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3월 21일 명동의 국립극장이 개관 되던날 KBS TV는 이 실황을 중계방송했다. 이것이 KBS TV가 방송국 스튜디오를 떠나 실시한 최초의 중계방송이다. 방송을 실시한지 두달 만의 일이다. 아직 중계방송차도 없던 시절 직원들의 통근버스에 중계방송 기계를 실고 가 남산을 향해서 파라보라 안테나를 설치하고 현장에 카메라 한대를 설치해서 중계방송을 하던 모습을 본다. 현대적인 방송시설이 실려 중계방송 차가 바로 방송국인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 이고 그것이 바로 54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그 시절의 우리들 자화상이다. 그 국립극장 개관식 실황을 떠 올리며 국립극장 66년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았다.
국립극장 66년 KBS TV 최초중계방송 명동국립극장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시절 공연예술의 불모지 대한민국에 국립극장이 처음 마련된 것은 1950년 4월 29일로 아세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치진, 홍해성, 이해랑, 전관용 등 민족문화의 선각자들은 해방과 더불어 민족예술을 키워나갈 공연장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 시절! 가장 훌륭한 공공 공연시설 ‘부민관’을 국립극장으로 하고 국립극단을 창단 해서 초대 국립극장장이기도 했던 유치진선생님의 작품 ‘원술랑.’을 허 석 연출로 국립극장 첫무대에 올렸다.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일주일간 공연된 원술랑은 서울인구 40만이던 시절 4만의 관객을 동원해서 대단히 높은 호응도를 보여주었고 곧이어 공연된 유치진 연출 ‘뇌우’는 6월 6일 부터 15일까지 10일간 8만의 관객을 모으면서 문화예술에 목말라 하는 국민들의 목을 축여주었다. 국립극장이 문을 열던 때 동아일보 1950년 4월 30일자 사설社說 일부를 올렸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곧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활동이 중지되었다가 전쟁 중 국가의 공공시설로 쓰던 대구 문화극장에서 1952년 12월 15일부터 그 맥을 이어갔다. ‘대구문화극장’은 그 시절 피난지에서의 문화예술의 전당이었다. 이 국립극장이 서울로 돌아와 명동에 있는 대지 505평, 건평 749평, 객석 820석의 3층 건물로 된 시공관(市公館) 에서 맥을 이어간 것은 1957년 6월 1일부터다.
1961년 12월 31일 남산에 TV방송 문을 열도록 한 오재경장관은 문교부 소속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국립극장을 공보두로 받아들이고 곁방살이 하던 명동 ‘시공관’을 새로 단장해사 아예 국립극장 전용시설로 바꾸어 1962년 3월 21일 그 개관식을 갖은 것이디. 36살의 젊은 나이로 공보실장이 된 오재경은 남산에 방송국을 새로 짓고 을지로 입구에 원각사를 세워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을 마련했다. 충무로에는 국내외 인사들을 접대하며 민속 문화를 전파하는 한국의 집을 마련하는 등 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오재경장관은 어렵던 국립극장을 공보부로 받아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 시절에는 KBS나 국립극장 모두 국가기관인 공보부에 속해 있어서 오재경장관이 책임자로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국립극장 개관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오재경장관의 모습이다.
이로부터 TV시대가 본격화되기까지 연극계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다. 아직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연극은 극장의 영화와 더불어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문화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필자가 연극다운 연극을 처음 본 것은 이 무렵이다. 1964년 박만규 연출의 '만선'이라는 연극이 있었다. 필자가 관심 깊게 관람했던 그 만선의 주인공 박근형은 요즈음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친근함을 보여준다.
그 시절 국립극단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도 출연해서 인기를 모았다. 백성희, 장민호는 6.25전으로부터 방송과 연극계를 넘나들다가 TV시대에 TV방송에도 등장했다. KBS와 중앙 정보부가 공동제작해서 방영하던 1960년대 부터의 인기드라마 ‘실화극장’프로그램을 위해 최불암과, 오지명은 1966년 KBS 탤런트로 특채되었고 오현경, 이순재, 김영옥 등은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 HLKZ에서부터 연극배우임과 동시에 TV탤런트였다.
이 밖에도 신구, 전무송, 이호재, 김석훈, 김진태 등 국립극단 소속 배우들이 많았다. 1957년 부터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옮기기까지 명동 국립극장은 연극의 산실이었다. 1969년 KBS교향악단이 국립극장으로 가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운영된 적도 있지만 1 981년 다시 KBS로 돌아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KBS교향악단으로 운영된다.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의 남산 언저리로 옮기면서 그 폭이 확대되었다. 원래의 국립극장 본관은 ‘해오름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청소년 하늘극장, 달오름 극장, 별오름 극장 등이 마련 되었으며 1982년 5월 15일을 기해 야외놀이마당도 열렸다.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이전되기에 앞서 1973년 5월 국립발레단과 국립합창단을 창단했고 1995년 1월 1일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했으며 2000년 2월 1일 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은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국 립극장의 예술 창조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의 문화 참여와 복지를 증진하며 나아가 우리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실천기금으로 2003년 4월 재단법인 ‘국립극장진흥재단’ 이 설립되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더 자세한 사항은 KTV 국민의 방송에서 제작한 국립극장 60년에 관한 동영상과 국립극장홈에서 옮겨온 국립극장의 연혁 그리고 안호상 국립극장장 인사말을 올리는 것으로 가름한다.
안호상 국립극장장 인사말
국립극장을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 공연장이며, 공연 예술의 산실인 국립중앙극장을 방문하고 계십니다. 국립극장은 1950년대에 탄생하여 6 · 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 66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국내 공연예술계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 니다.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3개 전속단체들이 특성에 맞게 한국 전통 예술의 현대적 재창조와 세계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2010년에는 공연예술박물관도 개관해 과거와 미래 한국 공연의 모습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방문객 여러분. 국립극장은 여러분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사시사철 특색 있게 아름다운 서울의 중심 장충동 남산 기슭 국립극장에 직접 오셔서 숲의 향기도, 예술의 향기도 즐기시기 바랍니다.
국립극장 연혁
국립극장에 대한 모든 진실~! 60주년(2010) 기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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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TV중계방송 그때 그 모습, 국립극장 개관식 1962년 3월 21일 http://blog.daum.net/jc21th/17781281
사진과 기록으로 본 부민관에서 세종문화 회관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488 장민호님 ! 방송 마이크 앞에서, 연극 무대에서 보낸일생 http://blog.daum.net/jc21th/17780781 연극인 백성희 (본명 이어순) http://blog.daum.net/jc21th/17782733
한양도성 역사탐방 (11) 남산 길 광희문 장충단 http://blog.daum.net/jc21th/17781861
1958년의 작품 유치진 작 "한강은 흐른다"를 끝내고 시공관에서 출연진이 함께한 사진. 전세권님이 제공한 사진 으로 전세권님을 비롯해서 이해랑, 장민호, 박상익, 강계식, 조향, 한은진, 박암, 김형중, 황정순님등 이름있던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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