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대한민국 첫 방송터 2014, 기념식과 유허비

이장춘 2014. 4. 27. 03:20

 

 

 

방우회 (한국방송인 동우회 -

회장 한영섭-)가 주최하는 2014년

방송터 기념식이 4월 26일 첫 방송터이자

 그 유허비가 있는  서울 정동 1번지  서울

덕수초등학교 교정에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첫 방송터 2014, 기념식과 유허비 

 

 

이날 기념식에는 한영섭방우회 회장, 

서종환 문공회 회장, 김규홍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

 박경환, 황우겸, 강영숙, 전영우, 박종세, 김명희님 등 방우회

원로회원을 비롯해서 많은 방송인이 참여해 주셨고 1950년대 스무고개

공개방송에 출연하면서 20여년간 방송과 인연을 맺어왔던 수필가 이경희

 여사가 첨여,   그날의 회고담을 들려주는 가운데 방송 87년이  되는해에

지난날 가꾸어온 터전 위해 새 시대에 걸맞는 방송발전을 기원했습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목소리는 1950년대 스무고개 사회를 보기도

했던 전영우 원로 아나운서와 그때를 회고하는

 이경희 여사의 음성을 올렸습니다.

 

 

 

 

 

한영섭 방우회 회장님은 기념사를 통해서

 일제감점기의 방송실상과 이곳에 있었던 초기

방송국의 모습을 설명하고 비록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방송국이기는 했어도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문화를

지키는  요람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국민의 사랑받는 방송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황우겸 원로회원(위), 김명희 원로회원

(아래)은 이나라 방송의 요람이었던 첫 방송터를

방우회가 지키는것도 중요하지만 전방송사 차원

나아가서는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950년대 스무고개를 회고하는 이경희 여사와 전영우 원로아나운서

입니다. (현 방우회 부회장) 스무고개에 대해서는 이미 써 올린 글이 있고  

이경희 여사의 얘기를 바탕으로 또 새로운 글을 별도로 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이경희 여사가 방송에 출연했던 1950년대의 스무고개 방송 모습

입니다. 노란색 ㅁ표시 안이 스무고개 이경희 박사입니다.

 

 

 

 

 

 

 

첫 방송터 유허비

 

 

1927년 2월 16일터 방송을 해온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은 서울 4대문 안이

 내려다보이는 정동 1번지 언덕에 있었지만 1950년

 6.25로 완전 폭파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부산피난

에서 돌아온 방송국은 옛날 방송국 옆에 있던 조선방송협회 사무실에

임시 방송시설을 갖추어 방송을 하다가 1957년 12월 남산으로 옮긴이래

방송국은 그 흔적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이에

이 나라 방송을 지켜온 원로 방송인들은 1987년 방송 60년을 맞아 첫 방송국 터에

 그날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우기로 해서 5월에 공사착공 9월 3일 방송의 날을

기해서 많은 방송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고 그 이래 해마다

이 유허비를 찾아 기념식을 갖습니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특히

오늘날 융성한 대한민국 방송의 발상지였던 이곳을

전 방송사 나아가서는 전국민이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조되었습니다.

 

 

 

 

비문에는 기념비 건립의 취지문과 함께

기념비 건립의 마음을 모으신 분들의 성함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비를 새우던 날  현재 작고하신 분

가운데   최초로 방송국 건립에 임한 노창성님과

일본인 시노하라님의 성함도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방송전파가

처음으로 퍼져 나갔다. 비록 우리말을 끝내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을 가슴 깊이 감춘 채였으나, 여기서

비롯된 우리 방송 전파는 우리 손으로 우리 배달겨레를 위해서

힘차게 자라, 앞으로 한자람 푸른 물과 마뫼 높은 바위가 마르고

닳도록 겨레의 마음을 실어 하늘 높이 그리고 멀리 쏘아 올려야 한다.

그 뿌리를 잊지 않고 더욱 더 빛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

첫 방송 터에 비를 세워 오래 오래 기리고자 한다.

 

1987년 9월 3일 방우회장 문시형

 

겨레의 마음, 하늘 높이 시대를

초월한  퇴역 방송인들이 그들의 정성과

성의로 방송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7년

 9월 3일 우리 방송의 효시를 이룬 서울중앙방송국의

옛터인 정동 1번지 현덕수 국민 (초등)학교 교정

 스탠드 위에 세운 '첫 방송 터’기념비 비문에

그 전통이 글로서 명문화되고 있다.

 

위 글은 첫 방송터 유허비 건립에 앞장서신

문시형님의 유고에서 옮겼습니다

 

 

 

 

 

2014년 첫 방송 터 기념식에 참여 해 주신 분들

 

 

 

앞줄 왼쪽 두번째 부터  강영숙, 이경희, 이종봉,

황우겸, 한영섭(방우회 회장), 전영우, 박종세, 이철호, 김명희,

서종환(문공회 회장) ,  둘째줄 : 김규홍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 오승룡,

강정도, 신정호, 박경환, 송현식, 우제탁, 장도형, 고흥복, 강창우, 한영신,

 정항구, 민흥식, 김영효, 노익중, 계원준, 김기호, 권영원, 박문양,

끝줄 이재영, 변용규, 이정오님이 참석 해 주셨습니다.

 

 

 

1940년대 50년대의 원로방송인 왼쪽부터 박경환, 강영숙,

이경희, 황우겸, 한영섭, 전영우, 오승룡, 박종세, 김명희 님

 

 

 

원로 아나운서 앞줄 왼쪽부터 전영우, 강영숙, 황우겸, 박종세, 뒷줄 송현식, 김규홍 아나운서

 

 

  

원로 방송기술인 앞줄 왼쪽부터

 우제탁, 한영신, 박경환, 강정도, 장도형,

이정오, 계원준, 권영원, 노익중, 고흥복, 정항구,

변용규, 한분 건너 강창우, 민흥식 님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라디오방송 올림픽 스무고개와 스타탄생
http://blog.daum.net/jc21th/17780596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역시 방송에 몸담으셨던 분들이시니,

이렇게 기록들을 가지고 계셨군요. 이분들이

아직 건재하실 때, 이런 기록들이 대중들 앞으로

나오도록, 이장춘 국장님 같은 분들의 숨은 노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먼 훗날에 그 진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스무고개'라는 프로가

있었다는 기억이 아련히 나는것 같아요.

 

 

우제탁(벽산)선생님

 

 

 세월도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우리나라의 첫 방송터 기념비 건립 당시 그 때

 그 시절,,,그사람 그사람 들은 대부분은 유명을 달리 하고,,,,

 금년 기념행사에 참석 한 사람들 대부분이  백발의 노령일뿐만이

 아니고  눈이 제대로 안보이고,,, 인들리고 한다니 ?,,,, 이 안타까운 모습,,,

어이 할 꼬,,,,?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면 갔지  어이하여 사람이 노령? 이

 되면 병들고 건강에 유감이 있고,,, 죽어가야 하는 지 ?,,,,되돌아

보니 그시절,,,그사람 그사람들 생각 잊을 수가 없네,,, 


그런데 담벼락 나무애 가려진 초라한

기념비 모습,,,,보기에 민망? 하구나 무언가

 획기적인 인식에 변화를 생각해 본다. 근본?,,,

과거 역사를 무시하면,,,, 내일이 없다고

했는데 ? ,,,,, 우리들 방송인

모두가 깊은 생각이,,,,  

 

 

 

 

 

오늘 글은 방우회 노익중 이사님 도움으로 썼습니다.

 

 

 

  

 

 

이경희 스무고개1(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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