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단상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제 81주기 추모식, 효창공원 3 삼의사의 묘

이장춘 2013. 12. 19. 22:56

 

 

 

윤봉길! 1932년 4월 29일 11시 40분!

상해의거, 그 의거로 해서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순국한 대한민국 애국열사

1962년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주는 최고훈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의사가 형장에서 순국한지 81주년 2013년 12월 19일 11시

 추모식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매헌 윤봉길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런 추모식에 직접 참여 하신 분은 많지 않다. 필자도

처음 가 보았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가급적 자세히

 알리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올린다.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제 81주기 추모식, 효창공원 삼의사의 묘

 

 

윤봉길의사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의 추모식에는 광복회, 삼일여성동지회 등 믾은

독립단체와 국가보훈처 등 정부관기관에서 참여 한 가운데

윤봉길 의사 묘가 있는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열렸다. 3의사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를 말함이요. 여기에 안중근 의사 유해가

 돌아오는 날을 대비해서 가묘를 조성 해 놓았기에 안중근 의사   유해가

안장되면 4의사 묘가 된다. 기념식은 국방부 군악대의 주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국민의례가 있었고   윤봉길 기념사업회 송준빈 회장 직무대행의

추모식사와 최완근 북가보훈처 차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의 추모사,

회장단, 유족대표, 정부기관, 각군 대표, 선열단체장들이 올리는

헌화에 이어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의 윤봉길 의사 노래 등

 추모가 그리고 국방부 의장대의 조총 등이 있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음향은 행사 끝

부분의 “윤봉길 의사의 노래”와 “조총발사”

 “윤봉길 의사에 대한 묵념”이다. 1932년 4월 29일에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쾌거 그 기념행사는 해마다 4월

29일 서울 양재동 윤봉길 기념관에서 열린다.

 

 

 

 

 행사장 앞, 묘 뒷편에 커다란

현수막이 노여있다. 1930년 3월 6일 의사가 쓴

장부출가 생불환 丈夫出家生不還 "사내 대장부가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이 말 따라

윤의사는 뜻을 이루기전에 집을 돌아오지 않았다. 김구선생을 만나

 기회를 보고 있던차에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

(天長節)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다” 라는 ◆상해 일일신문◆ 을 보고  바로 그날을 향해

준비를 서들렀다. 마침 그날이 왔고 그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경계가 쳐젔으며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 총사령관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植田) 중장 등  동영침략

원흉들이 앉아 있었다.

 

 11시 40분 수통형 폭탄을 단상위에 던졌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우두머리 시라카와 대장과

 카와바다 거류민단장은 죽었다.   노무라 중장은 실명되고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부러졌다. 이 밖애도 이 자리에 참석했던

 침략의 원흉들이 중상을 입었다. 이 일로 윤봉길 의사는 형장에서

 사라졌지만 세계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다시보게 되고 중국에서

 입지도 강화되었으며 주춤하던 독립운동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윤봉길의사의 쾌거가 있던 그곳 요즈음은 노신공원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홍구공원이라고

했다. 필자는 1991년 그 홍구공원,

노신공원을 가본 적이 있다.

 

 

 

 

윤봉길의사의 삶과

정신은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물통폭탄울 던져라, 던져라

일제의 침략을 던져라. 던져라

조국의 독립을 이루자 이루자

영원한 독립을 이루자 이루자

 

스물다섯 나이에 조국위해 떠나셨네

영원한 그 넋은 대한민국 빛되리

 

박용진 작사 작곡의

윤봉길 의사의 노래

역사 어린이 어린이 합창단이 불렀다.

 

그 추운날 얇은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아름다운지

추모식에서 박수치는것은 금물이지만

이 어린이 들의 노래가 끝날때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거사를 앞두고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효창공원과 임시정부 요인묘소, 김구,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http://blog.daum.net/jc21th/17781930

 

 

 

 

 

 

윤봉길 의사 91주기 추모식장 화보

 

 

 

 

 

 

  

  

  

  

 

   

  

 

 

 헌화모습인데 그 모습을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위 사진은 청주에서 온

윤봉길 의사 후손이라기에 사진을

촬영했는데 성함을 확인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아래는 삼일여성동지회에서 참석하셨기에

보내오신 조화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오른쪽부터

 엄정숙 부회장님, 이외련 명예부회장님,

이 숙자 간사님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윤봉길의사 81주기(1).wma

 

  

????? 81??(1).wma
2.51MB