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윤석중, 동요선-1939년 발행 「尹石重 童謠選」홍은순 보존

이장춘 2014. 9. 21. 20:09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워

귀에 익은 동요가사다. 이 가사가 머리 글로 올라있는

「윤석중 동요선 - 尹石重 童謠選」 이 책의  발행연도가

소화 14년 1월 25일로 되어 있으니 일제 강점기 1939년

 1월 25일에 세상에 나온 책이다.  윤석중선생님 쓴 동요가

1,200편에 이르러 발간된 동요집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초기에 발간된 이 「윤석중 동요선」 76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송현식 선생으로부터 그 책을

받아 「춘하추동방송」에 올린다. 

 

 

윤석중 동요선-1939년 발행 尹石重 童謠選」홍은순 보존

 

 

송현식선생 어머니는  일생을

동요화 함께, 어린이와 함게 살아온 홍은순

여사다. 그 홍은순 여사가 1939년 3월 11일 동경에서

학업을 마치던 때 서은숙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생사가 갈린

6.25때도 피난지 부산까지 싸 들고 다니면서 보존한 책이다. 윤길중

선생은 1911년에 태어나 1924. 동요 「봄」이 신소년에 입선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고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선생 아직 어린 15살 때의 일이다.

 

 

 

 

이 동요집에는 초기부터 쓴 동요 56편을

뽑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 수록된 노래들은

 윤극영, 홍난파, 박태준, 백태현 등 윤석중선생님과 더불어

이 나라 「동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들이 곡을 붙여 어린이

들에게 꿈을 심어주며 불려 온 노래들이고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동요들이 있다. 글이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여기서는 원문으로 올린다. 

 

 

 

 

이 책의 맨 앞에 나와 있는

노래 "봄 나들이"  소화 4년이라고

쓰여 있으니 1929년에 쓴 작품임을 말한다.

권태호 작곡으로 불려온 노래다.

 

 

 

 

이계석선생이 곡을 붙여 불린 노래

「우산 샛이 나란이」대정 15년은 1926년을 이름

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곡「반달」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24년 10월,  올해로 꼭 90년이 되었다.  이 동요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쓰인 동요로 동요의 역사와 함께 한다.

 이 땅에 방송국이 생기기 전 시험방송을 하고 있을 때다.

 

 

우산 셋이 나란히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이

걸어갑니다.

 

파랑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제비남매

 

 

역시 대정 15년이라고 쓰여있다.

1926년 작품으로 윤극영선생님 1927년

만주 북간도에서 작곡해서 오늘까지 불린다.

서양음악기법에 의한 민족의 정취가 노랫말이나

가락,  리듬에 듬뿍 담겨 있는 노래다.

 

 

『조기 조기 조 도령

     글 읽는 도령.

소리소리 듣기 좋게

      잘도 읽는다.』

 

『저기 저기 저 색시

        어여쁜 색시,

노닥노닥 버선 한짝

        잘도 깁는다.』

 

수양버들 가지가지

     늘어진 아래

길게 늘인 줄 위에

       나란이 앉아,

 

이집 저집 담 넘어로

      기웃거리며

의좋은 제비 남매

       짖거립니다.

 

 

 

 

낮에 나온 반달

 

 

소화 4년이라고 쓰여

있으니 1929년의 작품으로

홍난파의 곡으로 불렸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 끈에 달랑달랑 채워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쪽 발에 딸깔딸깍 신겨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 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 줬으면.

 

 

 

 

고추 먹고 맴맴

 

 

소화 3년의 작품 1928년에 쓴 동요다.

박태준선생이 곡을 붙혀 부른 동요로 오늘까지

널리 불려진다. 원문「담배먹고」가 음악교과서에

 오르면서「달래먹고」로 고쳐젔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돐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 꼬불 산골 길로 오실 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 오실 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

 

 

 

 

이상이 11페이지까지 올라

있는 노래이고 다음은 동요이름을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봄 나들이 중

 

 

밤 세톨을 굽다가,

오뚝이, 꿀 뙈지, 도리 도리

짝자궁, 저녁놀,

 

 

휘파람

 

 

휘파람, 단풍잎 1, 단풍잎 2,

 무너진 모래성, 별똥, 달, 바람,

 대낮의 바닷가, 눈 길, 얼음, 방패연,

 

 

담 모퉁이

 

 

담 모퉁이, 엄마 목소리,

한 개 두 개 세 개, 고사리, 옥수수 나무,

비누풍선, 긴기려 장수, 잠들기 내기,

쥐의 숨바꼭질, 주머니, 언니의 언니,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 잠 깰 때, 사

금파리, 누나얼굴, 샘, 여름, 비, 달놀이,

 갈대, 기거리 때, 자장노래,

 

 

키 대보기

 

키 대보기, 굴렁쇄,

눈 굴리기, 눈 받아먹기,

 머리 감은 새양쥐, 구멍가게 영감님,

신, 저 바다, 짖지 않는 개, 호랑이와

천둥소리, 도깨비,

 

 

할멈과 돼지

 

 

할멈과 돼지,

 

 

이 책의 끝 글로

추리고 나서」가 쓰여있다.

 

 

오늘의 배경음으로 윤석중선생의

대표곡 3곡을 올렸다.「산바람 강바람」,

「봄 나들이」, 「어린이 날 노래」다.

 

 

「산바람 강바람」1932년의 작품으로

1939년의 윤석중 동요선에는 올라있지 않은 동요

이지만 「춘하추동방송」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춘하추동방송과 애기를 주고받는 왕년의 청와대 출입기자

이석희 선생의 선친 이윤상(李潤相)선생과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학교인 교동초등학교 동기 동창이고 태어난 1911년과 2003년

세상을 뜨신 해가 같으며 두 분이 사시는 동안 깊은 인연을 가졌다.

필자가 2013년 9월 오카리나 연주가 유경환(유카리나)여사와 

김정숙, 조인숙여사를 모시고 이석희 기자가 사는

 도월마을을 방문 마을 분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이때 유경환 여사는 이윤상선생님 친구

 윤석중의 동요 "산바람 강바람" 멋지게 연주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그 연주곡을 감상했다.

 그 곡을 배경음악으로 올렸고 이석희 기자가 쓴 글도 한편 연결했다.

「어린이 날 노래」는 해방 후 윤석중선생이 새싹회 회장 재직시절

스스로 작곡해서 윤극영선생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로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두분의 대표곡이다.

 

 

 홍은순 여사 님의 젊은시절 1941년 평양방송국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윤석중 선생님께서, "더러는

 못마땅해도 기록으로 넣었고,"  라고

쓰신 말씀이 가슴속에 와 닿습니다. 저도

대부분은 못마땅한 연주라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블로그에 보존하고, 올리고있기 때문이지요.
홍난파 선생님곡의 낮에나온 '반달'을 지난번

 연주 때 동영상을 못찍어서, 언제고 꼭

불어서 올리겠습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피리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동요가 가슴을 젹십니다.
윤석중 선생님!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ㅣ.
혈연을 따지고 두둔 하는게 잘 못된 생각 이지만  
사실인 즉 종씨(윤씨~ 제 성함;윤후현))라서
더 관심이 가고 정이 깊은게 솔직한

심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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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방송국이 있던시절 그 뜰에 홍난파 흉상을 세웠다.

김경승(金景承)작 흉상에 윤석중이 글을 써서 김충현 글씨로 새겨

세웠다. 파란글씨는 윤석중선생님 글로 썼는데 이 흉상은 여의도 KBS로

옮겨졌다가 종로에 홍난파 기념관을 조성하면서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흉상의 모습이 김경승선생님의 원래와는 다르고 봉선화라고 쓰여있던 노래

곡목이 봉숭아로 바뀌어 쓰여졌다. 봉선화 노래이름이 바뀌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는 아쉬움이 있다. 아래

 흉상은 남산에 있던 김승 원래의 조각작품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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