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성안공 상진 묘 유형문화재 60호우면산 둘레길 (3)

이장춘 2014. 1. 16. 19:10

 

 

  

청권사에서 우면산을 가다가

서울시 유형문화재 60호 성안공 상진(成安公

尙震)묘역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서리풀공원에서

청권사 옆길 담벽을 끼고 샛길로 가다가 만난 효령로에서

보면 길 건너 빌딩과 아파트 사이로 다소 큰 주차장이 있고 그

너머에 작은 솔밭이 있다. 이곳은 사람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평소에는  주차장을 돌아서  우면산을 가지만  저 솔밭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으로 주차장을 지나 가 보았다.

 

“성안공 상진 묘역 (成安公 尙震 墓域)

 

조선 명종때 15년동안 3정승을 두루

 지낸 성안공 상진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으며

 이  묘역은 서울시 유형 문화재 60호임“ 이라고

쓰인 작은 안내 석비가 있다. 뜻밖에 만난

성안공 상진의 묘역이다.

 

 

성안공 상진 묘역 유형문화재 60호 우면산 둘레길 (3)

 

 

상진,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

범허재(泛虛齋), 시호는 성안(成安)이다. 1519년

(중종 14)에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부정자

(副正字)에 제수된 후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경기도 관찰사,

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지내고 1549년(명종 4)에 우의정에 올라

1563년까지 3정승을 두루 지내며 덕성과 도덕을 넓히는데 힘써 신망이

 두터웠고  업적은  청빈리의 대명사 조선초기의 황희정승과  세종대왕때의

허조정승 다음이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많은 공적을 쌓았다. 청빈리로도 널리

알려졌고 부모님들이 일찍 돌아 가심에 매부집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대성한 표본이며 노덕대신 (老德大臣)이라 불리며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564년 (명종19년) 세상을 뜨자 명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노덕대신

애도함”이라는 시를 짓게 했으며 성안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이곳에 묘를

썼고 1566년 묘 밑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를 세웠다. 상진이

살던 동네  (지금의 남대문로 3가 일대)를 조선말까지 상정승동

또는 상동이라고 했고 "영조도 이곳을 지날 때면

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기록이 있다.

 

 

 

 

필자는 두 번에 걸쳐 이곳을 탐방하면서 비각 안의

 신도비를 살펴보았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높은 벼슬을 지내며

 공덕을 쌓은 사람의 업적을 기록하는 것이어서 여기에 성안공의 공적이

적혀 있지만  그것을 판독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신도비의 내용을 쉽개, 보기

좋게 써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이 신도비와는 따로 비를 하나 더 세웠으면 하는 마음

이다. 안내판에는 방배동 1002번지 라고 적혀 있지만 서초동이라고 적혀있는곳도 있다.

방배동과 서초동 두 동에 걸쳐 있는듯하다. 1963년 이전까지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해

있었고 관악산에서 우면산, 서리풀로 연결된 인가가 드문 산줄기에 있는 묘역

이었겠지만 1963년이래 행정구역이 서울로 바뀌고 산과 들이 개발되면서

또 강남구로 되었다가 서초구로 바뀌는 동안 산허리는 잘려 도로가

나고 빌딩과 아파트, 학교가 들어서고 주차장이 들어서 

지금의 어수선하고 품위없는 묘역이 되고 말았다.

 

 

 

 

묘역에는 성안공 상진 내외분 묘소를

비롯해서 여러 기의 후손들 묘가 함께 있고

위, 아래 묘는 이 묘역의 맨 윗자리에

있는 상진 내외분의 묘다.

 

 

 

 

 

위는 묘역 뒷편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입구에서 위를 향햐서 촬영한 사진이다.

입구는 방배동에서 서초동으로 통하는 자동차길에서

상문고등학교로 들어오는 입구와 같다.

 

 

 

 

 

묘소 북측 아래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작은 안내 석비가 있다. 묘역은 1984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곳 상진(1493∼1564)의 신도비는1566년

(명종 21)에 세운것으로 문장가인 홍섬(洪暹)이 지었

으며 글씨는 송인(宋寅)이 썼고 두전(頭篆)은

 이제신(李濟臣)이 썼다.

 

 

  

 

  

 

위는 신도비 뒷부분에서 주차장을 향해서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서리풀공원을 향해서 촬영한

사진이다. 문화재, 신도비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주변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문화재를 아끼고 사람사는 주변을 가꾸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할 수 있는 여력과 생각이

있었다면  이곳이  이런 모습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못살던

시절, 개발,   돈을 우선으로 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주차장

으로 활용되는 땅은 아직 시설은 없어서 지금이라도

 문화재를 가꾸고 사람들이 숨쉬고 사는 공간으로

 조성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청권사 방면에서 이 묘역에 오다가

이 묘역을 향해서 촬영한 사진이다. 앞에는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뒤가 이 성안공 묘역이다.

이 묘역뒤에 상문고등학교가 있는데 보이지 않고

주변의 아파트와 그 뒤로 우면산이 보인다.

 

 

  

 

 

묘소에서 본 상문고등학교다.

작은 길 하나사이에 있다. 성안공 상진의

후손들이 문중의 땅에 세운학교다.

 

 

 

 

 

성안공 묘원과 상문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른쪽이 묘역으로 입구에 서울시가 세운

 유형문화재 20호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성안공 묘가

 있다는 간단한 글이 쓰인 작은 석비가 있다.

 

 

여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곳곳에 눈에 띄지않는 이런 유적이나

문화재들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곳을

 지나셔도 예사로 지나지 앟으시는 국장님은

보통분이 아니시군요. 이렇게 다시한번 기록으로

 정리하시니 여러사람, 나아가서는 후세들에게도
언젠가는, 누구인가는 읽고 배우게 되는 중요한

자료와 기록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관련 글 더 보기

 

 

청권사(淸權祠) 효령대군 사당 부묘, 서울 유형문화재 12호 우면산 올레길 (2)

http://blog.daum.net/jc21th/17782015

 

서리풀 공원, 우면산 올레길, 둘레길 (1)

http://blog.daum.net/jc21th/17782014

 

성안공 상진 묘 유형문화재 60호우면산 둘레길

http://blog.daum.net/jc21th/17782016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국악 피리 김보들샘.wma

 

국악 피리 김보들샘.wma
2.5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