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KBS사우회보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장춘 한국방송史 자료의 보고

이장춘 2015. 10. 14. 04:14

 

 

 

2015년 9월 3일 제52회 방송의 날을 맞아

KBS사우회 회보 특별기획으로 이장춘의 춘하추동

방송잦기로 해서 8년간의 아나운서와 32년간의 선생님을

마감하면서 KBS사우회보 편집위원을 맡은 채영신박사와 KBS촬영

기자로활약하다가 정년퇴직하면서 역시 회보편집위원으로 일하게 된

박재헌기자가춘하추동방송을 잦아 얘기를 나누고 9월 1일자로 뱔행된

 KBS사우회회보 161호 9월호에 다음글을 싫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올렸습니다. 사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제161호 사우회보 2015년 9월 1일(화요일)

                                                                  취재 채영신 편집위원

                                                                  촬영 박재헌 편집위원

                                                                   

 

만나고 싶었습니다

 

 


방송의 날이 있는 이달 9월에 만나고

싶은 인물로 춘하추동방송이장춘 회우를 만났다.
이 회우가 운영하는 춘하추동방송 블로그가 10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 인기 있는 불로그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단다. 오늘의 블로그가 있게 해 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춘하추동방송 10주년 기념으로

 판을 하라는 분도,  더 확대해 보라는 분도 많지만 지금 주어진

이 순간 최선을 다 할 뿐이라고 했다. (채영신 편집위원)

 

 

인터뷰하는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회우와 채영신 편집위원

 

 

한국 방송사(史) 자료의 보고,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회우

 


- 그동안 KBS 여러 분야에서 일해오셨는데


 

1963년,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하여

 36년간여러 직종, 여러 곳에서 일했습니다.

공사가 창립되던 1973년 여덟 사람으로 구성된

공사 창립실무위원회 일원으로 기초 작업을 닦았고

 공사발족 후 새 직제에 따라 기획관리실 관리부 차장

으로 일했습니다. 그 후 전산정보실장, 제주방

총국장, 업무국장 등을 지냈지요.


- 공사의 기초작업을 했던 그 때 관리부에서

 했던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그때 관리부에서는 직제, 인사규정,

 취업규칙,정원, 표준제작비 지급규정 등 공사의

틀을 짜는 모든 법규를 만들고 국영방송 운영체계를

공사체계로 바꾸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했습니다. 도 단위

방송체제 확립, 계열사 관리 등이 기획되고 추진

되어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지역 방송국과 라디오 중계소는 물론

지에 있는 TV중계소를 돌아보며 업무를 파악했
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도 없던 시절, 기술인들이 고지와

고지를 연결해 가며 전국 TV방송망을 확충했지요. 고지의 TV

송·중계소는 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오르내리며 먹을 물을

 구하기위해 고생하는 모습, 눈 쌓인 고지에서

 고생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 그런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웠습니까?


우선 예산이 지원될 수 있도록 했고

공사 임원, 간부들이 1년에 한번이라도 현장을

찾아 그실정을 알고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로하도록

는 행사를 건의해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춘하추동

방송 글을 쓰는데 그때 보고느낀 상황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엔지니어 출신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 많은 분이 춘하추동방송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춘하추동방송을 계획하게 된 동기는?

 

제가 KBS사우회 부회장을 할 때 서병주

회장께서 사우회는 움직여야 하고 문화사업도

해야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우회

 회보도 나오고, 홈페이지도 만들어 졌으며 중국어교실,

컴퓨터교실 등이 신설되고 중단 되었던 서예교실을 다시

 열었습니다.     사우회 창립기념일도  그때 정해졌고

 KBS 건물안에서 총회를 열고 KBS 안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 한 것도 그때입니다.


저는 그 당시 회원들의 마음의 끈을

연결 해 주는 방법으로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면서 회원들의 이메일을 모아 사우회 소식과

 함께 쓴 글을 회우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춘하추동방송 명칭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이름이 장춘(長春)이어서 흔히

긴 봄이라고부르고 일 년 내 봄이라는 뜻으로

 춘하추동이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블로그를 열면서

그 이름대로 「춘하추동」 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넷 상

로그인데 어느 날, 이정부 아나운서가 쓴 「청사없는

 방송국, 연봉 없는 이장춘 방송국장」이라는 댓글을 본

 춘하추동방송 방문객들이 「이장춘춘하추동방

송국장」 이라고 해서 붙여진겁니다.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 소중한 방송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던데요?


이 나라 방송사의 기원을 이루는

노창성, 이옥경 선생의 따님 노라노 여사를

비롯해 많은 분이 보내주신 방송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올리고있습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그 분들 성함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모아진 史料는 이 나라 방송을

 연구하는 학자, 학생들도 활용하고 방송사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어서 흐뭇합니다.


- 방문자 수와 조회 수는 하루에 어느 정도며 반응은?

5년간 글을 쓰던 엠파스가 없어지면서

2010년 2월부터 Daum에서 글을 썼고 방송역사를

위주로 정선해서 썼기에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이 하루에

1,000여명, 조회 수로는 2,000 ~ 3,000건이 됩니다. 또 많을

때는 10,000 ~ 20,000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호주, 동남아 등 세계 각국에서 소식과

료를 주고받는 보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주시는 분 모두 고마울 뿐입니다.


- 2012년 Daum 우수블로그로 채택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70대가 쓴 블로그가 우수 블로그로 뽑혔다는

 것에 놀랐고 또한방송역사를 다루는 특수 분야 블로그가

 우수 블블로그 채택된데 대해 Daum 사이트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다듬었습니다. 춘하추동방송을

 시작한지 10년이 된 지금가장 기뻤던 일 중의 하나입니다. 


- 매일 매일이 분주할텐데 평소 건강비결은?


 

허약한 체질로 태어난 저는 일생 동안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 왔습니다.  재직 시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등산이나 조깅을 했고

두 시간 정도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산책하며

간단한 맨손운동을 개발해서 규칙적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 춘하추동방송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오랜 세월 확인되지 않았던 옥사자 한 분을

던 중 2012년 이종익이라는 분으로부터 ‘본인이

13살 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용수를 쓴 이근창 선생을

보았고  얼마 후 그 분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중요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 길로 이근창 선생 재판기록

 공적을 확인해서 국가 보훈처에 상훈신청을 냈고

 독립운동 옥사자로 판명되어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 이휘웅은 71살이 되어 아버지를 대신해

훈장을 받았지요. 그날 KBS는 그 실황 중계방송은

 물론 밤 9시 등 뉴스에 크게 다루었습니다. 이렇게해서

항일단파방송 옥사자 이근창 선생이 68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오늘 이장춘 회우님이 걸어온 길과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 대해서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채영신 편집위원
사진 : 박재헌 편집위원

 

 

 

이가인(미국 LA 보나 이혜자) 선생님 글

 

 

위 글을 본 보나 이가인 선생님이

미국에서 이메일을 보내주시고 "이가인

기다림"카페에 JPG로 변환해서 원문을 올려

 놓으셨기에 글과 함께 원문을 옮겼습니다.

 

 

이장춘국장님께 !!

 

 기사내용을 읽고 감동되어

 이 국장님과 인연될 수 있었음에 진정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방송인으로 평생 몸담아

 해오신 일에 대한 자긍심과 아직도 해야 할 일을 찾아

다니시며 KBS 방송국 전 현직 직원 개개인의 자료를 세세

하게 수집하고 계시는 국장님 !! 보물창고인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그 자료를 목록별로 편집해 놓으시니 우리나라

방송역사에 소중한 자료로 남겨지게 되리라 생각하니

 우리나라 방송인들의 기쁨이 아닐수 없습니다

 

한국 방송계에 꼭 남겨야할

  역사를 가득 안고 계시는  "영원한

 KBS 춘하추동방송 이장춘국장님!!!"

내내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이가인 <이혜자> 배상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2013년 3월쯤에 우연히 인터넷 검색에

 종묘제례악을 검색하다가 들어오게 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입니다. 기사를 읽다가, 종묘대제에서 '초헌관'을 하신

 적이 있는 이왕가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며, 더욱이 연세도 있으신 분이

이토록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계시면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블로그

운영을 하고 계심과, 블로그 내용을 통하여 제가 공부가 되는 것이 많아서 출석

하기 시작한지 만 2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춘하추동방송을 통하여 얻어진

방송국, 역사,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자료 등등 모르고 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으며, 더욱이 국장님께서 오카리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고, 한 코너를 꾸며주시니 저로서는

 정말정말 큰 영광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춘하추동 방송의 위력으로,

이번에는 제가 소식이 두절되었던 친구를 35년

만에 찾았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것도 태평양건너에 주소와 연락처까지 받아서 통화하고,

 e-mail로 주고받고, 카톡으로 수시로 연락을 하며 잃었던 우정을

 다시 나누고 있답니다.   미국에 계신 김영우 아나운서님과 미주

한인방송인연합 회장을 역임하신   송현식 회장님의 도우심이

 큰 힘이 되었다고 국장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축하드리고,

감사드리며 저는 지금처럼 이 춘하추동방송에 열심히

 출석하며 세상과 역사에 대해 공부하며 춘하

추동방송과 함께 하려합니다.

 

 

 

이장춘 2015.10.14 15:24

 

 

3년 가까운세월! 참으로 이토록

깊은 인연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유여사님의 발길이 잠시라도 멈추시

왜? 일가? 궁금증이 마음을 가득 채우니 세상에는

 이런 인연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늘 즐겁고 행복하심을 기원합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근무를 마치고 막 집에 들어와서 이 기쁜 소식을

 접하고 답글을 씁니다. 요 며칠전 생각치도 않았던 좋은

 모임(항일 단파방송 물방비 제막 기념식),에 이장춘 사장님!이

 저를 초대 해 주셨습니다. 처음으로 단둘이 앉아서 둘만의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세월아 가지마라 너만가지 나는못가, 춘하추동방송  

시작한지 어언십년, 언제나 같이한 분들 너무너무 고맙소!" 황진이 시,를

 변색 하여 이장춘 사장님!이     불친들에게 하는 인사를 대신 하여 보내 드립

니다. KBS 9월호 사우회 회보!에서 이번에는 깊이 간직한 보물(이장춘 사장님)

끄집어 내신것 같습니다. 취재중 불로그글을 책으로 발간 하시라 하니 그냥 이대로가

 좋으시단다. 매일 매일 대하는 블로그,이지만 늘 새로운 소식들이 감추어져 있어서

 언제 꺼낼지 몰라 조바심 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서남북 세계곳곳, 소식을

춘하추동, 으로 보내 주시는 고마운 이장춘 사장님1 저에대한 배려와 관심에도

늘 어깨가 무거워 집니다.  이 글을 계기로 KBS 사우회의 무궁한 발전과
이장춘 사장님!의 건강과 비상, 을 기원 드립니다. 함께 하는 즐거움

분에 넘치는, 불친 팔방미남 윤후현 드림!^0^ ^0^ ^0^

 

 

┗이장춘

 

이장춘 Y 2015.10.15 00:23

비가오나 눈이오나 찾아주시는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날마다 써 주시는 길고 깊은

 내용의 글을 담아주시면서 벌써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서 세월이 흘렀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심을 기원합니다.

 

 

 

 

낙화유수 남인수.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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