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6일, 5.16민족상 시상대!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시상대에 선 그이름 이민휘,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규갑의 아들이고 기미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인 이갑성의 사위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배제중학교에 들어가 어린 시절 주먹의 보스로 두려운 것이 없던 철권의 사나이, 그가 훗날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무궁화장, 체육훈장 거상장, 5.16민족상을 받은 이민휘다. 미국과 한국을 넘나들며 많은 공을 남긴 그의 삶이 남다르다. 미국에서 50년간 방송활동을 한 김영우 아나운서의 다큐멘터리 동영상에 나타난 그의 삶을 본다.
이민휘 회장의 삶과 미주한인사회
1956년 서울 경기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민휘가 중국유학을 꿈꾸고 있을때 그의 애인이자 이미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부를 하고 있던 이봉희의 강력한 권유로 미국유학길에 올라 그 해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결혼식을 올렸다. 그 신부가 바로 이갑성선생님의 막내딸 이봉희다. 미국에서 미리 학교를 졸업한 이봉희는 갓난아이와 함께 본국에 돌아왔고 본인도 대학을 졸업하면서 국내에 돌아와 일을 해야 된다는 양가 어른들의 강력한 권유로 1959년 국내에 돌아와 활동했다.
그가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건너간 것은 1969년이고 여기서 미국 서부에서는 최초의 태권도 도장 화랑체육관을 열었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을 가르치고 보급 하면서 보내던 중 1971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제7대 한인회장이 되었다. 이로부터 한인사회와 인연을 맺어 오늘까지 미주 한인사회와 함께 해 오고 있다. 1972년 대한체육회 미주지부 인가를 받아 그해 태권도 선수단 26명을 대동하고 본국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 외국교포팀으로는 처음 출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시절 돌볼사람없던 장인환열사 묘지를 도국에 모신 그 주인공이기도 하다. 장인환 열사는 전명운열사와 함께 1908년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와 있었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미국에 돌아가 친일발언을 하자 전명운과 함께 민족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한 열사로 샌프란 시스코에 안장되어 있던 묘를 국내 애국자 묘지에 옮길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주인공이다.
1976년 LA로 본거지를 옮긴 이민휘는 1979년부터 83년까지 4년간 두 번에 걸쳐 미주 한인회장을 지내며 여러 일들을 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워싱턴에 한인회관을 세워 미주한인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사는 한국인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 2006년에 미주한인 재단을 결성, 미주한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으며 2006년에 시작된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은 미국은 물론 본국이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선정 1년에 2인 3인을 시상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와 KBS 김정수 PD도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받았다.
1987년 88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대로변에 17,000그루의 기념식수를 했고 86, 88올림픽을 계기로 그 후원회를 결성해서 올림픽 참여, 홍보 등 제반에 걸쳐 적극 후원한 공로도 길이 빛나고 있다. 2002년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 “이만휘의 일대기”에 그런 내용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아래 동영상에 생생한 내용과 영상이 있다. 동영상을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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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9시스튜디오에 출연 했을때
박정희 대통령과 만나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아버지 이규갑 목사 부부
장인 이갑성 선생님 부부
올림픽 대로변의 기념식수
이민휘 가족이 함께 한 사진이다. 부인 이봉희 여사와 큰 아들 원영 사이몬, 둘째아들 일영 필맆 부부와 그 어린 아이들이 함께 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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