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광복 70년 해방의 날 1945년 8월 15일 그때 그 시절 방송과 노래

이장춘 2015. 8. 14. 19:53

 

 

그날로부터 꼭 70년이 흘렀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경성방송국에서는

 일본천황의 항복목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 일본

천황은 신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신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항복의

목소리를 전한 것이다. 그날 경성방송국에서는 그 방송을 듣기위해 조선

방송인들과 일본방송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2시가 되자 누군가가

「기립」하는 구령을 웨치고 그 구령에 따라 모두 일어서서 그 방송을 

들었다. 그날의 방송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확실치는 

않았어도 일본천황의 항복 목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광복 70년 해방의 날 1945년 8월 15일 그때 그 시절 방송과 노래

 

 

조선방송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일본방송인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절망의

 긴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조선방송인들은

일본말로 된 천황의 목소리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방송을 내

보냈다. 포괄적으로 표현된 항복문서를 이해하기 힘든 국민들을 위해

 알기 쉽게 해설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후 4시에는 조선 사람들끼리

 스튜디오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며 얼싸 안았다.   오랫동안

 부르지 않았던 애국가 가사도 잘 모르고 곡도 잘 맞지 않았지만 힘차게

불렀다. 올드랭 사인 곡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 얼마불러보고

싶언던 노래였던가? ....

 

 

 

 

 

8월 16일 조선방송인들은 일찍이

방송국에 출근했다. 잘 다듬어진 큰 판자 한편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먹을 갈아 큰 글씨로 SEOUL RADIO

 STATION이라는 현판을 써 걸었다.    지금으로부터 일본의

방송이 아니라 조선의 방송이다.   그때까지 한사람도 없던

방송기자를 아나운서중에서 한사람  임명해서  현장취

 보냈다.   형식도 없이 문서도 없이 조선방송인들이

보는 앞에서 제2보도과장 이혜구는 구두로 기자를 

임명해서 현장취재에 내 보낸 것이다. 대한

민국 최초의 방송기자 문제안이다.

 

 

 

 

그날 대문 형무소가 열리고 옥살이를  

하던 독립운동가 들이 옥문을 나와 시가행진을

 벌렸고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며 얼싸 않았다. 맨 앞줄 팔을 걷고 깃발을 높이올린

분은 해외에서 들려오는 단파방송을 들어, 독립운동을 도와 오다가

경찰에 잡혀 옥살이를 한 경성방송국 기술자 성기석이라고 했다.  

1945년 8월 격적인 해방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지각변동에 준비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신문이

 폐간되었고 어제까지 발행되던 일본신문, 통신도 없어

다. 급하게 마련되어 발행된 그날의 통신에는

 

 

「해방만세」

「자유만세」

「독립만세」

 

 

밖에 없었다.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외침의 감동들 담아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통신에

더 이상의 말 을 쓸 준비가 없었다. 이것이 해방 될 때의 모습

이었다. 방송국에서는 해방된 나라에서 새로운 입이 될 방송국을 서로 

자기 편으로 하위해 방송국을 드나들며 갈등을 빚는 가운데 9월 15일은

 방송국이 자체적으로 임시 지휘체제를 갖추어 협회장에 이정섭씨가 되고 경성

중앙방송국장 이혜구, 서무부장 김억, 편성부장 김진섭, 방송부장 이계원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또한 미군이 방송국을 접수하면서 방송이 하루 가까이 중단된

날이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군은 1945년 10월 1일 조선방송협회

(38선 이남의 10개의 방송국을 포함)의 일본인 직원과 간부는 

모두 파면되고 새로 조선인으로 선임했다.

 

 

會長代理 李晶燮

庶務課長 權泰雄

總務部長 李晶燮

技術部長 韓德奉

 

 

 

 

 

경성방송국장 이혜구 편성과장 김진섭

방송과장 이계원, 업무과장 김억, , , 되찾은 나라의

 방송 프로그램이 새롭게 편성되면서 시와 노래를 엮어 방송하는

“꽃다발”,   소설낭독 진주 탑” 어린이 시간 “똘똘이 모험”, 공개방송

“스무고개” 등등 조선의 방송!     조선 사람을 위한 새로운 형식에 새로운

내용이 담긴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었다. 조선의 방송국 차장 안서 김억(시인)

 못 불렀던 노래와 억눌렸던 시를   마음껏  부르고 읊을 수 있는 프로그램 다발다발

「꽃다발」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 애국가, 봉선화, 그리운

강남, 황성옛터, 새야새야 파랑새야,  따오기 등등 민족의 얼이 담긴 그 노래들

김천애, 이인범, 김형로, 김자경, 이관옥, 송진혁, 고정익, 이상춘, 마금희,

이정희, 김혜란 등 성악가들은 민족의 노래를 불러 국민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의 자존심을 심어나갔다.

 

 

 

 

 어느 40대 젊은이가 필자에게

“해방 될때는 어떤 노래들을 많아 불렀을

까요.” 하고 묻기에 그 얘기를 해 주었다. 그 젊은이가

 이어 말하기를 “뜻밖이네요, 가요를 많이 부르고 방송 했을 줄

 알았는데요."  얘기를 더 이어갔다, "물론 가요 그 시절 황동했던 남인수,

김해송, 이난영, 백년설, 장세정, 신카나리아, 이화자, 왕숙랑, 고복수, 황금심,

김용환, 김정구, 이인권, 백설희, 심연옥, 현인, 송민도, 이런분 들이 부른 가요가

많이 방송되고 불려 졌어도 그런 노래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자유롭게 불린 노래들

이어서 그동안 부르고 싶어도 자유롭게 부를 수 없었던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야

말로 나라를 되 찾은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 넣으며, 또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그 노래들이 감동적으로 불려 졌지요,  애국가 더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봉선화 설한풍에 시달려 형체가 없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일제가 물러가면) 환생하노라.........

 

.........일제강점기 설한풍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일제가 물러가고 나라가 환생 했으니 얼마나

 감동적으로 이 노래를 불렀겠습니까? 그리운 강남! 재비의 다리가

상해서 강남에 갔던 재비가 봄이 니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가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줄넘기 놀이 등을

할 때는 이 노래에 맞추어 재미있게 멋지게 놀았습니다. 그동적인 노래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민족과 함께 불려오던 가요와 함께 조선인의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라고 필자는 대답 해 주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어느 방송사

 40대의 젊은 프로듀서와 나눈 대화여서 혹시 필자의 말이 인용되어

 광복 70주년이 되는 날 방송될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방송, 방송드라마가 거의 없던시절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똘똘이 모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다같이 즐겨들으며 꿈을 심어갔다. 지금도 그시절에

 방송된 똘똘이 모험함께 방송소설 김래성작, 이백수 낭독의 진주탑을

 기억하며 시절을 그리는 분들이 계신다. 광복 70년! 그 70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식민지에서 갓벗어난 가난한 변방의 나라,  거기에 또 전쟁으로 나라가

잿더미가 되는 비운을 겪으며 커온 대한민국, 이제 세계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함께 하는 대한민국, 위성방송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상이 

되었어도 역사속의 그날, 1945년 8월 15일 해방, 광복의

 그날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다.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국장님의 춘하추동방송은
청사없는 방송박물관임을 실감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국장님의

 춘하추동방송에 들려서 필요한 자료들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글

 

 

36년간 일제의 수난에서 벗어난

 광복 70주년! 1945년 8월 15일그때 그 시절

방송과 노래, 잘 들었습니다. 한 많은 민족의 설음을

잊고 해방 후 대한민국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 했지요.
그 중에서도 방송문화의 발달은 말 할것도 없고요. 그날의

생생했던 모습들을 안방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여러분! 춘하추동방송!이 해방당시의 자료들을 발굴,
보존 하셨다가 지금 공개 해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

 

 

관련 글 보기

 

 

춘하추동방송 카테고리 "해방공간의 방송" 에서

몇편의 글을 연결했습니다. 영문자를 클릭하셔요.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던 날 & 초대내각,1948년 8월15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9

 

광복 70년 해방의 날 1945년 8월 15일 그때 그 시절 방송과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2576

 

이승만 건국대통령, 독립운동

http://blog.daum.net/jc21th/17781841

  

동영상, 일본 히로히토(도) 항복 목소리와 항복문서 1945년 8월 15일

http://blog.daum.net/jc21th/17781127


해방 전후의 방송 이면사 송영호님 (해방전후->군정) 

http://blog.daum.net/jc21th/17781617 


해방 후 최초로 선임된 전국 방송국 책임자

 

 

해방정국의 방송국, 미 군정청 접수와 방송고문단

 http://blog.daum.net/jc21th/17780914

해방공간의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과 그 시그널 음악

http://blog.daum.net/jc21th/17780897

 

 해방 후 첫 3.1절 행사 그때 그 감격과 ! 중계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363

 

해방 첫 돐을 맞던 때 1946년 8월 15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7

 

태극기! 애국가와 함께 중앙청에 처음 펄럭이 던 날 1946년 1월 14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6

 

이승만박사, 김구선생님 환국과 해방정국, 그때의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16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09

 

남. 북 분단 비극의 싹 8.26 북한의 남한방송 일방적 중단

http://blog.daum.net/jc21th/17780911

 

해방전야의 정세와 경성방송국에서 있었던 일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904

 

경성방송국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1 )

http://blog.daum.net/jc21th/17780898

 

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2 )

http://blog.daum.net/jc21th/17780169

 

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http://blog.daum.net/jc21th/17780902

 

1945년 광복의 날을 맞은 경성방송국, 그 최후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905

 

 해방정국의 최대 이슈 신탁통치 소용돌이와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21

 

군정 3년간 실질적인 통치자 존 하지장군 (John Reed Hodge)

http://blog.daum.net/jc21th/17780915

 

문제안 선생님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8.15 해방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164

  

 

 

 

 

 

 

 

 

천 황 항 복 한중광님의 글 중에서 2015년 8월 11일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지 70년이 됩니다.  日本 宮内庁은

戦後70年을 맞아 오늘(2015뇬 8월1일) 昭和日王의

 이른바 [玉音放送] 録音原盤과 音声을 처음 公開했습니다.

音盤은 終戦 전날인 45年8月14日 深夜、宮内省内廷庁舎에서 録音

했습니다. 日本放送協会(NHK) 技術職員이 録音機를 操作했으며 録音은

 2번 했는데 음반 5장에 나누어 수록되었습니다.    다음날 (8월15일 낮12시)

NHK放送은 이들 음반을 사용해서 "무조건 항복"내용을 방송했습니다. 放送에

 사용한 録音原盤은 宮内庁이 戦後에 管理하다가 75年5月 NHK総合放送文化

研究所에 빌려주었으며 現在는 NHK放送博物館에 展示・保管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음반은 관리를 잘못해서 再生不可能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공개된 음반 5장은 상태가아주 좋은편이며 중대발표에 임하는 曰王의

슬픔에 잠긴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린다고 관계자는 말합니다.

이 음반들은 모두 디지털 작업을 끝냈습니다.

녹음의 길이는 4분30초.

 

 

 

 

 

8월2일 밤9시

 

 

KBS뉴스에서 음반공개에 대한

뉴스를 보도헀습니다. 한편 최근에 비교적

선명한..이른바 '옥음방송'을 듣고 황거 앞에서

 엎드려 눈물 흘리는 모습을 최근 발견했습니다.

 

 

 

 

 

광복 70.wma

 


광복 70.wma
2.2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