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여행기

진주 남강, 진양호의 여명 일출 해돋이, 40년만의 추억

이장춘 2014. 10. 15. 04:56

 

 

 

40 여년만에 2014년 10월 1일 진주를

찾았다. 1973년 KBS가 국영에서 공사로 전환되며

모든 시스템을 새롭게 바꿀때 그 초석을 다지기 위해 전국의

방송국, 각종 시설을 돌아보던 그때  1973년 10월 진주를 찾은이래

4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강산이 바뀌어도 네번이 바뀌었다. 진주에

방송국이 아닌 라디오 방송중계소가 있을 때였다. 천년고도 문화의 고장

작은 고을이던  진주의 희미한 기억속에 남은 옛 모습은 오간데 없다.

 짜여진  여정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돌아본 시가지였지만 

그 길들은 모두가  새롭게 난 길들이고  엣날  유유히 

흐르던 남강은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진주 그리고 남강, 진양호의 여명 해돋이, 40년만의 추억

 

 

낮은 건물들은 모두 고층 빌딩으로,

아파트로 변해버려서 도무지 옛 모습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다. 진주를 지나 삼천포에 가서 저녁

사를 하고 밤길에 진주를 돌아오다 보니 마침 유등축제가

열리고 있을때라 진주 남강에 뜬 부교에서 비춰진 화려한 불빛이

 남강을 수놓아 아름다움을 더 했지만 막상 시가지를 볼 수

없이 한적안 작은 팬션으로 옮겨 여장을 풀었다. 

 

어두은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10시쯤 현장에 도착 잠자리에 들었다. 

오랫만의 여행 길이어서 일행들은 약주를 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원래 초저녁잠이 많고 또 그런 여흥에는

관심이 없는 아니 오히려 괴로움을 느끼는 필자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길에서 바로 잠을 청하기는

어려웠어어도 언젠가 잠은 들었다.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이 깨는

10여년 간의 생활습성으로 이날도 새벽

두시가 되자 잠에서 깨어 산책길에 오르고 가벼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앞에 거대한 호수가

펼쳐저 있다. 호숫가에서 잠을 잔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바닷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진주 부근에 바다가 없음을

깨달으면서 남강을 가로막아 이루어닌 진양호

일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정도 산책과 운동을 마치고

 잠 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잠이 올리가 없다.

5시부터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야간 사진촬영을 한것은 생에에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선가 개 짛는 소리가 들리고 물오리 노는 소리와 풀벌래

소리를 들으며 조용한 호숫가에 홀로 사진촬영을 했다.

새벽 5시부터 촬영된 진양호의 여명 해뜸이, 그리고

일행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순서대로 올린다.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그곳의 해가 하늘에 뜬채로 진양호에서

얼굴을 씻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진주 남강옆에

 대나무언덕위에 살던분이 요즘엔 진주 예술인 촌이라고

새로 조성된 마을로 이사해서 살고, 근교에 주말농장 구경을 하고

온지가 2-3년 전인데, 40 여년이면 그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변했겠군요.
국장님 코 모습처럼요.
사진에 보이는 간판들을 보면, 한글로

쓰여있어도 외래어가 많은 시대이니까요. 시장에 나와있는

 꽃들을 보니, 진주가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우제탁선벽산)선생님 글

 

 

경상남도 진주,,,,1975 년 1 월?  소위

진주 방솔송국 개국요원,,,,,," 기술과장 : 이란 

  이름으로 단독 션발대 발령,,,,,촉석루 내에 있는 진주중계소

 그 협소한 사무싷를 기존 지빙방숑숑국과 같이 국장실 과장 3 인 색상?

,,,그 협소한 곳에서다 살치,,,,중앙에서 특별한 예산지원도 없고 승용차 하나도

 없고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 한다드니,,,,,정말 혁명적인 투쟁을 한곳이요 거기다가

힘들게 부지 확보,,,청사신축 폭우로 침수,,,, tv   난시청 해소란 이름으로 진주

산청 함양 거창 지역 난청 문제 해결 이란 이름으로 소생 입으로 말 할 수

 없는 여려움 ,,,,잊을수 없는 곳,,,,이제 40 년이란 세월이,,,,그 떄

그 시절,,,생각 해 보면 온갖 생각이...바보"   같이 살아온

지난 세월,,,, 5년간을 진주 에서의 공직생활,,,

잊을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 지역 유지?라고 하는 사람이 했던 말,,
"그렇게 혼자 열심히 일 한다고 월급 더 주어요?  

만 아니다. 국민병? 이란 이름으로 1952년 진주 여고,,,

유리창도 없는 강당에서 그 겨을에 신한번 벗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그 떄 그 순간,,,,이제 40여년 이 흘러 갔으니 내 나희? ,,,,,진주

남강물은 말 없아 유유히 흐르고 있을 것 이지만 ?" 너는 

알라라   6,25 의 격전지,,,페허 진주 남강의 정서,,,,,

보잘것 없는 내 생애에 한획을 그은 경상도 진주 ,,,

온갖 생각이 남무 하는 구나.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글

 

 

진주는 1980년도에

한번 가 보고 못 가봤습니다.
친한 친구가 진주세무서에 근무

할 때 입니다. 남강의 새벽 구경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10월 2일 새벽 5시

부터 영한 사진이다. 해는 아침

6시 20분경에 뜬다고 했다. 어둠속에서

사진을 촬영하다보니 노출시간이 길어 순간

흔들리는 나무가지,  나뭇잎이 마치 손떨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감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수대교 위 가로등 불빛이다.

이 다리가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진수대교인

것를 안것은 날이 밝아서다.

 

 

 

 

 

진수대교 가로등 불빛이 꺼지고

구름 뒤의 주황색 빛이 보이지만 해가

뜬다는 6시 20분이 되어도 구름 뒤의

 햇님 얼굴은 나타나지 않는다.

 

 

 

 

 

 

 

 

6시 40분쯤 구름위로 떠 오르는

해는 둥근 해가 아니었다. 아래는 위

사진을 가운데 부분만 자른 것이다.

 

 

 

 

아래사진은 위사진의 중심부만

잘랐다. 구름 뒤에서 떠 오르는 해는

저렇구나. 를 처음 알았다.

 

 

 

 

 

 

 

 

 

해가 어느정도 둥근 모습으로 보인것은

구름위로 올라온 뒤의 일이다. 저 산너머에서

둥글게 올라온 햇님을 촬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구름 뒤에서 떠 오르는

햇님직접 보았다. 는 흐뭇한 마음이다.

아래는 위사진 가운데 부분이다.

 

 

 

 

해뜨는 장면을 뒤로하고

역광을 받아 촬영한 사진이 코가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날이 밝아 일행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갑주, 안평선, 이장춘, 심갑섭,

김병국, 뒷줄 왼쪽부터 김주철, 김영대, 김기동, 이흥주,

김승한, 강동순, 이연헌,  김환수, 강태인,  임근택, 

김무인, 김광일,  촬영 : 관주 김광일 님

 

 

 

 

아래 사진은 이 글과 어룰리지는 않지만 가던날이

진주 5일장이어서 그 5일장 모습을 올렸다.

 

 

 

 

 

 

 

 

 

개선행진곡-1.wma

 

개선행진곡-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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