

 고인이 된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시는 군요.
곽규석님!은 코메디언,으로 더 유명 했고. 임국희씨는 지금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이시지요.옛날 명성을 날리셨던

 분들 소식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

     


이복예(케이양-카페 운영자)선생님



모두가 잠든고요한 밤시간에 겨듣던

라디오 FM 채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한밤의

음악편지 ..별이 빛나는밤에 ..잔잔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팝송음악과 다정다감했던 목소리의 이종환씨 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서 들려오는것 같습니다 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70년대에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음악다방에서 좋은

노래도 많이듣고...마냥행복해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후라이보이 곽규석 코메디언 선생님 ..항상 환하게 웃으시고

 인물도 잘생기시고 무엇보다 너무나 말도 빠르게

 하시고  배가아플정도로 많이 웃었던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ㅠ


힘들고 배고픈 시절이였지만 그래도

 님들이 계셔서 ..웃을수 있었고 ㅠ 행복했었

답니다 ㅠ DJ 방송역사와 곽규석, 최동욱 ,

이종환,박인희, 임국희,디스크자키 disk jockey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들의 가슴에서 잊혀지지않는 영원한

스타들이십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ㅠ 이종환

 선생님 소식을 듣고나니 가슴이 찡합니다 춘하추동방송에

 오시면 흘러간 역사와 시대마다 빛났던 유명한 스타들의 모습도

 볼수가 있답니다 곳에는 행복과 기쁨 ..승리의

감격과 ..슬픈사연과 눈물 ㅠ ..영광의 얼굴들 . 멋지신

분들의 사연들 ..시대마다 역사를 한눈에

볼수있는 모든 아름다운 정보가 다들어 있는

큰대형 백과사전과도 같은 곳입니다

  ^.^*


아름답고 멋진 춘하추동방송

 영원히 사랑합니다 ^ㅡ^;;귀한작품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사랑의 AV음악회에서



최동욱.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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