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성화 아나운서와 이장춘의 만남 관악방송 스튜디오

이장춘 2015. 6. 29. 21:41

 

 

 

이성화 아나운서! 1959년 최초의 민영방송

부산 MBC 개국 아나운서이기에 우리나라초의

라디오 민영방송 아나운서다.  서울 MBC 개국 아나운서이자

 RSB 라디오 서울 개국 아나운서이고 동양 TV개국 때부터 방송을

했으며 담당하던 로그램 역시 그시대라디오 청취자, TV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의미를 지닌 아나운서이기에 오래전

부터 춘하추동방송에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이성화

아나운서가 관악방송에서 프로그램 진행맞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서 만나

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성화 아나운서 생각은 좀 달라서  춘하추동방송에 관한

 얘기를 방송하고 싶었고 청사없는 방송국 연봉엾는 이장춘 방송국장 10년

세월 무료봉사 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성화 아나운서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는 뒤로 미뤄지고 춘하추동방송에 관한 얘기를

 하기로 해서 지금 듣고 계시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이성화 아나운서와 이장춘의 만남 관악방송 스튜디오

 

 

이 방송은 다음주 월요일(2015년 7월 13일)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FM 100.3Mhz로 방송되고

  오후 3시부터  4시에 재방송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관악방송의

 양해를 얻어 오늘 이 방송 프로그램 전체를 올렸다. 관악방송은 FM과

동시에 인터냇에 올려 전 세계인들이 청취 할 수 있는 방송으로 거듭나고

있다.    춘하추동방송에 올리면 이 역시 세계인이 청취 할 수 있게 된다.

관악방송에서 이성화 아나운서가 진행을 맞고있는 '쾌지나 청춘' 이라는

 한시간 프로그램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  오프닝- 노래- 생활의 지혜

 - 생활 건강- 까지 1부로 진행하고 2부로 ~ 인생은 아름다워~

20분으로 편성되어 는데 지금 듣고 계시는 이성화

아나운서와 필자의 방송은 「인생은

아름다워 프로그램이다.

 

얘기중 세곡의 음악이 삽입 되는데

 바로 엊그제 남인수 전곡 감상회가 있었던지라

 그 곡중 감명깊게 들었던 무정열차와 우리 가요사상 최고의

힛트곡이라고 불리는 1965년 이미자의 힛트곡 동백 아가씨를

골랐고 이성화 아나운서가 박해영의 레몬트리를 선곡해서 삽입했다. 

 이성화 아나운서와 필자의 얘기가 끝나고 생활의 지혜 - 생활 건강 프로그램

에는 특이한 분 두분이 참여해서 그 녹음광경을 모두 목격하면서 애기도 듣고

사진을 촬영했다. KBS 1TV 오전 8시 반부터 방송되는황금연못고정 케스터

남금희 여사와 국내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케나다 유학을 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김세희 양이 출연해서 유익하고 흥미있는 내용으로

 진행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날때 까지 듣고왔다.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녹음중인 이성화 아나운서와 프로듀서 벅현숙씨,

박현숙씨는 프로듀서이고 기자이며 기술도 겸하고 있었다.

기자 박현숙 명함 뒷면에는 "옥수수와 팝콘은.....'옥수수'처럼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지역의 이슈를 건강하게 알리는

여상기자 동아리 입니다." 라고 쓰여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이성화 아나운서, 글 황인우 아나운서 한국 아나운서클럽회보 줌인

http://blog.daum.net/jc21th/17782277

 

부산 MBC 초기방송비화 특별좌담, 이성화, 전응덕, 최광민, 김능화, 김영효, 정풍송, 김기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558

 

2015.7.13 -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사장

 

 위 글은 이성화 아나운서 블로그

다문화인을 위한 우리말 회화에

올라있는 글입니다.

 

한국방송 88년 특집 JODK 경성방송국 김수일, 안익수, 이장춘 출연

http://blog.daum.net/jc21th/17782394

 

 

 

김영우 (1961, MBC개국 아나운서, 1965, 미주방송 개시 ) 선생님 글

  

스튜디오 안 마이크 앞에서 DJ 방송을

고 있는 건강한 이성화 아나운서의 모습!!  

 반갑고 감격스럽습니다.  벌서  반세기전 일인데 처녀시절

(MBC초창기)의 이성화 아나운서가 이제는 중년 층 여성으로  

변하였스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성화 아나운서는 그 당시도

방송을 잘 했지요.  앞으로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애청자

들을 위해 좋은벙송 많이 하여주십시오 ...... 

 

 

 

 

이. 국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창간호에서 18호까지

다 잘 보았습니다. 춘하추동방송은 일종의 한국방송

역사일뿐아니라  방송인들의 소식과 프로필을 찾아볼수있는

백과사전이요 도서관 (Library)입니다.  지랑스럽습니다. 

더 많고 풍부한 방송이야기 올려주십시오.


 

덴뵐에서 김영우 드림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글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운영이 하루일과의
전부 라고 말씀 하시는 이장춘 사장님!...
목소리에는

전혀 나이 든 느낌이 들지가 않아요. 불로그, 하루 방문객이

 1,000여명 을 넘으신다니 제 블로그!는 고작해야 하루 방문객이

   200~300명인데 역시 인기인의 불로그!에는 뭔가 다른것이 있나 봅니다.   

잠을 설쳐 가시면서 쉼없이 노력 하시는 이장춘 사장님! 이성화 아나운서,와

대담방송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사무실(행정사,가수)

개소식,에 모든일을 재쳐놓고 오셨답니다. 래소하신 선물로 가수 윤후현,행정사 윤후현,

이라는 기사를 불로그에 멋지게 올려 주셨습니다. 이성화 아나운서,의 초대로 인하여,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사장님!이 재 조명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래 하나

추천 하라고   하니,어제 올리신, 남인수의 노래 일장춘몽,을 또

들으시겠단다.날마다 새 소식을 창조 하시는 이 국장님!
너무나 노고가 많으십니다.감사합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많은 세월을 걸어왔지만,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멋지게 펼쳐가시는 분들의

쾌지나 청춘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쾌지나 청춘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얼쑤~' 하고 추임새갸 나오려합니다. 이런 힘이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생각을 합니다.   국장님에 관한 내용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울려퍼져서 괸심있는 분들이 청취할 수 있게 되었음을 축하 드립

니다.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국장님의 춘하추동 방송을 더 알리고 싶어하신

 이성화 아나운서님의 생각하심이 역시 '크게' 생각하시는 분이심을

알게합니다. 이성화아나운서님, 이장춘 국장님, 늘 건강

 챙기시고, 활기찬 모습 보여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이정부 (강아지 아범) 아나운서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스타...

<나이를 잊은 그대> 이성화 선배님과,

<청사 없는 방송국 춘하추동방송>의 <연봉없는

 영원한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 이 두분의 관악방송

스튜디오에서의 만남은, 마치 56년전 부산 문화방송 HLKU에서

 이성화 아나운서가 탄생하셨던 시점에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자연스럽고, 화기애애 하며, 필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악방송 FM프로그램 <인생은 아름다워>코너를 통해 이미 송출된 내용인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방송도 나가기 전에 춘하추동방송을 통해 여러 스튜디오

영상을 곁들여 듣게 된다는 전무후무한 사태로 하여, 감동이 극대화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56년전과 똑같은 음성과 열정으로 진행하시는

이성화 선배님, 짧지만 저희들이 줄겁고 흥미롭고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갖도록 애써주신 이국장님, 두분의 세월을 거슬러

가시는 노력과 탁월한 능력에 또한번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국장님께선 늘 취재만 하시다가

모처럼 직접 방송 역사 한폐이지를 쓰셨네요,

정담 나눠주신 두분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인수의

'무정열차',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구슬퍼서 좋았고, 박해영의

 '레몬트리'는 상큼해서 좋았단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기자에,

엔지니어까지 1인 3역을 하시는 박현숙 프로듀서님께 함께

 감사드립니다. '세분은 영원한 방송인'이시라고

 엄지손가락을 펴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프리랜서 나운서 이정부 드림

 

 

답      

 

  

<청사 없는 방송국 춘하추동방송>의

<연봉없는 방송국장>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이정부 아나운서님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어느날 뎃글을 통해서 써 주신 그 이름이 지금은 보편화된

이름으로 사용되고 습니다. 처음에 아래한글에 쓰면 빨간

밑줄이 그어지던 춘하추동방송 이라는 이름도 이제는

일반화 되어서 아래한글에서도 빨간 및줄 그어지지

 않는 일반단어, 표준말이 되었습니다.

 

 

이혜자 (보나 이가인)선생님

 

 

"인생은 아름다워" 타이틀에 적합한

청사없는 방송국 이장춘 사장님을 캐스팅 하신

 피디님의 쎈스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이 방송을 들으며

"밤을 잊은 그대에게" 제가 여고시절 왕팬이었던 그 프로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장춘사장님과 이성화아나운서님의 방송

들으니 이국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욱 귀하고 소중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몬트리 상큼한 노래처럼 이장춘 사장님의 하루도

즐거운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늘 이국장님으로 불러 드렸

는데 오늘부터는 사장님으로 불러 드리겠습니

청사없는 방송국 사장 이장춘님   !!!  

감사합니다

 

 

이성화(아나운서) 선생님 글

 

 

저는 전철안에서 이글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넘칩니다. 스마트폰 다루는

법도 이제야 어디서나 이메일 여는 수준입니다. 몇번의

 세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과거 현재가 밀물 썰물처럼

섞이는 it   세상의 이순간 참 행복을 느낍니다. 옛날   판문점 갈때

강영숙 최계환님과 찍은 사진이 아직 있어요. 이장을 빌려서 안부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이정부아나운서님 클럽 때 뵙기로하고요. 멀리서

격려의 댓글을 올려주신 친애하는 인연 속에 계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과 건강응 기원합니다. 이제 내릴

정거장입니다. 감사합니다.

 

 

케이양 선생님 글

 

 

이성화 아나운서님 넘 멋지시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부산문화 민영방송 ..최초의

아나운서님이 이성화 아나운서 님이시군요..축하드려요

오늘 알고갑니다 * 역시 이씨들이 한인물 하는군요 ^ㅡ^;;

춘하추동방송 영원히 화이팅 입니다 입니다 ** 언제나 함께해서

 고맙고 행복합니다 ;; 행복한 월요일 되시고 ..늘 건강하세요 사랑

합니다 (=^.^=)   대표님 음성 듣고   싶었는데 오늘 듣게되었네요

목소리도 넘 고우시고 예쁘십니다 외모도 동안이십니다 ** 일생을

오직 한길만 걸어오신 대표님 ㅠ ... 존경합니다 춘하추동방송 ..

영윈히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거운 월요일 되시고 ..

늘 건강하세요 아름다운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녹음중인 이성화 아나운서와 김세희양 프로듀서 벅현숙씨, 오른쪽 남금희 여사

 

 

 

 

 

방송내용 요약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한 분을 소개합니다.

이장춘님이시고 직업은 춘하추동방송국사장님이십니다. 그런데 좀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청사없는 방송국, 연봉 없는 사장님이라고 아나운서등들이 설명을 붙여드리면서 아주 고마운 마음을 갖고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보충 설명을 직접 말씀해주세요,

네- 이장춘이라고합니다.

잠시 가볍게 하려고 시작한 춘하추동방송이 10년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격려와 성원을 받으면서 관심 있는 블로그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오늘의 블로그가 있게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 KBS에서 계시는 동안 여러 분야에 걸쳐 일 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1963년에 KBS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36년간 여러 직종, 전국 여러 곳에서 일했습니다. 공사가 창립되던 1973년 8사람으로 구성된 공사 창립 실무위원회에 편성되어 공사창립을 위한 기초 작업을 수행하고 공사가 발족되면서 새로운 직제에 따라 마련된 기획관리실 관리부 차장을 했습니다. 그때 관리부는 직제, 인사규정, 취업규칙, 정원, 표준제작비 지급규정 등등 공사의 틀을 짜는 모든 법규를 새로 만들고 국영방송 지휘체계를 공사체계로 확립하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했으며, 도 단위 방송체제 확립, 계열사 관리 등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때 저는 전국 지역 방송국과 라디오 중계소는 물론 고지에 있는 TV중계소까지를 모두 돌아보며 KBS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알았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도 없던 시절 우리 방송기술인들이 고지와 고지를 연결 해 가며 전국 TV방송망을 확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아 붇고 고지에 설치된 TV 송, 중계소에서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땅을 오르내리며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 고생하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았으며 눈 덥혀 고립된 고지에서 기계고장이라도 나 방송을 송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가슴 태우며 고생하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해결을 위해 예산이 지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고 공사 임원이나 간부들이 1년에 한번 씩이라도 현장을 방문해서 그 실정을 알고 고생하는 그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 연례행사로 되었다. 그 이래 저는 기회 될 때마다 그 얘기를 하며 그런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방송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 일이 오늘까지도 춘하추동방송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으며 기술인 모임에도 나갑니다. 그런 연유로 저를 엔지니어 출신이라고 오인하시는 분도 많이 계신 줄 압니다.

3. 많은 분들이 춘하추동방송에 대해서 궁금해 하실 텐데요. 춘하추동 방송을 계획하게 된 동기

제가 KBS사우회 부회장을 했습니다. 서병주 회장님 께서 회장에 취임하면서 사우회가 움직이는 사우회로 변환되어야 하고 문화사업도 함께 함께 해야 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때 사우회 회보도 나오고, 홈페이지도 만들어 졌으며 중국어교실, 컴퓨터교실, DMB 교육 노래교실이 신설되고 중단 되었던 서예교실을 다시 열었습니다. 사우회 창립기념일이 정해진 것도 그때의 일이고 KBS안에서 총회를 열고 KBS안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 한 것도 그때의 일입니다. 저는 그때 회원들의 마음의 끈을 연결 해 주는 방법으로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면서 회원들의 이메일을 모아 사우회 소식과 함께 쓴 글을 회우들에게 보내드렸습니다. 잠시 하려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4. 춘하추동방송은 명칭과 운영

춘하추동방송 명칭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줄 압니다.

제 이름이 장춘이다 보니까. 흔히 긴 봄이라고 부르고 1년 내내 봄이라는 뜻으로 춘하추동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블로그를 열면서 그 이름대로「춘하추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식점등 춘하추동이라는 범위가 넓어 불로그 검색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춘하추동방송얘기」라고 했지요. 그런데 다음으로 옮기면서 얘기라는 말이 필요 없다 싶어 「춘하추동방송」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글에서 「춘하추동방송」명칭을 쓰면 빨간 밑줄이 그어지더니 요즈음은 빨간 밑줄이 없습니다. 일반화 된 용어로 정착 되었나 봐요. 그렇다고 방송국은 아니고 인터넷 상의 블로그인데 어느 날 이정부 아나운서가 「청사없는 방송국, 연봉없는 이장춘 방송국장」이라는 댓글을 쓰더니 춘하추동방송을 드나드시는 분들이 그말따라「이장춘 춘하추동방송국장」이라고 하는군요.

5. 지금까지 춘하추동방송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일

특별히 힘들었던 일은 별로 없고요, 많은 분들의 성원과 격려 그리고 보내주시는 자료를 바탕으로 밤낮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6. 지금까지 소중한 방송자료를 상당부분 가지고 계시다는 정보가 있는데

춘하추동방송을 어찌 저 혼자 하는 일이겠습니까?

이 나라 방송역사의 기원을 이루는 노창성, 이옥경 선생님의 따님이신 노라노 여사님을 비롯해서 수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그 분들 성함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아진 史料는 이 나라 방송을 연구하는 학지, 학생들도 활용하고 방송사에서도 자주 활용합니다. 특히 각 방송사나 단체에 역사서를 발간할 때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부산방송 70년사, 전주방송 70년 영상, 대구방송 70년사 춘천방송 70년사, KBS TV50년사, 성우협회 한국라디오드라마사 등 방송역사서 출간시에 춘하추동방송 사료들이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한국아나운서클럽과는 모든 史料를 공유하며 춘하추동방송에서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를 창간호부터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7.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2011년 12월 31일은 KBS TV개국 5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KBS특집프로그램이 방송되었고 대부분의 특집프로그램에 출연자를 섭외 해 드리고 자료를 제공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꼭 출연 하셨어야 할 인사 두 분이 출연을 못 하시게 되어 마음 아팠습니다.

KBS TV창설에 제일 큰 공로자는 오재경장관 이었는데 그 분이 위독한 상황에서 출연이 불가능하셨고 TV방송개국을 위한 실무책임을 맡으셨던 최창봉선생님이 독감으로 출연을 못 하셨습니다.

12월 29일, TV개국에 힘을 기울이셨던 분들과 관련인사 40분정도를 모시고 리셉션을 가졌는데 그때 최창봉선생님이 나오셔서 5분 스피치를 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씀 녹음을 못해 오늘날까지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날 최창봉선생님이 나오신것을 보고 간단한 녹화라도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도저히 안 되신다. 면서 대기한 승용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때의 기록은 제가 촬영해서 블로그에 올린 내용 말고는 없습니다.

9.현재 춘하추동방송을 보는 분들의 수는 어느 정도며 반응은?

5년간 글을 쓰던 엠파스가 없어지면서 2010년 2월부터 다음에서 글을 썼어요. 엠파스에서는 흥미 있는 글도 많이 올려 찾는 분들이 많았지만 다음에서는 방송역사를 위주로 정선해서 썼기에 찾는 분들이 다소 줄었어도 하루에 1,000여명 되고 조회 수로는 2,000-3,000 건 됩니다. 또 많을 때는 만 건, 2만 건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전, 현직 방송인들은 물론 방송을 연구하는 교수님들, 한생들, 방송에 관심 있는 분들이 주로 찾아주십니다. 방송현업에 계시는 분들 만나면 춘하추동방송 얘기를 듣습니다. 방송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살아 숨쉬는 블로그가 있음에 고맙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어떻게 이토록 방대한 블로그를 오랜기간 운영 할 수 있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지요. 그 옛날 사진이나 영상은 어디거 그리 나오느냐? 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블로그와 인연을 밎고 계시는 분들, 자료를 제공 해 주신 분들 찾아오시는 가족 분들, 성함을 모두 써 놓았습니다.

10.어떤 때 보람을 느끼시는지

어쩔 때는 어린 아이들이 와서 댓글을 쓰는 경우가 있어요.

아!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 계시네, 그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보면 반가운 음서으로 전화를 받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하다가 할아버지가 방송국에 계셨다고 하면 인터냇에서 찾아보자고 한데요. 할아버지 이름이 나오면 의기양양해 한데요. 성함을 못 찾는 경우가 있다면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겠지요. 방송인들의 자손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얘기를 하며 안부를 전해주기도 하고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내분만 아니라, 미국, 케나다, 호주, 동남아 등 세계 각국에서 찾아옵니다.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도 보내주시고요. 그러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춘하추동방송이 2012년 다음 우수 블로그로 채택 된 적이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70대가 쓴 블로그가 우수 블로그라니 춘하추동방송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방송역사를 다루는 특수분야의 블로그가 우수 블로그로 채택되다니 자신도 놀라며 다음 사이트에 대해 고마운 마음으로 더 열심이 글을 쓰고 다듬었습다. 오늘날 국내 각 사이트에 있는 글에는 춘하추동방송 도장이 찍힌 사진이나 춘하추동방송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올라있는 경우들이 많음을 봅니다. 각 방송사에서도 춘하추동방송 글이나 영상자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자료를 사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밭습니다. 글쓰기 자작한지 10년 전혀 예상치 못했단 일입니다.

11.지금 의 연세에도 쉼 없이 방송 취재. 제작하시랴 매일 분주 하실 텐데 평소 건강비결은?

원래 허약한 체질로 태어난 저는 일생동안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 왔어요.

재직 시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등산이나 조깅을 하고, 냉수욕을 해 왔는데 6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아이들이 냉수욕은 하지마라고 해서 중단했고 아침시간 두 시간 정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하며 제 체형에 맞는 간단한 맨손운동을 개발해서 규칙적으로 합니다. 하루도 한시라도 아프다고, 컨디션 나쁘다고 누워 있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종종 피로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12.앞으로 계획은?

출판을 하라는 분도 계시고 주위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더 확대해서 해 보라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은 없습니다. 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 하다가 제가 할 수 없는 날이 되거나 또 상황변화가 오면 그때 대처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이장춘(6).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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