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공보실 방송엔지니어 공개채용으로 들어온 조찬길은 1990년대 말 KBS 제 4기 이사로 공직을 떠날 때까지 방송과 인연을 맺고 큰 발자국을 남기며 쉼 없이 살다 가셨다. 2014년 12월 17일 그가 세상을 떠나 문상 오신 분들은「일하고 싶어서」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 떠났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가 하면 이승에서 못다 한 일, 못다 한 얘기 저승에 가셔서 할 것이라고도 했다. 님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올린다.
방송인 조찬길
1956년 젊은 오재경이 공보실장 (부를때는 장관이라고 불렀음)에 취임하면서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나운서는 종전부터 공개모집으로 선발했지만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각분야에 문호를 개방해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했다. 조찬길은 바로 이무렵 1957년 이용실, 박수환, 윤은상, 지명수, 지명강, 김용국 등과 함께 기술자로 공개 채용되어 공보실에 들어왔다.
이때 조찬길과 이용실은 공보실 시설과에 배속되었다가 조찬길은 잠시 후 춘천방송국으로 옮겼다. 아래 사진은 1959년에 촬영한 사진으로 조찬길이 공인으로 남긴 최초의 사진 이다. 그때 춘천방송국에서 김영옥, 송경원과 함께 아나운서 로 근무했던 김영길이 보존하던 사진으로 참으로 귀한 사진이다. 서울방송국에서 온 최계환, 이호로와 함께 한 사진으로. 앞줄 왼쪽 두 번째 부터 이호로(음악계장), 최계환, 김득성(춘천방송국장), 이승균(기술과장), 뒷줄 남광명, 한사람 건너 송경원, 김영옥, 김태호?. 김영길, 고세혁, 조찬길, 한사람 건너 고재록이다.
그는 군 신체검사 병종으로 軍을 면제받은 방송국직원이었지만 5.16이 일어나면서 이유를 불문하고 군대를 안간 사람은 모두 해직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했을 때 조찬길도 그 범주에 들어 방송국을 물러났다. 그가 방송국에 다시 들어온 것은 KBS TV개국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불러들여서다. 한양대학교를 다니던 어린 학생시절부터 아마추어 무선연맹 회원 이기도 했던 그는 아마추어 무선연맹을 이끌었던 공보실 기감 이인관의 총애를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TV방송국 개국에 절대로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된 조찬길과 오승룡이 KBS TV 개국을 위해 복직되었다.
TV방송 불모지에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조찬길, 오승룡, 정항구(정항구는 곧 떠났다.) 젊은 실력자 그들은 방송국 스튜디오를 만들고, 포항방송국에서 옮겨온 이동방송차를 TV중계방송차로 개조했다. TV스튜디오는 HLKZ시절에도 있었지만 TV 중계방송 차의 조립은 대한민국 TV방송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 TV 중계방송 차는 1970년대 초까지 활용되었다. 다음사진은 1967년 용문산 TV중계소 개소를 위해 원주에 갔을때 사진으로 오승룡님이 제공 해주셨다. 1.정천학, 2.조동근, 3.차종식,4.이정오, 5.윤재덕, 6김점식, 7.윤성현, 8.한백수, 9.오승룡, 10.이원탁, 11.남학현12.고재록 13.최돈민, 14.이준호, 15.송영일, 16.Wagon운전기사다
TV방송 초기 TV방송기술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이 불비한 상황에서 TV방송 제작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늘 솔선 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TV기술에 있어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다양한 일에 참여 했다. 조찬길은 1973년 KBS가 공사로 변환할 때 기술국 방송망 운영부장이었다.
전국의 방송네트워크를 관리했다. 곧 이어 난시청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라디오, TV송수신점을 찾고 건설하기위해 전국방방곡곡을 누볐다. 대한민국의 많은 산봉우리에 그의 발길이 닿았다. 위 사진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김제송신소 건설현장에서의 모습이다. 중파 500Kw, 그리고 전 세계에 전파가 미치는 단파 송신기를 통해서 밤낮없이 전파를 발사 하고 있는 김제송신소, 조찬길은 본사 국장급인 이 김제송신소의 소장을 지낸 적이 있다, 그의 방송초창기에 춘천방송국에 재직했던 때와 김제송신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 그의 지방근무의 전부다. 김제송신소는 본사 직속이어서 지방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980년대 관악산 송신소를 간이 삭도를 타고 오르다가 삭도가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던 적도 있다. 위 사진은 1987년 남산 KBS 자체 송신탑을 바꾸어 세우고 관계자 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시설국장이던 조찬길 (3번)을 비롯해서 최용순 부장(2번), 김광일(1번), 원종은(4), 김지영(5)님이 함께한 사진이다.
그는 공사에서 방송방관리국장, 시설국장, 기술본부장, 제 4기 KBS이사를 지냈다. KBS모든 시설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다고 했다. 전국의 전 방송네트워크를 관리했고 수많은 시설에 참여했으며 전국의 시설을 수없이 돌아다녔다. 서울에 앉아서도 전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는 평이 나 있었다. 후배들 가운데는 너무 많 은 일을 요구해서 원망 스러울때가 있었음을 말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느 후배는 구정날에 출장명령을 내리면서 어려운 임무를 부여할때 죽을 맛이었던 일을 회고 하기도 했다. 1975년 여수방송국장을 지낸 김선초님은 신월송신소의 방송음질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 조찬길이 구정날 여수방송국에 출장을 와서 스스로 철탑을 올라 안테나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저럴 수 있는가?를 생각한 이래 오늘까지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1935년에 태어나 1957년 방송기술자가 된 이래 일생을 늘 바쁘게 더 많은 일을 더 훌륭 하게 하다가 가신 방송인이다.
세월이 흘러 임은 떠나셨어도 그의 발자취는 영원할 것이다.
오승룡선생님이 이 글을 읽으시고 사진 한장을 보내 오셨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조찬길, 김광식, 오승룡선생님이 함께 촬영한 사진과 보내오신 설명을 올리면서 아울러 오승룡 선생님께서 오래전에 보내 주셨던 사진 몇장을 골라 함께 올립니다.
조찬길 추모문을 읽고 사진들을
보니 생각이나서 여기 사진 한장을 보냅 니다. 이사진은 1974년 7월-9월 사이 촬영한것으로 여의도 방송센터에 설치예정인 장비교육을 약2개월간 현 kbs사우회장인 정근춘씨와 함께 교육 받는 동안 김광식, 조찬길 등 같이 간 몇분이 함께 찍었습니다. 장소는 영국 하이랜드쪽 Glasgow 소재 Thomson Foundation Televion College 입니다. 2015년 1월14일 오승룡 씀
종전에 보내주셨던 사진 중에서
판문각에서 오승룡 선생님과
감악산 TV송신소 터를 잡던때
송재극 선생님이 주신 사진으로 1984년인데 조찬길, 김준형, 정천학님과 함께 촬영 한것으로 보아 송신소 방문때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송신소! 원로방송기술인들이 그곳에서 만나 촬영한 사진이다. 맨 왼쪽분이 조찬길이다.
1980년대 초 여의도 청사앞에 선 KBS간부 사원일동 앞줄 오르른쪽부터 손영호, 정순일, 이덕주, 이원홍, 김수득, 차종호, 윤혁기, 김광식, 그리고 순서없이 송재극, 조찬길, 이동린, 채유석, 신윤생, 박미정, 김은구, 최장훈, 정종표, 변형하,배학철. 박진우, 김현국,장한성, 양휘부, 서정원, 조창화, 박중길, 장영국, 원철재, 김학영님 등.
이인관선생님과 조찬길은 1950년대 조찬길 학생시절부터 맺은 인연이다. 참으로 길고 깊은 인연이다. 이인관선생님이 가신날은 2007년 2월 23일 사우회 총회가 있던날이다. 총회에서 회장에 취임한 김은구회장이 다음날 아침일직 빈소에 들렸을때 오직 한사람 조찬길이 와 있었다고 했다. 위 사진은 이인관 선생님 가신지 6주년 추모회에 참여하셨던 방송인들이다. 번호따라 1.장용섭, 2.조찬길, 3.지승표, 4.한영섭(방우회 회장), 5.이종호, 6.오승룡, 7.김광식, 8.김성현 9.최용순, 10.박경환, 11.정항구, 12.계원준, 13.강정도, 14.최진성, 15.우제탁, 16.정근춘(KBS사우회 회장)17.권영원, 18.강창우,
기술인 동우회 창립식에서
조나라 (조찬길선생님 아들)님이 보내오신 글
지난 17일 별세하신 조찬길 이사님의 아들 조나라 입니다. 제가 저희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연말에 바쁘신 가운데 저희 부친상 조문과 위로 덕분에 무사히 상례를 치를 수 있었으며 베풀어 주신바 감사드립니다. 20년간 당신의 철저한 관리과 의지로 어려운 병마와 싸워내서셔 그리도 갑작스럽게 가실 줄 몰라 황망한 마음이었으나 저와 저희 가족은 이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친께서 은퇴하신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금번 혹한의 부친상 중에 KBS 동료, 선배, 후배님께서 저희 가족과 같이 나누워 주신 슬픔, 따뜻한 위로를 통해 그간 부친과 그간 같이 쌓아 오셨던 업적과 인간적 신뢰를 새삼 다시 알게되었으며 저 또한 사회와 직장의 일원으로 꼭 배우고 저의 동룓들과 실천하고 같이 쌓아 나가고자 합니다.
직접 찾아 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인 줄 아오나 서면으로 먼저 인사드림을 헤야려 주시기 바라며, 금번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저와 저희 가족들 마음 속에 담아 귀댁에 길흉사 있을시 보답코자 합니다. 연말에 가족들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조나라 올림
2014년 12월 18일 필자가 문상을 갔을때 아들 조나라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삼성전자 부장 재직중이라고 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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